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엔 부귀영화를
지난달 이 근처 지나가다가 가끔 가던 라면집 문앞에 3개월치 전기세가 밀려 전기공급을 끊는다는 안내장이 붙어있는 걸 봤다. 몇달 동안 난 그 앞을 지나가면서도 문이 닫혀있는걸 몰랐네. 사장님은 무사한걸까 걱정됬다. 아까 왠일로 고카페인 편의점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나갔다가 진열대가 눈에 띄게 휑 해서 왜이리 물건이 없어요 하고 물으니 곧 가게 정리하게 되어 더이상 주문을 넣지 않고 있단 얘기를 들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슬프다. 동네에 종종 가던 식당과 가게들이 올 하반기 들어 몇 개나 문을 닫았다. 세상 살아가는데 불확실함이 가득하다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있을까. 2021년 달력은 부귀영화의 상징 모란을 가득 담아서 만들어야지. 부귀영화를 그대 품안에.
-2020년 10월의 메모.
그리고 또 몇달이 지났지만 코로나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 편의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텅 빈 가게 유리엔 '임대문의'가 붙어있을 뿐이다. 참으로 괴이한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 만들어 본 2021년 새해의 달력엔 모란을 가득히 담아봤다.
연말이면 매해 몇백장의 달력과 연하장을 직접 포장하고 우편으로도 보내는 열정이 있어왔는데 올해는 그 마저도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코로나라는 핑계일까, 내놓기도 부끄러운 글이지만 내내 책을 위한 글을 쓰느라고 한해를 소진하느라 진이 빠진걸까. 어쩌면 그냥 귀찮아져서일까 . 어쨌거나 만나는 이마다 반갑고 기쁘게 새해의 달력을 손에 쥐어 주고 있다. 부디 건강과 행복만이 가득하길. 그림 속 탐스러운 모란처럼 좋은 일만 가득하길. 코로나 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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