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게 나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Sep 25. 2024

싫어하며 닮아가는 사이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가 싫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의 입말이 싫었다. 엄마는 언제나 같은 얘기도 사람을 불쾌하게 할 표현들만 골라서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싫은 말에도 싫다는 내색을 잘 하지 못했던 건, 아직은 내가 엄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기도 오래가지 않았다. 학교폭력으로 점철된 지독한 사춘기에서 오는 온갖 고통과 힘듦을 엄마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던 나는 엄마의 말에 매번 극단적일 정도의 딴지를 걸었다. 당연히 엄마도 기분이 좋진 않았을 거다. "애들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는 엄마였다면 나 역시도 제풀에 꺾였을 텐데, 우리는 매번 지치지도 않고 싸웠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강해져야만 했던 엄마에게는 사사건건 엄마가 하는 말에 시비를 거는 둘째 딸이 꽤나 마뜩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엄마가 쓰는 경상도 사투리 중에서 아무리 해도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한 가지는 가시나라는 말이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 말을 들으면 왠지 기분이 나빴다. 엄마가 "가시나야"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잔뜩 볼멘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왜 나만 가시나라고 불러 그럼 오빠도 머시마라고 불러야지. 오빠한테는 아들이라고 하고 왜 나만 가시나야?"


   엄마는 내 말에 콧방귀를 뀌고는 "가시나를 가시나라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르나." 했다. 그럼 또 나는 지지 않고 "하고 많은 좋은 말도 있는데 왜 굳이 가시나라고 부르냐고 싫다는데도." 하고 마구 따졌다. 엄마에게는 가시나가 그저 경상도 사투리로 여자아이를 부르는 말이었지만, 내게 가시나는 오빠와의 차별과 설움이 담긴 욕설과도 같은 단어였다.


   어느 날부는 안 그래도 싫어하는 가시나라는 단어 앞에 꾸며주는 형용사가 하나 더 붙었다. 내가 엄마의 지시(엄마에게는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원하지 않는 것들)를 따르지 않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엄마의 지시를 거부하면, 우리 엄마는 나를 항상 이렇게 불렀다. "망할 놈의 가시나"라고. 그냥 가시나도 싫은데 망할 놈이라는 단어까지 붙이니 더 화가 났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부를 때마다. 미래의 내 인생이 망하는 느낌이어서  나는 엄마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 망할 놈 아니고 흥할 놈이거든."


   우리 엄마는 TV를 볼 때도 TV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얼평을 사정없이 해댔다. 어린 마음에도 너무 부끄러워서 왜 사람 외모를 가지고 그렇게 말하냐고 여러 번 항의했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들을 수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문제는 지나가는 사람 모두의 얼평을 한다는 거였다. 방금 지나간 아저씨는 기생 오래비같이 생겼고 그 뒤에 지나간 아줌마는 풍선같이 생겼고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부끄러워 도망가기도 했었다. 자라면서 계속 그런 일들을 겪으니까 나는 나중에 절대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과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의 말이 강해야만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지지리도 말 안 듣는 사고뭉치에 천방지축인 나 때문이었다는 걸 아주 조금은 깨닫는 나이가 되었다. 너무 커 보였던 엄마가 이제는 힘도 약해지고 기운도 없어지고 예전보다 나의 지적질에 잘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여전히 엄마의 어떤 표현들은 나를 속상하게 하고 화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도 이전보다는 엄마의 말을 웃어넘길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상처받는 말이 아니라 예쁜 말을 듣고 싶어서 말을 예쁘게 하는 남편을 만났고 덕분에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귀에 엄마가 사용하던 것과 비슷한 말들이 들리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이런 말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가장 싫어하던 것을 오히려 닮아간다고 했던가. 나름대로 부드럽게 말하는 법을 연습하고 노력도 했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소용없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사용했던 강한 표현들에 대해 한번 자각이 되니 자꾸만 스스로의 입말 습관을 의심하고 점검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경각심이 생긴다.


   이런 걱정을 하는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외모도 그렇지만 성격도 엄마를 참 많이 빼닮은 딸이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정확한 거 좋아하고, 명확한 기준이 있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엄마의 특성들을 내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나의 입말을 단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8을 내려놓으면 무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