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특집으로 세 번째로 만나뵌 분은, 동신대학교에서 돌봄과 일차의료에 관해 연구하고 계신 진한빛 한의사님입니다. 돌봄과 일차의료에서 한의학의 역할을 확장하기 위해 실행 연구를 이어가고 계시며, 임상에서 일하시다 대학원에 진학하셨기 때문에 더 생생한 말씀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현 동신대학교 한의학 박사 재학
현 한의재택의료학회 학술이사
원광대학교 한의학 석사 (2022.09-2024.08)
공보의 및 여기저기 부원장 (2013.04-2022.08)
동신대학교 한의학 학사 (2007.02-2013.03)
[ 들어가며 ]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동신대학교 김동수 교수님의 연구실인 ‘한의 돌봄 및 일차의료 연구실’에서 전일제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진한빛입니다. 현재 한의학이 지역사회 돌봄이나 일차의료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연구하고 있고, 이러한 내용이 실제 임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함께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요즘 하루 일과, 일주일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A. 평일에는 보통 아침 9시 30분쯤 출근해서 오후 5시 30분쯤 퇴근하는 비교적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연구실에서는 연구를 진행하거나 학부 수업을 참관하고,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연구자이자 학생으로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퇴근 후에는 매일 운동을 하고, 이후에는 회의를 하거나 일을 하기도 합니다. 저희 연구실 특성상 1차 의료기관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현장 출장이 잦고, 또 원장님들이 퇴근하신 이후인 저녁 시간에 회의가 잡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 학부 시절 ]
Q. 학부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A. 학부 시절에는 그저 평범한 한의대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 후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지냈던 학생이었습니다.
Q. 학부 시절 활동 중 지금의 선생님께 가장 큰 영향을 준 활동은 무엇인가요?
A. 가장 큰 영향을 준 특별한 활동이 있다기보다, 저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이 있었고, 그 성향이 지금의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책 읽는 거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전공 서적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곤 했습니다.
[ 대학원 진학 및 생활 ]
Q. 임상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으신 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A. 저는 07학번이고, 2022년도에 전일제 석사 과정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약 8~9년 동안 임상에서 일했습니다. 환자를 보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의사로서 부딪히는 어떤 근본적인 한계를 반복적으로 느꼈습니다. 또 큰 정책적 흐름 속에서 한의학이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답답함을 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연구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 임상 경험이 연구 활동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A. 네, 도움이 정말 많이 됩니다. 제 연구 질문들은 대부분 임상에서 출발한 질문들입니다. 또 실제 1차 의료기관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구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다는 점이 소통과 연구 설계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Q.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적절한 진학 시기는 언제일까요?
A. 현실적으로 조언을 드리면, 졸업 후 바로 진학하는 것을 가장 추천합니다. 임상에서 자리를 잡고 생활이 안정되면, 대학원 전일제 과정에 들어오기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임상 후 진학의 장점도 큽니다. 실제 문제를 경험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라는 확실한 동기와 문제의식이 생기고, 연구 방향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는 학업을 끊지 않고 바로 이어가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연구를 하다 보면 막히는 순간이 정말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답은 현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계속 고민하기보다 함께 일하는 한의사,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약사 분들과 회의를 하다 보면 방향이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직접 현장을 방문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가 많습니다. 연구와 별개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재정적인 문제 같은 현실적 고민도 있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생길 거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넘어가고 있습니다.
[ 연구 방법론 및 접근 방식 ]
Q. ‘실행 연구’라는 방법론을 활용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방법론을 어떻게 접근하고 계신가요?
A. 실행 연구는 제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조금 복잡한 연구 방법론이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 드리자면, ‘지식과 실천의 간극을 메우는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치료법이 임상 연구에서 효과가 입증되더라도, 실제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 연구에서도 제도가 만들어지지만 현장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일이 많죠. 실행 연구는 이런 간극이 왜 발생하는지, 그리고 이런 근거와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지속되도록 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방법론입니다.
특히 일차의료 현장은 통제된 환경이 아니라 다양한 직종과 환자, 보호자가 얽혀 있어 적용 과정이 매우 복잡합니다. 그래서 실행 연구는 현장의 맥락 분석이 필수적이고, 한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환자, 보호자 등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중요한 특징을 가집니다. 연구자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분들과 함께 논의하며 무엇이 방해 요인이고 무엇이 촉진 요인인지 파악하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 돌봄과 일차의료 연구 ]
Q. 현재 진행 중인 ‘돌봄과 일차의료’ 연구를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저는 돌봄과 일차의료 분야에서 한의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고민하며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임상 연구로, ‘재택의료센터의 기능저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환자 등록 연구’를 설계부터 수행까지 맡고 있습니다. 여러 한의원을 등록 기관으로 참여시키고, 기능저하 노인 데이터를 수집해 돌봄 사업이 시행될 때 한의 의료 서비스가 포함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연구입니다.
두 번째는 정책 연구로,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한의 노인 주치의’ 제도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 모형을 동신대와 부산대가 함께 개발하고 있습니다. 임상 근거가 마련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정책이 없다면 실제 현장에서 쓰이기 어렵기 때문에 중요한 연구입니다.
세 번째는 실행 연구로, 일차의료의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현장 적용이 미진했던 ‘다직종 협력’의 실질적인 적용 방안을 설계부터 수행까지 맡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한의사를 중심으로 하는 직종 간 협력 모형을 개발하고 이를 시범 적용하는 연구입니다. 현장에서 한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실무적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모형을 도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의사, 치과의사, 작업치료사 등으로 협력 범위를 확장하여, 이에 따른 실행연구 성과지표와 환자의 건강 결과를 평가하고자 합니다.
Q. 돌봄과 일차의료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대학원생은 보통 지도교수님의 연구 분야를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됩니다. 저 역시 김동수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오면서 돌봄과 일차의료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연구를 해보니 이 분야가 실제 1차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한의사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의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도 들었고요.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한의학이 주변부로 밀려나는 상황이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실행 연구를 함께 고민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Q. 현재 연구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계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제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임상 연구와 정책 연구로 만들어진 근거와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제도적 뒷받침입니다. 한의사의 일차의료 참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으로는 법적, 제도적 장벽이 꼽힙니다. 협진 수가가 없고, 기관 간 연계를 해도 보상이 없는 구조에서는 열정만으로는 협력이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또 한의사가 주치의로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 행위들이 제도적으로 막혀 있는 부분도 많습니다. 두 번째로, 현실적인 협력 모형의 정립입니다.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한의원 원장이 주치의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인근 병원 의사와는 어떤 방식으로 협력해야 하는지’ 같은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다면 현장에서 바로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더해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의사가 일차의료나 주치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역량을 갖춘 후에야 비로소 다른 직종을 설득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부 과정에서도 이런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다양한 보건의료 직역과 협업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을까요?
A.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작년에 진행한 ‘한의학 건강 돌봄 활성화를 위한 다직종 협력 모형 개발 연구’에서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던 경험입니다. 의사, 간호사, 약사, 사회복지사 등 여러 직종이 참여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의사나 약사 선생님들이 한의학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흔치 않다 보니 저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의 직종이 ‘한의사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한의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협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의사분들 역시 타 직종과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보고서를 작성할 때 해당 분야의 저명한 교수님들께서 각 장을 맡아 주셨는데, 한의학 기반 돌봄 모형을 위해 다른 직종의 전문가들이 함께 고민해 주시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 협력이라는 것이 이런 만남과 충돌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Q. 돌봄과 일차의료에서 한의사의 역할은 앞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까요?
A. 저는 한의사가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을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주치의 역할로 확장될 수 있고, 또 그렇게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의사들을 만나보면 통증 관리는 기본이고, 전반적인 건강 관리나 재택 임종 돌봄까지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 역할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제도적 기반’과, ‘구체적인 협력 모형’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또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지금 한의사분들이 현장에서 만나는 타 직종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작은 노력들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런 작은 사례들을 증례 논문으로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 대만드 공통 질문 ]
Q. 인생의 그래프를 그린다면 가장 뿌듯했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제가 하는 연구가 실제 현장의 한의사분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입니다. 연구 참여 원장님들이 임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제가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경험이나, 함께 쓴 논문을 토대로 발표하시고 상을 받으시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임상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한의사로서의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계속 임상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풀어가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Q.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제가 졸업할 당시에는 한의사의 진로라고 하면 임상이 거의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고, 연구자로서의 길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학부 시절에는 너무 조급하게 결정을 내리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가슴이 뛰는지에 대해 탐색해 보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고, 가능하다면 대학원이나 임상 모두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Q. 다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을까요?
A. 두 분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거제 동방신통부부한의원의 방호열 원장님으로, 한의 재택의료학회 회장님이시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홍진단’이라는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한의계 모임에서 활동하시는 변지호 선생님입니다. 두 분 모두 한의계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분야를 깊게 다루고 계셔서 인터뷰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ditor. 벨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