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mellia japonica L. : 나에겐 인생 꽃, 동백나무
[식물매거진] BY GREENERY는 매주 목요일마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식물매거진-식물도슨트 코너에서는 선정된 식물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꽃이 좋아지면 나이가 든 거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이, 우리 엄마와 아빠의 프사는 언제나 야생화와 함께 있는 사진이다. 혹은 꽃보다 더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채 자연 속에 있는 모습이다. 꽃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중년 어르신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꽃 사진은 중년 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서 꽃은 필수다.
봄을 알리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시작으로, 수국이 그 뒤를 잇고, 해바라기 축제, 코스모스 축제, 요새는 핑크 뮬리까지 가세했다. 그리고 겨울, 잠시 주춤할 수 있는 시즌이지만 우리에겐 오늘의 [식물도슨트]의 주인공, 동백이 있다.
한겨울 인싸들이 제주도의 위미 동백군락지, 카멜리아 힐을 찾아 사진을 찍는 이유도 바로 동백꽃 때문이다. 다른 꽃들이 모두 한겨울 잠을 취하고 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동백꽃은 짙푸른 잎 가운데 붉고 커다란 꽃을 피워낸다. 그래서 우리에게 겨울 인생 사진을 남겨준다. 하지만 동백은 우리를 위해서 붉고 화려한 꽃을 피워주는 게 아니다. 이는 자손 번식을 도와주는 동박새를 위한 단장일 뿐이다. 동백이 꽃을 피우는 추운 계절에는 일반적인 번식의 매개인 곤충의 활동이 없기 동백꽃은 새를 선택했다. 그래서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 향기를 내기보다는, 새들이 인식하기 쉬운 붉은색의 큰 꽃과 그 밑에는 진하고 많은 양의 꿀을 저장해 본인을 뽐낸다. 우리가 소개팅에 나갈 때, 상대에 따라 다른 포지셔닝을 설정하고 나가는 것과 동일하다. 내가 꼬셔야 할 대상이 곤충인지, 새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식물들은 우리보다 절대적으로 메타인지가 높다.
자신의 상황을 분석하고 준비한 결과, 한 겨울에도 동박새의 도움으로 수분에 성공하고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들어온 동백기름을 내어주는 동백열매 안의 씨앗이 탄생한다. 동백기름은 흔히 머리카락을 윤기 있게 해 줘 많이 쓴다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근데 아무리 동백기름이 좋다고 해도 누가 요즘 이걸 바르겠어했는데, 내가 바르고 있었다, 허허허. 내가 바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80년대생이다.
모발 관련 상품 중에 주원료로 동백기름을 사용하는 이 곳은 브랜드명 자체가 일본어로 '동백나무'를 뜻하는 츠바키(tsubaki)다.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한다. 일본어 문맹으로 이게 그 말인지 몰랐다. 동백나무의 학명(생물학에서 쓰이는 세계 공통적인 명칭으로 속명+종명으로 이루어져 있다)은 Camellia japonica L. 다. 웬일인지 처음 보는 영단어인데 다 익숙하지 않은가? 속명인 카멜리아(Camellia)는 제주도의 '카멜리아 힐'에서 보았고, 종명 자포니카(japonica)는 왠지 일본스럽다. 맞다. 이는 일본이 원산지인 식물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이 있어서일까, 일본인이 좋아하는 식물이고, 왜색이 짙다는 평가를 받으며 동백나무는 오해를 받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동백나무의 대표적인 자생지고, 동백나무를 좋아하는 나라는 동서양을 막론한다.
동백나무의 서양 진출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16세기경, 차와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동양으로 진출했다가 유럽에 동백나무를 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동백나무는 동양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럽을 비롯한 서양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지중해성 기후에 잘 적응한 동백나무는 유럽에서 새로운 품종으로 지속적으로 개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들어온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동백아가씨>가 발표된 시점인 1848년부터 1860년대까지 동백나무는 유럽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뒤마 피스가 불과 25살의 나이로 발표한 <춘희>가 히트를 치고, 이를 이탈리아의 베르디가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라는 이름으로 오페라화 하면서 동백은 더욱 인기를 얻었다.
'춘희'라는 제목에서 느낌이 왔겠지만 프랑스 파리의 창부와 순진한 청년의 비련을 그린 소설이다. 그렇다, 왠지 동백꽃과 해피엔딩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추운 겨울을 뚫고 붉게 피어난 꽃이 툭 하고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벚꽃 엔딩은 뭔가 가슴이 왈랑왈랑 거리고,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찌릿+한 쪽이 간질간질하다. 봄바람 휘날리며, 벚꽃은 지지만 사랑은 시작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동백꽃이 지는 모습은 꽃이 시들거나 진다는 말보다는 툭, 떨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갑자기 모든 게 끝나는 느낌이다. 시인 송찬호 또한 <동백이 활짝>이라는 시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 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동백이 활짝(송찬호)-
이러한 동백꽃의 결말을 보고 고결하다는 입장도 있고, 꽃 잎 낱장이 아닌 꽃 머리 전체가 일순간에 떨어져 버리는 모습을 불길하다 여기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춘사(椿事)'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라는 뜻이고 여기서 춘(椿)은 동백나무를 말한다. 한자를 풀어보면 동백나무에 일어난 일을 의미한다. 동백나무에서 갑자기 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춘사인 거다. 아름답던 꽃에게 갑자기 일어난 일.
하지만 이는 해석하기 나름일 것이다. 항상 강조하는 원효대사 해골물 정신. 나는 동백꽃이 땅에서 다시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나무에서, 그리고 땅에서도 아름답게 존재감을 보인다. '춘사'라고 불리며 떨어진 큰 동백꽃 덕분에 우리는 꽃을 귀 옆에 꽂아보기도 하고, 여러모로 각도를 잡아 가장 예쁜 '떨어진' 동백꽃을 찍어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땅에서 주운 동백꽃을 떨어진 꽃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저 우리에겐 여전히 예쁜 동백꽃이다. 아, 동백은 붉은 아이 말고도 다양한 개량으로 5,000여 종이 존재한다.
한겨울,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계절에 동백꽃은 우리에게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사진의 동반자이지만, 나에게는 인생 노동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동백 농장을 운영하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나는 평생 볼 동백꽃을 비닐하우스 안에서 사철 만나고, 그 매력에 빠져 나 또한 평범한 직장인에서 이렇게 식물매거진을 쓰는 식물 업계 종사자가 되었다. 분재나 철쭉이 가득한 하우스와는 달리 동백이 가득했던 하우스에 들어선 순간 이거슨, 데스티니~ 너무 예뻐서 나도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 과거 어느 축제에서 우연히 고른 이 시와도 같은 내 삶이다.
이 예쁜 동백을 롱패딩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 바로 우리집 거실에서다. 왠지 노지에서만 자랄 것 같은 동백은 실내에서도 키울 수 있다. 꽃이 커서 해를 좋아할 것 같지만, 농장에서도 약간의 차광시설을 두고 키울 정도로 반음지에서도 잘 자라 준다. 다만 습도 유지가 중요한데 건조하면 꽃이 피다말고 뚝뚝 떨어지게 될 것이다. 식물을 키울 때, 어떤 환경에 둬야 할지는 그곳의 자생지 환경을 생각해보면 된다. 동백나무는 제주도, 부산 동백섬, 전북 고창 선운사, 오동도 등 대부분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습도가 있는 남부 지역과 해안가 주변에서 살아간다. 그럼 이 조건을 맞춰주면 된다. 따뜻한 실내와 어느 정도의 습도를 맞춰주면 방 안에서도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꽃이 지더라도 사계절 내내 푸르른 잎을 볼 수 있다. 생각해보지 않았겠지만, 동백은 다른 나무들처럼 가을에 잎을 떨구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겨울,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에는 잎들이 냉해를 입기 쉽기에 남쪽에서 분포하게 된다. 또 자세히 보지 않았겠지만, 동백은 광택이 나는 잎을 갖고 있다. 우리가 네일 관리받을 때 제거하는 큐티클(cuticle)이 잎에 있어서 광택이 나는데, 이는 잎을 추위로부터 보호해준다. 또한 추위를 피해 내려간 남부 지방의 강한 태양광선을 어느 정도 반사시켜 식물 체내의 과도한 온도 상승 방지를 막아준다. 세상 똑똑하다.
이 똑똑한 꽃의 꽃말은 '당신은 내 마음의 불꽃', '불타는 사랑'이다. 이래저래 뭔가 Girl crush!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마음이 불타고 있잖아요
동백스러운 꽃말이다. 올봄에는 동박새를 꼬시는 동백꽃 같은 매력을 장착하고 타는 냄새나도록 연애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사계절 내내 이어지는 꽃과 함께하는 인생 사진도 함께 찍으러 갔으면 한다. 꼭 내년 겨울까지 그 인연과 함께하여 동백꽃과도 인증샷을 남기길 기도하겠다. 나는 매일같이 불타는 동백 농장 아들인 남편과 함께 농장에서, 종로 꽃시장에서 타는 냄새나도록 동백꽃과 인생 노동을 이어가 보겠다.
동백 / 정훈 作
차가울 수록
사무치는 정화(情火)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사랑하면 보이는 나무(허예섭, 허두영 지음. 2012)
한국의 동백나무(안영희 지음. 2013)
춘희(뒤마 피스 지음. 1848)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 (이명희 , 정영란 지음. 2015)
보리둥둥(보리아내_이보현)
꽃으로, 식물로 마음을 달래는 <바이 그리너리> 대표
35년째 농장을 운영하시는 시부모님과 함께 원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직접 길러낸 식물과 트렌디한 식물들을 종로 꽃시장 내, [식물상점] 바이 그리너리에서 판매하고 카페, 무대, 정원 등 다양한 공간을 식물로 구성하는 일을 합니다. [원예치료연구소] 바이 그리너리에서는 복지원예사(舊 원예치료사)로서 초등학생 스쿨팜 교육과 weeclass청소년, 특수학급 , 노인 대상으로 식물을 매개로 한 원예치료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에서는 [부부에세이]를 쓰는 보리둥둥 작가이자,
매주 목요일,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긴 [식물매거진] 바이 그리너리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유튜브 채널 보리둥둥TV를 운영, 식물을 키우고, 관리하고, 즐기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