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나를 어떻게 이끄는지에 대해, 일일 기자가 되어 조사해보았다. 기억을 뒤적거렸는데 장황하니까 영화 볼 필요도 없고 좋다. 다만 감동은 없다. 이 글이 멋있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면서 석양 딱 비춰주는 신 나와주면 "와 여운있다" 하고 끝장나겠는데.
필자는 현재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현재 새로운 논문을 위한 아이디어를 쥐어짜면서도 장학금 지원과 인턴십 지원, 그리고 학점 취득을 동시에 해야 한다. 하는 건 많은데 돈은 없는 애는 이런 생각하는구나, 하고 읽으시면 된다.
가장 싫어하는 것
알 수 없는 미래를 싫어한다. 아직 병역의 의무를 마치지 않아서, 박사 졸업을 하고 나서야 병역 수행을 해야 하면서도, 이는 스스로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이력서에서 서술될 타임라인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겠다. 거주하는 일본에서는 이런 말을 종종 한다.
[籍を置く], 직역하자면, [적을 두다] 겠지만, [조직 구성원이 되다]라는 뜻이다.
조직 구성원이 되지 않고 부유하는 것은 이력서에서 서술되기 힘들다. 나의 감정과 감상으로 채운 추억으로만 남기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진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지나왔던 산은 멀어질수록, 나의 작은 발걸음 같다. 작고 소중하지만, 작아서 나만 볼 수 있으니까 자랑도 못되고 영 그렇다.
알지 못하는 것을 싫어한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그렇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 어떠한 추억을 남기는지 알아야겠고, 부딪히고 부서졌던 나의 지원서류들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조차도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지, 표면적으로는 획일화된 사회라 하더라도, 그 속에 있는 알맹이가 가진 두려움과 갈망을 알고 싶다.
마지막으로, 과거에는 싫어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의 시작점이 나였으면 했다. 성공의 비법, 실패의 원흉 그 모든 것이 나에게서 시작되어야만 만족했다. 그런데 점점 결과의 이유, 그 정보가 나와는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지원한 서류에 대한 대답조차 듣지 못하고, 때로는 이유 없는 합격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분해되었다. 손에 쥐었던 성취감과 내 노력은 더 이상 묶이지 못하고, 행동과 결과는 서로 폐쇄된 이벤트가 되었다. 방바닥에 그만 엎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내 인생의 주인에서, 결과의 노예로 전락해버리는 무기력감에. 합격소식을 받아 들곤 "역시 나야!"라고 해봤자, 묶이지 않는 두 이벤트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은 망상뿐인 것이다. 내 전략에서 어떤 부분이 통했고, 어떤 부분을 왜 좋게 봐주었는지 알고 싶은데, "야 너 좋다" 하고 말아 버리면 분한 것이다.
무기력함의 막장에는 시간이 있다. 거머쥔 것들과 상처 입은 것들이 희미해지고, 부모님은 병원에 가시는 일이 잦아졌다. 지나온 산들은 기억으로만 남았고 넘어야 할 산들만 보이는 것이다. 일방향 도로에서 무엇인가 응어리에 발목 잡힌 채 앞으로 끌려나가는 죄수 같다,라고 생각했다. 한데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선인들이 살아왔던 길을 다시 걸어 나가는 사람이니까, 멀리서 보면 뫼비우스의 띠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에 걸쳐, 인생에서 주어를 "나"로 재주입하는 과정을 거쳤다. 뫼비우스의 띠를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살아보지 못한 미래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무질서인데, 그것이 멀리서 봤을 때 쳇바퀴라고 생각해봤자 방바닥에 엎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테고 그러다가 게임이나 한판 하면 웬걸 하루가 지나있고, 어느샌가 한 달이 지나있다.
좋아하는 것
그런고로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지만, 입으로만 강하게 말하는 꼴이다, 무섭지만 좋아한다고. 탈락과 채용 어느 것이든 간에, 난 이긴 것이다. 탈락한 이유를 알려준다면 감사하다만, 알려주지 않는다면 내 알바 아니다. 넘어야 할 산은 갑이고 나는 을이라는 것도 내 망상이겠지. 길 위에서 노예는 내가 아니라, 넘어왔던 산이다. 나는 산을 넘고 다음 산을 또 넘다가, 그러다가 너무 늙어서 끝이 나면, 그런 줄 알고 그만하겠다.
바라는 것
유튜브를 휘적거리다가 미국과 일본의 노숙자를 봤다. 산을 넘다가 산사태라도 난 것처럼 무너져 일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노숙자들 중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후 시간이 멈춰있는 사람이 있고, 코로나 사태 이후 파견업체에서 해고당하고 나선 시간이 멈춰있는 사람도 있다. 내 시간을 멈추는 것은 오직 죽음이길 바란다. 그중에서도 노환으로 인한 것이길 바란다. 일찍 찾아오는 지병을 늦추기 위해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어떠한 병이라도 '오지 마세요'를 말할 입장도 아니지만, 올만할 때 오길 바란다.
이제까지 일일기자 글동이의 레포트를 보셨다. 술먹고 멋있을 모양으로 막 말하는 아저씨들처럼 쓰게 되었는데, 영화처럼 썼어야지 참 기자가 실력이 형편 없는게 새로 들어온 인턴이라고 하자. 나는 인턴 지원서 다 떨어지는데 부럽다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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