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찰나
나에겐, 잊어야만 살 수 있는 날이 있다. 그렇게 잊히기를 기를 쓰고 노력했던 날인데, 잊히니 서글퍼졌다. 엄마의 기일이다. 까만 날이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고. 물비린내를 맡으며, 먹던 가락국수가 잊히지 않았던 날이다. 그런 날을 내가 잊었다. 뭐가 그리 바쁘고,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근데 생각해보니 늘 이맘때의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랬나 보다. 그런 날을 견디기 어려워 머리를 비워버린. 동생과 엄마를 보러 갔다. 늘 누군가의 차를 타고, 도움을 받아서 가던 길을,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걸으며 도착했다. 담장 넘어 보이던 기찻길이 눈에 선하다.
부르지도 못하는 이 단어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못내 서글펐다.
연초부터 나를 괴롭히던 과제가 끝이 났다. 많은 사람이 물었다. 어떻게 썼냐고. 잠은 안 잤냐고. 이 모든 게 지난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은, 그저 몰랐기 때문에 시작한 것 같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낸 나의 결과물은, 뿌듯했다.
애정 어린 칭찬과, 격려와 축하까지 너무 감사했다. 내 책을 사주겠다는 마음으로 서점에서 무슨 키워드로 찾아야 하냐며 묻던 친구, 언니, 오빠 다 너무 감사했다. 이 책은 6년 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생각하며 썼다. 개발자가 될 수 있을지, 개발이 적성이 맞는지 늘 고민하던 6년 전 나에게 말이다. 책을 다 쓰고, 출간을 하고, 첨삭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오늘의 이 감사함을 가슴에 새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빈말이 아니다. 나는 분에 넘치게 과한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 어떻게 갚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마지막 말을 남기던 동료의 한 문장, 숨소리, 쉼표의 간격까지 생생하다.
이 모든 게 과분한 사랑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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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했다. 몸이 좋아지는 것도 이상했다. 그전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고, 그저 깨끗하게 먹으려 했는데. 숫자가 아니어도 보이는 내 몸의 변화가 좋았다. 여전히 급하고, 기다리기 어렵고, 호흡은 언제 쉬어야 하는지 자꾸 되뇌지만, 그래도 늘어나는 숫자와 줄어드는 시간이 좋았다. 특히 개인전으로 했던 AFK를 하면서, 동기부여도 됐다. 다음 달부터 대회가 줄 줄이다. 코로나가 풀리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열리는 대회가 반갑다. 개인전보단 팀전에 나가고 싶다. 어차피 이 모든 게 즐기려 하는 거니까.
개발자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짐했던 게 하나 있다. 나처럼 비전공자이고, 불안하고, 나이 때문에 걱정하고, 금전 문제로 걱정하는 사람을 위한 강의를 하겠다고. 오래 걸렸다. 6년쯤. 짧은 30분이 아련했다. 그 옛날 내가 했던 약속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서. 최근에 봤던 글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조금 아는 사람이 생초보를 가르칠 수 있다.
많이 알고, 모든 질문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다 답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갖춰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다. 그럼 그 수준은 도대체 어디까지였을까.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건 그저 나의 욕심이고, 허울 좋은 핑계였을 뿐이라고.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서 어떤 걸 해야 하는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개발잔데, 개발 공부를 거의 못했다. 핑계야 많다. 그런데 핑계를 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부족했다. 더 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이런 교훈이 있어서 나의 이번 달은 저번 달 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