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고자 함이 아니다. 내게 있어서 본질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박사과정은 실수다. 잃어버리는 수만 두는 과정이다. 스스로 고찰하여 연구를 행할 때 실수는 생각과 행동과정 두영역에서 각기 독립적이거나 인과적으로 발생한다. 생각이 틀렸는데 올바른 연구를 행할 때가 있다면 반대도 존재하며, 생각이 틀림으로써 행동이 틀리는 당연한 인과관계도 존재한다.
박사과정이라면 무릇 그래야 한다. 연구는 정답을 적어 내는 시험이 아니다. 틀린 곳을 찾아다니며, 사이사이 올바른 공간을 알아냄으로써 길을 만들어나가는 지뢰 찾기다. 내 생각과 행동은 이따금 수년 전부터 잘못되었었고, 나는 자주 과거의 내 논문을 고치며, 나는 큰 틀에서 몇 번이고 수정한 실험을 다시 한다. 너무나도 자주 쳐다본 나머지 자면서도 한 문장만으로 표현되는 사소한 실험 방법 절차에서 실수가 보이기도 한다.
나는 정답을 찾고 싶은데, 일상의 대부분을 오답만 내며 산다. 지뢰만 밟다 보니 내 모든 점이 틀린 것 같다. 나의 일상에서 또한 나는 틀리고 있으며, 내가 계획한 미래 역시 이미 오답인 것 같다. 어깨가 왜 아프지? 하고, 왜 목 근육이 이리도 아파서 두통까지 이어지지? 하고 찾아보니 내가 잘못하던 벤치 프레스가 이유였다. 건강하고자 꺼내든 운동이라는 패로 건강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얻었으니 이는 실패한 수인 것이다.
내게 있어서 유학은 착오다. 유학하는 학생들의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가장 높은 상관계수를 나타내는 요소 중 많은 논문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유학 기간인데, 나는 20대를 모두 유학으로 보낸다. 나는 정신적 문제의 책임을 찾고 싶었지만, 그게 나 자신이고 싶진 않았다.
가만히 쉬고 있다 보면, 한 시간이 넘는 시점에서 심적 알람이 울리면서 심장이 뛴다. 나는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내가 오답을 내던데, 하고 나는 스케줄을 쥐 잡듯이 뒤진다. 3시간마다 먹지 못하면 심장마비로 죽는다는 북부짧은꼬리땃쥐와 비슷한 생리가 아닐까. 시간이 될 때마다 오답을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틀렸다'라는 생각을 시간 별로 하다 보면 불안과 분노와 우울을 다양하게 만난다. 알람을 끄기 위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신다. 몽롱해지면 나는 비로소 오답이 아니게 된다.
낡고 더럽고 어두운 큰, 지하 광장 같은 곳에서 나는 열차를 기다리는 꿈을 꿨다. 열차는 세련되었는데 나는 타지 않았다. 나는 두 곳의 탑승장 사이에서 멍하니 정말 큰 열차를 바라봤다. 나는 여전히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열차를 바라보고 떠나보낸다. 언젠가 나가겠거니, 그러다가는 왜 아직도 나가지 못했을까 화를 내고, 불안해하면서 10년간 이곳에서 똬리를 튼다. 스스로 걸어 나가면 되는 선택지를 잃어버린 난 정말 인생이 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