#외상치료 #창업 #데이터기반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8월, 담비, 벨루가, 카피바라는 서울의 외상치료 전문 '자연재생한의원'을 다녀왔습니다. 한의학적 접근으로 상처와 외상을 치료하는 '전상호 원장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는데요. 창업과 임상을 모두 경험한 원장님만의 현실적인 조언들 지금 확인해보시죠.
[전상호 원장님 약력]
· 자연재생한의원 원장
· 전) ㈜버키 CEO
· 동신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경희대학교 경락의과학과 석사 학위 취득
· 논문) Utilization of acupunture and herbal ointment instead of skin graft surgery for the treatment of burn injuries: a case series and literacture review, Jounal of burn care & research (2022년 1-2월호)
· 저서) 자연재생 상처치료, 군자출판사, 2025
INTRO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동신대 05학번입니다. 부원장으로 1년 정도 근무한 뒤 창업하여 약 5년간 IT 회사를 운영하였습니다. 이후 회사가 조금 어려워지면서 정리하게 되었고, 2020년 11월부터는 자연재생한의원에서 조성준 원장님과 함께 진료하고 있습니다.
Q. 요즘 원장의 일과, 일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A. 조성준 원장님과 365일 근무를 나누어 하고 있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3.5일에서 4일 정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쉬는 날에는 주로 육아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현재 아들 한 명이 있고, 아내가 쌍둥이를 임신 중입니다. 원래는 비혼주의였으나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이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Q. 한의대 재학 시절에 어떤 학생이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공과대학을 다니다가 수능을 다시 보아 한의대에 입학하였습니다. 당시 학교가 시골인 나주에 있었는데, 학교 수업은 잘 듣지 않고 주말마다 서울에 다녀왔고 방학 때는 서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학교 수업이 재미없고 저와 잘 맞지 않아 소홀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대신 의료 봉사에 참여하거나 시민 단체 활동을 하는 등 외부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보냈습니다.
Q. 서울대 공대를 중퇴하고 한의학과에 입학하셨는데요. 전과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제가 동신대 05학번인데, 저희 또래는 허준 세대였습니다. 이때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원래 한의대를 가고 싶었으나 점수가 안 되어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공대 중에서 비교적 관심 있는 컴퓨터 관련 전공을 선택했지만, 다니다 보니 진로가 직장인이 되는 정해진 경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수능을 보았고, 운 좋게 한의대에 합격하였습니다. IT 분야에 대한 관심이 한의대 졸업 이후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독학할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의학과 IT 모두를 잘하는 한의사는 드물 것이라고 생각해서 진료가 아닌 분야를 하고 싶었으나, 일을 하다 보니 다시 진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Q. 창업 이후에 경락의과학과 석사를 취득하신 이유가 있나요?
A. 당시 여러 한의사님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지금은 경희대 교수님이신 이인선 교수님과 ‘한의틔움’이라는 앱을 개발하셨던 정원모 박사님이 계십니다. 두 분 모두 당시 경락의과학과 대학원생으로 재학 중이셨습니다. 석사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주셔서 다양한 분야를 아는 것이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경혈학교실 일반대학원에서 배움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창업과 도전
Q. 창업하신 닥터스랩과 버키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공중보건의 시절 앱 개발을 계속 공부하면서 무엇을 만들면 좋을지 고민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방약합편』을 검색할 수 있는 앱을 준비하다가, 나중에는 『동의보감』까지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동의보감』을 검색 가능하게 하고, 탕전원에서 주문까지 가능하게 하려면 과정 하나하나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공중보건의 3년 동안 작업을 이어갔지만 끝내지 못한 채 근무가 종료되었고, 이후 1년간 부원장으로 일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였습니다.
개원을 할까 고민하다가 데이터베이스 작업에 대한 미련이 남아, 공중보건의 때 하던 일을 마무리해 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습니다. 1년 동안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남는 시간에 『방약합편』 앱을 개발해 발표하였고, 이를 계기로 ‘닥터스랩’을 창업하였습니다. 약 1년간 닥터스랩을 운영 후 앞으로의 행보를 고민하던 시점에 사업에 관심을 보인 투자자가 함께하자고 제안해 ‘버키’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투자자가 경영난을 겪으며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져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만든 서비스는 ‘한의플래닛’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메디스트림과 유사한 형태였습니다
Q. 의료 데이터와 관련된 창업을 하신 이유와 다시 창업하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창업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아이폰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패드가 막 출시된 시기였습니다. 곧 한의대 교육이 바뀔 것이라 판단하여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선도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매우 어렵다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아도 사업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 결국 포기했고, 다시 창업할 계획은 없습니다. 창업을 통해 많은 고생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취미로 무언가를 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수익을 내는 사업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창업을 고민한다면 절대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Q. 한의계의 의료데이터 수집과 표준화의 필요성은 여전히 공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현재는 첩약 건강보험 시범 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 표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전에는 전혀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원외탕전원에서 사군자탕을 주문하려고 하면, 원외탕전원마다 약재나 처방을 분류하는 방식이 달라 데이터를 모을 수 없었습니다. 수집하더라도 보정과 연결 과정이 너무 복잡했고, 전자차트와 원외탕전 시스템이 모두 달라 표준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표준을 만들어 여러 곳에 제공하고, 데이터를 모아 부수적인 수익을 내고자 했지만 결국 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현재는 식약처에서 통일하여 첩약건강보험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이러한 데이터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임상에서 진료하는 입장에서 보면, 데이터를 수집해 표준화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며, 실제로 표준화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도 듭니다. 여러 측면에서 갈 길이 멀고 쉽지 않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임상 방식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에 표준화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표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창업 당시에 느꼈던 아쉬움과 다시 창업했을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것을 개선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A. 처음에는 취미 삼아 자료를 정리하고 앱을 개발하다가 투자를 받으면서 경영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특히 한의학을 잘 모르는 개발자·디자이너·기획자들과 협업해야 했기에 소통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준비 없이 시작한 점이 가장 큰 아쉬움입니다. 또 저는 경영을 하고, 오너가 따로 있는 구조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한계가 많았습니다. 만약 다시 창업을 한다면, 모든 것을 직접 주도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Q. 창업가와 임상을 모두 경험하셨는데, 두 영역에서 주체적인 성향이 어떻게 발휘되고, 각각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셨나요?
A.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무엇을 해야 할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창업 시절에는 기존에 없던 서비스와 플랫폼을 만들고, 사용자들을 설득해 사용하게 해야 했습니다. 매일 새로운 일을 고민해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컸습니다. 반면 임상에서는 이미 정해진 진료 프로세스가 있고, 이를 기반으로 환자분들을 설득해 치료에 참여하도록 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역량 자체가 다릅니다. 지금은 프로세스 안에서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매출 변동이나 홍보, 진료 과정에서의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도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서비스를 연결해 수익을 만드는 플랫폼형은 투자 유치가 어렵고 불확실성이 커서 극복하기 힘든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반면 바로 수익이 나는 제품이 있는 경우는 매출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창업은 쉽지 않고 투자받기도 어렵기에, 지금 돌이켜 보면 누군가 창업을 고민한다면 저는 쉽게 권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즐거움이 크다면 창업은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적이고 안정적인 성향이라면, 한의원이나 병원에서 진료하는 길이 더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상과 외상치료
Q. 임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극복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임상에서의 스트레스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치료가 잘 되지 않을 때, 2) 부작용이 발생할 때, 3) 환자가 오지 않을 때입니다. 치료와 관련한 스트레스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환자와 대화를 이어가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환자가 오지 않을 때는 유튜브·블로그·광고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습니다.
Q. 창업 이후에 임상진료를 하실 때 외상치료라는 분야를 선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창업 당시 여러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그중 강의 중개 서비스를 하며 조성준 원장님을 소개받았습니다. 원장님은 한의학적 방법으로 화상치료를 하셨는데, 실제로 피부 이식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던 환자가 흉터 없이 회복된 사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강의를 요청드려 듣게 되었는데, 큰 감동을 받았고 외상치료가 꼭 한의계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회사를 정리하던 시기였고, 혼자 진료하시며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시던 원장님과 교류가 많아지며 함께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5년 전부터 외상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Q. 어떤 부분에서 가장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느끼시나요?
A. 치료 자체가 힘들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하루에 세 차례 진료를 진행하는데, 아침 8시 30분에 입원 환자를 치료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외래 진료를 합니다. 그리고 저녁 8시 30분에는 드레싱을 합니다. 하루 일정이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다 보니 총 12시간 정도 진료를 하게 됩니다. 원장님과 교대로 나누어 근무하지만 1년 내내 지속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쉬는 날이 많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드레싱이나 침 시술은 반복적인 단순 작업이라 피로가 쌓이기도 합니다. 물론 통증을 전문으로 하는 한의원처럼 하루에 수십명의 환자를 보는 곳만큼은 아니지만, 긴 진료 시간 자체가 체력적으로 힘든 요인이 됩니다. 게다가 개원의로서 진료 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류 제출, 보건소 관련 업무, 직원 인사 관리 등 행정적인 일까지 겹치면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Q. 치료에 자연재생고라는 연고를 사용하시는데요. 연고를 만드는 과정과 작용이 궁금합니다.
A. 치료의 핵심은 연고입니다. 침을 놓고 연고를 바르지 않으면 회복이 잘되지 않고, 반대로 침을 놓지 않아도 연고만 발라도 치료가 잘 됩니다. 침은 보조적으로 회복 속도를 높이거나 흉터 치료에 도움을 줍니다.
연고는 저희가 준비한 한약재를 참기름에 한 달가량 냉침한 뒤 걸러내고, 여기에 다른 기름을 혼합해 만듭니다. 잘 만들어진 연고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며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연고로 환부를 덮어 습윤 상태를 유지하면, 몸의 자연재생 능력이 활성화되어 죽은 조직은 제거되고 육아 조직이 증식하며 피부가 재생됩니다. 즉, 연고는 이러한 과정을 보조해 치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돕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작용 기전은 아직 연구가 필요합니다. 자운고나 중국의 미보연고처럼 의서에 근거한 약재 조합을 활용하고 있으며, 기혈 순환을 촉진하는 한의학적 원리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자연재생고는 한의원에서 직접 만드시는지와 활용범위가 궁금합니다.
A. 네, 한의원에서 직접 만듭니다. 자연재생고도 한약 제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한의사가 직접 조제합니다. 원외탕전원에 맡길 수도 있지만, 저희는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과정 자체가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욕창, 뱀에 물린 상처, 화상, 절단 등 피부 조직이 손상된 다양한 외상치료에 사용 가능합니다. 주로 외상에 사용이 되지만, 그 외에 자가면역이나 레이노 증후군과 같이 혈액순환의 장애나 혈관에 염증이 생긴 경우 등으로 인한 조직의 상처에 사용 가능합니다.
Q. 연고를 통해 습윤드레싱이 잘되고 있는지는 어떻게 파악하나요?
A. 상처 회복 과정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괴사 조직이 사라지고, 손상 부위에 육아 조직이 자라면서 피부가 덮이는 것이 정상적인 치유 과정입니다. 매일 이 과정이 잘 진행되는지를 확인해 습윤드레싱의 효과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평가합니다.
만약 감염, 알레르기성 피부염 같은 염증이 생기거나 드레싱이 잘못된 경우에는 회복이 더뎌지거나 악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증 환자의 경우 매일 상태를 확인하며 진료하고 있습니다.
Q. 외상치료 분야에서 양방과 대비되는 한방 치료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A. 양방 치료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메디폼, 듀오덤 같은 제품을 이용한 습윤 드레싱을 시행하고, 이후에 회복이 잘 되지 않으면 피부 이식 수술을 권유합니다. 보통 2주 정도 경과를 본 뒤, 상처가 낫지 않으면 수술을 권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하지만 한방 치료는 회복 속도가 더 빠른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예전에 발표된 논문에서도 듀오덤 치료와 침치료를 비교했을 때, 침치료가 상처 회복 속도를 약 두 배 정도 빠르게 한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침과 연고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회복 속도가 메디폼이나 듀오덤보다 더 빠릅니다.
또한 양방 치료는 과도한 소독이나 습윤 상태 유지의 한계 때문에 딱지가 생기거나, 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상처가 깊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한방 치료는 이러한 과정 없이도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수술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받아야 하지만,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회복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술을 하면 관절 구축, 비후성 반응, 흉터 등 후유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방 치료는 수술 없이 회복을 시도해보고, 필요할 때만 수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에게 더 넓은 치료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Q. 한의학이 외상진료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한의계 외에 어떤 분야와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과거에는 침과 연고로만 치료를 진행했지만, 최근에는 흉터 치료에 레이저 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상처 치료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상처 회복 이후의 흉터 관리까지 레이저를 통해 보완하여 외상진료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사용하는 연고를 제품화해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역량이 부족해서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레이저 기기의 활용과 연고의 제품화를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한의계에서 외상치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나 시도가 필요할까요?
A. 현재 한의원에서 외상 진료를 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 한의원 방문진료 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곳들이 늘고 있는데, 거동이 불편한 환자분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욕창 치료를 계기로 점차 외상 진료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저희도 강의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최근에는 관련 서적도 집필하여 알리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쌓이면 한의계 외상 치료의 저변이 조금씩 넓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외상치료는 치료 결과가 명확하게 보일 것 같습니다. 치료 경과를 어떻게 예측하시고, 환자와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시나요?
A. 대부분의 경우 치료가 잘 이루어집니다. 초기에 욕창이나 절단을 다룰 때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치료 가능 범위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분께 미리 설명 하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감염 등 상태가 악화되는 변수가 생기는 경우 원내에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모든 치료는 100% 완치를 보장할 수 없기에, 예상 가능한 범위를 충분히 안내하고 감당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Q. 외상 진료를 보신 지가 얼마나 됐을 때 치료 경과를 예상하는 것에 대한 감이 생기셨나요?
A. 침 시술과 드레싱 같은 기본적인 치료는 한두 달이면 익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단부터 문제 발생 시 대응까지 혼자서 전 과정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최소 2년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외상 치료에 도전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2~3년 정도는 꾸준히 경험하며 잘 낫는 경우뿐 아니라 잘 낫지 않는 사례도 겪어봐야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OUTRO
Q.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한의대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A. 제가 회사를 운영하던 2017~2018년쯤에는 특강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창업을 권유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성급했던 것 같고, 오히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웃음)
진로에 대한 고민은 학생 때가 가장 많습니다. 불안하기도 하고, 관심 있는 것도 많을 시기이니까요. 이럴 때는 여러 길을 탐색하고 직접 공부해보는 경험이 큰 도움이 됩니다. 보통 한두 가지 분야만 깊이 파고드는 경우가 많은데, 학생 때는 폭넓게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는 게 좋습니다. ‘나는 고방만 할 거야’, ‘특정 학회의 방식을 따라야 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제한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이것저것 ‘찍먹’해보시길 권합니다.
학생 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실제 진료 현장에서 배우는 속도와는 다릅니다. 해부학 그림을 열심히 외우는 것보다, 진료를 하면서 반복적으로 접하면 훨씬 빨리 기억되고 몸에 배게 됩니다. 저는 암기력이 좋은 편이 아닌데도 임상에서 직접 경험한 것은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드라마틱하게 잘 낫거나 잘 낫지 않은 사례들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학생 때 다양하게 공부해보고, 졸업하면 관심있는 분야로 진로를 정하라는 말씀이신가요?
A. 네, 맞습니다. 물론 일자리가 있다면 관심 분야를 배워보는 것도 좋지만, 처음에는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역량, 예를 들어 통증 치료 같은 부분은 반드시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해부학적 지식을 탄탄히 하고, 선배들을 만나 인사를 드리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졸업 후 부원장으로 가게 된다면 조건이 다소 불리하더라도 도전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어디에서든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길고 한의사는 정년도 없으니 1~2년 빠르거나 늦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워킹 홀리데이 같은 경험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아예 진료와 다른 삶을 경험해 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진료와 다른 경험에 대한 관심은 삶의 풍부함을 위해서인가요?
A. 평생 한의사로만 살아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업으로 카페나 식당을 운영하거나, 화장품을 만들어보는 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료만 하다 보면 좁은 진료실에 갇힌 것처럼 시야가 제한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인연을 쌓으면 자극도 받고 새로운 도전도 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여전히 더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Q. 한방이 강점을 갖는 포인트가 무엇일까요?
A. 중국에는 ‘중의우세병종’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나 난임 같은 경우는 한약으로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방에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는 상황에서도 한방으로 잘 치료되는 경우도 있고요. 최근에 뵌 원장님 중에는 크론병을 진료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암 치료까지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니, 학생 때부터 논문과 자료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논문을 찾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구글 스콜라에서 ‘acupuncture’나 ‘herbal medicine’을 검색해 보세요. 흥미로운 사례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체코의 한 병원에서는 화상 환자에게 곡지·열결 같은 경혈에 침을 놓아 치료 효과를 높였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동아시아가 아닌 유럽에서 이런 시도가 있다는 것도 뜻깊죠. 학생일 때는 해외 병원이나 연구자에게 직접 연락하면 의외로 잘 받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 겸 방문해도 좋습니다. 하버드 의대에도 한의학 연구를 하는 교수님이 계시니까, 관심 있는 분야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가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학생 때 학술위원장을 맡으며 여러 원장님을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방학은 이런 경험을 하기에 좋은 시기입니다.
Q. 원장님께서 하시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A. 제가 외상 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조성준 원장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치료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겠냐”는 말씀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만약 이 치료를 포기하면 환자들은 결국 수술만을 선택해야 하고, 후유증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화상 치료의 패러다임 자체를 다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수술 후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 있는 환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 치료는 대부분 95% 이상 좋은 결과를 보입니다. 그래서 환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자부심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절단된 손의 접합 수술만 해도 접합 실패율이 13% 정도 된다고 하는데, 실패 시 환자는 절단 부위를 더 잘라야 하는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저희 치료가 더 알려지고 규모가 커져서 수술 외의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면, 많은 환자들이 삶의 질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Q. 마지막 공식 질문인데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면 좋을 분 있으신가요?
A. ‘한걸음 한의원’의 이병희 원장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크론병 치료를 하고 계신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의학적 치료를 통해 환자에게 수술이 아닌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고, 한의학의 진료 범위를 넓혀가고 계신 전상호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집자는 ‘환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은 한의사가 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해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주신 전상호 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Interviewer. 담비, 벨루가, 카피바라
Writer & Editor. 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