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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과 한의학을 잇다, 장형진 교수님

#융합연구 #한의약 #생화학 #Panacura

by 대신만나드립니다
2025 ISTM의 열기가 가득했던 9월, 대만드 9기 사자와 7기 꽁치는 경희대학교 장형진 교수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미 국립보건원(NIH) 연구원 출신으로, 현재는 (주)Panacura 대표님으로 계시며, 한의과대학 강단에서 기초과학과 전통 의학의 연결고리를 연구하고 계시는데요. "한의학의 경험적 가치를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싶다"는 교수님의 열정적인 이야기, 그리고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한의약의 미래에 대한 희망차고 유쾌한 대화를 지금 바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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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1. 02 - 2002. 02 : ProteomTech Inc. Project Leader
2002. 03 - 2007. 03 : National Institute on Aging(NIA)/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USA, Postdoctoral Fellow
2003. 03 - 2004. 02 : Member of Baltimore Life Scientists Association (BLSA)
2005. 01 - 2005. 12 : BLSA Scientific Director
2007. 01 - 2007. 12 : BLSA President (1st BLSA International Conference 개최, Inner Harbor, Baltimore, MD)
2007. 03 - 2009. 02 : University of Maryland Biotechnology Institute, Faculty

2009. 03 - 현재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조교수
2009. 07 - 현재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생화학교실 주임교수
2010. 01 - 현재 : Oriental Pharmacy Experimental Medicine 편집위원
2010. 01 - 현재 : Biochip Journal 편집위원
2010. 01 - 현재 : Molecular Cellular & Toxicology 편집위원
Intro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장형진입니다. 반갑습니다.


Q. 요즘 대표님의 하루 일과나 일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A. 2학기가 시작되어 현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수업이 있습니다. 수업 외 시간에는 회사 일을 하고, 미국에 있는 직원과 시차 때문에 주로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회의를 진행합니다. 미국 라디오 광고와 인터뷰도 하고 있어 새벽 6~7시에 연결하기도 합니다.


정부 지원사업 신청과 과제 수행도 진행 중입니다. 사실 방학 때가 이런 연구와 사업을 집중적으로 하기 좋은 시기입니다. 학기 중에는 미국 출장이 쉽지 않아 짧게 다녀오고 있는데, 10월 초와 11월 초에도 미국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일정이 빠듯하지만 아직은 체력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과거

Q. 학부 때 어떤 학생이셨는지,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계셨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한의대 출신이 아니라 원래 생화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 시절에는 사실 공부보다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볼링, 사진, 미술 동아리 등 세 개나 동시에 활동했고,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도 맡았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공부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군 복무를 다녀온 뒤에는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으로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예전에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면 더 열심히 하게 되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실험이 너무 재미있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고, ‘이게 내 길이구나’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당시가 IMF 시기라 취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대학원에 진학하는 길을 택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연구에 흥미도 있었고, 시대 상황도 맞물리면서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박사 과정은 보통 평균 4년 반 정도 걸리는데, 저는 3년 만에 박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그 시절에는 정말 하루하루를 실험실에서 보냈습니다. 밤 12시까지 실험하고 새벽 1시에 집에 들어갔다가, 다시 아침 9시에 출근하는 생활을 3년간 반복했습니다. 그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박사 학위를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그럼 어떻게 경희대 한의학과 교수로 오시게 되셨나요?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A. 박사 과정을 하던 시절, 마침 교수님들 사이에서 벤처 창업이 한창 붐이었어요. 제 지도교수님께서도 직접 회사를 세우시면서 졸업 전에 “같이 회사 세팅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셨죠. 그때 기업부설연구소 신청, 특허, 회사 리모델링, 연구실 세팅까지 전부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게 나중에 파나큐라를 설립할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박사 졸업 후에도 약 6개월은 그 회사를 계속 도왔습니다. 그러다 교수님께 제가 미국으로 포스트닥 과정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미국으로 나왔습니다.


미국에 와서는 NIH와 듀크대학교 두 곳에서 오퍼를 받았는데, 고민 끝에 도심에 위치한 NIH를 선택했습니다. 그 안에서도 노화연구소(NIA) 내 당뇨병 연구 섹션에 합류해 약 5년간 GLP-1 기반 당뇨 치료제를 연구했습니다. 지금 ‘위고비’로 유명한 바로 그 GLP-1이에요. 제가 메커니즘을 밝히고, 2007년에 논문을 냈는데 현재 인용 수가 수천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NIH에서는 저에게 정규직을 제안할 예정이었는데,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연구비가 크게 삭감되면서 신규 포지션이 모두 동결됐습니다. 게다가 비자 만료가 다가오자 NIH에서도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가족이 모두 미국에 정착한 상황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결국 취업비자(H-1B)를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 옮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죠. 마침 존스홉킨스와 메릴랜드대에서 동시에 오퍼를 받았고, 두 곳 모두 절차를 진행하면서 먼저 서류가 나오는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비자 만료까지 3개월밖에 안 남았는데도 서류가 계속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희망은 ‘토요일 12시 전까지 이민국 서류가 도착하는가’였는데, 짐도 다 싸놓고 출국 준비까지 했던 상황에서 토요일 오후 3시, 정말 영화처럼 우체부가 서류를 들고 왔습니다. 덕분에 메릴랜드대 연구교수직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엄청나서 그때부터 고혈압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제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이 걸린 일이었으니까요.


이후에는 미 환경부 산하 유전체 연구소로 파견됐습니다. 메릴랜드 워싱턴 지역을 커버하는 ‘Region 3’ 군부대 안에 있던 기관이라 실제로 군부대에 출근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결핵균 관련 유전체 연구를 했는데, 원래 하던 GLP-1 연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였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죠. 그래도 연구 자체가 크게 어렵지 않았고, 그곳에서만 5편의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영주권을 신청했고, 2년 만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주권을 받고 나서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경희대학교 생화학 교실에서 교수 자리를 공고했고, 지원을 통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한의대 교수가 되겠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연구하던 GLP-1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혹시 GLP-1을 자극할 수 있는 한약이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 계기로 이곳에 지원하게 됐고, 지금도 그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Q. 교수님께서 처음 한의학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경희대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한의학 연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생화학 전공이었고, 한의학은 경희대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전까지는 한의학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죠. 경희대 한의대에 오게 된 것도 사실 특별히 ‘한의대를 꼭 가야겠다’라기보다는 당시 상황과 연구 주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NIH에서 GLP-1 관련 연구를 오래 해왔는데, 마침 동의보감의 소갈편에 나오는 약재들이 대부분 차고 쓴맛을 가진 약들이었고, 이것이 GLP-1 분비와 연결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의학과 생화학을 연결해보자’는 마음으로 한의학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 역시 한의학과 인연이 있습니다. 제 딸도 올해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생화학적 관점에서 한의학을 서양과학과 연결하고, 기전을 밝히는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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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Panacura 대표

Q. Panacura에서 대표님의 주된 업무가 궁금합니다!
A. 저는 회사의 전반적인 R&D와 사업 전략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청혈단의 해외 시장 진출에 집중하면서, 반응과 소비자 접근 방식을 보며 후속 제품의 방향을 만들고 있습니다.


Q. 회사에는 신약개발부, 건강기능식품부, 의료기기부 이렇게 세 가지 사업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서별 소개와 진행 중인 사업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희 회사는 인력이 5명이라 사업부를 별도로 나누어 운영하진 않습니다. 다만 제품군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 개발: GLP-1 관련 기전을 활용한 비만 치료제 개발. 청혈단의 브랜드를 확장하는 방향도 검토 중입니다.

건강기능식품: ‘개별인정형’ 원료를 개발하거나, ‘고시형’ 원료를 합법적으로 조합해 제품화합니다. GLP-1 관련 메커니즘은 직접적인 광고 대신, 유튜브 등 교육적 설명을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의료기기: 코로나19 시기에 30분 내 결과가 나오는 소형 등온 PCR 기기를 개발했습니다. 이후 국방벤처로 선정되어, 현재는 말라리아 진단 기기로 국방부 납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안 와서 모기가 창궐하지 않았지만, 더 습해지면 파주나 포천 등의 군부대가 있는 지역에서 말라리아 모기 확산 우려가 있으니까요.


Q. 또 어떤 일들을 해오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제가 주도적으로 개발한 사례 중 하나가 ‘한약 알레르기 진단 키트’입니다. 2013년에 과제를 따내어 2016년에는 식약처 허가까지 받았지만, 실제로는 임상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한의사의 혈액 채취가 불가능하다는 해석이 있었고, 외부 검사 기관에 의뢰하려 해도 양방 중심으로만 운영되어 결국 저희 검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허가만 있고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또한 저희 회사에서는 DTC(Direct-to-Consumer) 기반 정밀의학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유전체 검사는 지금은 인터넷으로 약 20만 원이면 쉽게 받을 수 있지만, 본래는 10여 년 전 양방에서 ‘정밀의학’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지원을 받으며 대규모로 추진했던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예방 목적의 검사 결과를 통해 의사들이 환자에게 제공할 ‘상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질병이 발생해야만 치료가 시작되는 기존 의료 구조에서는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유전체 검사는 병이 발생하기 전, 즉 한의학적으로 ‘미병(未病)’ 상태를 다루는 영역입니다. 이는 오히려 한의학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검사 결과를 토대로 한약을 통해 체질을 관리하거나 질병 가능성을 예방하는 모델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희는 한미약품의 자회사 DX&VX와 MOU를 체결해 이들의 유전체 검사를 경희대한방병원에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검사자들에게 제공할 자료집에 한방적 설명을 추가하는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예컨대 “이 아이는 성장 가능성이 어느 정도다”, “이 사람은 특정 암 발생 확률이 높다”와 같은 내용을 담고, 이를 예방 한약 처방이나 생활 관리로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Q. 교수님께서 연구자로 해외 학회·기관에서 활동하셨을 때, 한의학에 대한 시각은 어땠나요?
A. NIH, 메릴랜드대 등에서 활동할 때, 서양의학 연구자들은 한의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의학을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의학은 ‘좋다/나쁘다’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경험해 보았느냐/안 해 보았느냐’로 나눌 수 있다고 봅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경험해본 사람은 쉽게 싫어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저희 가족도 적극적으로 한의학을 경험하고 있고, 그런 경험이 한의학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NIH 시절 GLP-1 연구를 했는데, 경희대 부임 후 한약 스크리닝을 통해 쓴맛 계열 약재가 실제로 GLP-1 분비를 촉진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런 연구는 서양학자들에게도 설득력을 갖는 것 같습니다.


Q. 한의학 기반 신약이 세계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숙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표준화와 협업이 필수적입니다. 한의사만의 기술(예: 침술)과 생화학적 기전을 연결하고, 국제 표준(ISO 등)과 연동해야 합니다. 특히 전통 처방과 성분을 현대적 데이터로 연결해 ‘신(新) 동의보감’을 만드는 작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AI가 많이 이야기되지만, 의약 분야에서 사라질 직종도 생길 것입니다. 다만 의학에는 객관 지표(혈액 검사, 수치 등)와 주관 지표(통증 설문 등)가 공존합니다. 이 중 주관 지표를 객관화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한의계는 우선 객관 지표를 적극적으로 수집·해석하고, 이를 한의학적 판단과 연결해야 합니다.

AI를 단순히 차트 자동화에 쓰는 것이 아니라, 임상 결과·in vitro·in vivo 데이터를 통합해 ‘신(新) 동의보감’처럼 생화학적 메커니즘과 연결된 지식체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taste receptor의 구조를 모델링하고, 한약 성분(예: 플라보노이드)을 AI로 도킹·스크리닝하여 GLP-1 분비 촉진 후보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이후 실제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의사들은 침술처럼 정교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AI와 데이터가 아무리 발전해도 이런 기술적 숙련은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술 숙련과 함께 표준화, 객관 지표 도입, 오픈 마인드로 협업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한의사는 충분히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Q. 16년동안 강단에 서시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해온 메시지나 가치는 무엇인가요?

A. 제가 강단에 서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학생들이 생화학이라는 과목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생화학은 결코 쉬운 과목이 아니지요. 한의대에는 문과 출신도 있고, 이과 출신도 있는데, 이과 학생들은 생물학에 어느 정도 익숙하니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문과 출신 학생들은 기초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생화학을 접하다 보니 당연히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수업 도중 “이건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학습 흐름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만들고자 교육과정을 조정했습니다. 원래는 일반 생물학을 예과 1학년 1학기에, 생화학을 예과 2학년 1학기부터 배웠는데, 그 사이 한 학기 공백이 생기면서 개념을 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반 생물학을 2학기로 옮기고, 생화학 수업 전에 기초 개념을 확실히 다질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또 수업이 끝난 뒤에는 이해가 부족한 학생들만 남게 해서 따로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게 그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생화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여러분은 ‘조제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조제권은 의사도, 약사도 갖지 못한, 한의사만의 고유한 권한입니다. 의사들은 약을 직접 만들어도 곧바로 환자에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비임상과 임상 1·2·3상 과정을 거쳐 식약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 과정만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한의사들은 자신이 만든 약을 직접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으며, 처방부터 조제, 임상 적용까지 모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건 정말 특별한 권한입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사용하려면 식약처 허가가 필요하지만, 개인 한의원에서만 사용하거나 한의사들끼리 공유한다면 반드시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실제로 경주에 있는 난임 전문 한의원의 경우, 자체 처방만으로도 큰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조제권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약의 기본 개념, 생화학적 메커니즘, 독성과 안전성에 대한 이해가 필수입니다. 특정 약재를 왜 쓰는지,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부작용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 이런 것들을 스스로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화학, 약리학, 병리학 같은 기초 과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등한시하고 단순히 “시험만 통과하자”, “외우기만 하자”라는 태도로 접근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약을 만든다면, 이해 없이 감으로 섞는 연금술에 불과합니다. 결국 외부에서는 한의학을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대체의학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약이 명확한 메커니즘과 근거를 갖추고, 임상에서 실제 효과까지 입증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굳이 허가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환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고, 한의학의 과학적 설득력도 크게 높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늘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조제권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자 기회라고. 이걸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초 학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임상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양방에서 오는 곱지 않은 시선이나 비판에 너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면 됩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학생들보다는 협회나 기존 한의사 집단이 대응해야 할 몫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작 중요한 시점에 내부 정치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수록 전국의 한의대생들이 연대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너무 흩어져 있습니다. 어떤 이슈가 생겨도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마치 모래알처럼 분산돼 힘을 모으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는 한의대생들, 곧 여러분의 시대입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기성세대는 변화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릅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10년 뒤에는 분명히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면 결국 여러분이 사회에 나갈 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그래서 한의대생들끼리라도 연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길 바랍니다. 사실 이런 역할을 선배 세대가 맡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어른’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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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저는 ai나 데이터 과학 연구하시는 교수님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응용과 활용적인 측면에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A. 생물정보학은 굉장히 매력적인 분야입니다. 저희 연구실에도 생물정보학에 관심 있는 대학원생이 있는데, 저는 그 학생에게 항상 “내가 시키는 것보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연구는 본인이 관심을 갖는 주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학생이 생물정보학에 흥미가 있어서, 저희 랩에서 진행 중인 테이스트 리셉터 연구와 접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테이스트 리셉터의 구조를 컴퓨터 모델링으로 예측하고, 그 구조를 활성화하여 특정 분비를 촉진할 수 있는 한약재나 플라보노이드를 AI를 통해 탐색해보는 방식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동의보감』 같은 고서에 기록된 약재들을 전부 스크리닝해 후보군을 도출한 뒤, 가능성이 있는 성분들을 리셉터 포켓에 맞춰 구조 기반으로 재선별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훨씬 정밀한 리스트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그 후보 성분들을 실제 실험에 적용해 GLP-1 분비가 촉진되는지를 확인하고, 그런 작용을 보이는 플라보노이드를 포함한 한약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효 성분이 확인되면, 단순히 학문적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신약 개발이나 기능성 제품 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연구가 이론적 탐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점이 바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Q. 정말 하시는 일이 많으시네요. 한국한의산업진흥협회(KOMPAS)은 어떤 곳인가요?

A. 한의대에 들어와 보니 아직 손대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노다지’ 같은 분야가 곳곳에 있었지요. (웃음) 그래서 몸이 하나로는 부족할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학교 일뿐 아니라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국한의산업진흥협회(KOMPAS)’라는 단체도 만들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한의산업 전반의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조직으로, 의료기기부터 생약 기업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현재 대요메디의 3D 맥진기, ownherb(구 카멜로테크), 팀 엘리시움 등 다양한 회사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도 한의약진흥원이나 한의학연구원 같은 큰 기관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한의 산업 전체를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 여러 협회들이 각각 존재하다 보니 전체 산업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도 어려웠습니다. 이에 보건복지부 측에서 “한의 산업 전반을 직접적으로 대변하고 소통할 수 있는 단일 단체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했고, 그 요구를 바탕으로 KOMPAS가 설립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이 협회의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Q. 졸업하기 전에 학생 신분으로 건강기능식품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조언해주신다면?
A. 학생 신분으로 건강기능식품을 직접 개발하고 판매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제품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회사를 세우고 인력을 관리하며, 제조·허가·마케팅 전 과정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생기면 더 이상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직원을 고용하고, 팀을 운영해야 하죠.


그래서 저는 학생이라면 직접 회사를 만들기보다는 관련 회사에 들어가서 먼저 경험을 쌓는 것을 권합니다. 실제로 어떤 식으로 제품이 기획되고, 연구가 진행되며, 시장에 나가는지를 배우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에요. 저희 회사 같은 연구소나 기업에서 인턴처럼 경험을 쌓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꼭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단순히 ‘건강기능식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에서 그칠 게 아니라, 어떤 질환을 겨냥할 것인지, 어떤 한약재나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할 것인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연구나 개발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최근에 2359라는 마케팅 전문 기업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한방 브랜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연구 역량을, 그들은 마케팅 역량을 맡는 식이죠. 한의대생들도 혼자 다 하려 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강점에 집중하면서 협업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스타트업에서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만드 공통 질문

Q.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UP) & 가장 힘들었던 순간(DOWN)은 무엇인가요?
A.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아이들을 가졌을 때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까 말씀드렸던 미국에서 합법 체류와 불법 체류의 기로에 섰던 때였습니다. 서류가 도착하지 않아 너무 불안했어요. 우리 가족 전체의 삶이 달린 일이었으니까요. 그 스트레스로 그때부터 혈압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웃음)


Q. 교수님의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는 무엇인가요?

A. 단기적인 목표는 ‘청혈단’의 성공입니다. 미국 시장에서 먼저 성과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 역진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1차적인 목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을 교두보로 삼아 한국 한의사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한의사 전용 글로벌 휴먼 리소스 회사를 설립해 한국 한의사들이 미국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저희 회사가 고용주가 되어 H-1B 비자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 내 요양병원 등에서 한의사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열리고, 더 나아가 한의사가 직접 운영하는 요양병원을 미국에 설립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취업을 넘어, 한의사들이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궁극적으로 영주권까지 연결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는 것 — 이것이 저의 장기 목표입니다.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을까요?
A. 경희대 한방재활의학과 정원석 교수님을 추천합니다. 한방비만학회 회장이며, 해외 의료지원, 와인 소믈리에, MBA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셔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화학의 언어로 한의학의 깊이를 증명하며,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장형진 교수님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후배들을 위한 길을 닦는 교수님의 모습이 저희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의학의 과학화와 글로벌 도약을 꿈꾸는 교수님의 앞날을,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예비 한의사분들의 미래를 대만드가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Interviewer. 사자, 꽁치

Editor & Writer.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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