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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Jun 05. 2024

시간을 달리는 시간

최근 유튜브에서 자주 보았던 광고가 있다. 홍경 배우가 나오는 노이즈 캔슬링 스터디 헤드폰 광고인데,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던 남학생은 평소와 달리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는다. 초침과 분침을 아무리 세봐도 시간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는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학생은 거실에 나가 엄마에게 “엄마 아무래도 시계 건전지가 죽은 것 같은데요?”하고 말한다. 


   아들의 말을 들은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렇게 대꾸한다. “너도 같이 죽기 싫으면 공부하는 건 어떨까?” 아들은 눈치 빠르게 방으로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그 순간 '시계소리 때문에 집중하는데 방해되셨나봐요.’하는 문구가 뜨면서, 노이즈 캔슬링 스터디 헤드폰 제품의 소개가 이어진다. 처음 광고를 보고 블랙 유머 같은 기이함에 뜨악하면서도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르지 않다. 시간을 다스리는 마법을 갖지 않은 이상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간이 주어진다.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168시간, 30일 기준으로 한 달이면 720시간이다.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이 시간이라는 놈은 상대적으로 짧게도, 길게도 느껴지는 거 같다. 


   올해는 유난히 시간의 흐름이 내게만 최고 속력인 느낌이다. 분명 전년도와 똑같은 하루하루의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데, 하는 일에 있어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몇 시간 내로 끝냈을 것 같은 일도 몇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만 같다. 일주일에 한 편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한 주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눈을 감았다 뜨면 어느새 주말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그런 하루하루를 불평과 불만으로 채우기보다 조금씩 더 감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타고난 투덜이라 감사가 어려운 날도 있지만, 맡겨진 역할을 잘 해내고 나면 퇴근 후의 휴식 시간에 죄책감 없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다. 그렇게 꽉 채운 하루가 쌓여 내 삶이 못나지 않았다는 위안과 의미가 생기고 괜스레 뿌듯해진다.


   비록 예전보다 일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한 가지 한 가지에 더 정성을 쏟아야만 해서 때로 버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여전히 나를 골고루 사용할 곳이 있음이 감사하다. 언젠가 이 모든 필요가 사라져 홀로 남겨지는 날에는 오히려 허전하고 외롭지 않을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할 수 있는 한 그 속에서 열심히 시간을 달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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