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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Dec 31. 2024

행복하고 슬펐던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고 했던가. 아무리 힘든 시간을 보냈어도 끝자락의 마무리가 좋다면, 힘들었던 기억이 상쇄되어 지나온 날들을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는 필터로 잘 포장하여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2024년의 마지막 날, 한 해를 돌아보니 두려움으로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환대와 사랑을 받았고, 따뜻한 온기도 많이 얻는 상반기였다. 새 힘을 얻어 오래 미뤄두었던 좋아하는 일에도 재도전을 시작했고 포기했던 일에 마지막 용기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운 일 가득한 하반기가 될 줄 알았는데, 러시안룰렛과도 같은 무차별 갑질의 대상이 되었다. 우울감과 공황증상이 재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으로 간신히 정신줄을 잡고 위태롭게 버텨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내일에 대한 기대도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내자고 다짐하며 매일을 살았다.


   간신히 조금 나아졌을 때, 예상 못했던 고통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일들이 생겼다. 일단은 차바퀴가 갑자기 펑크 나서 위험할 뻔 했다. 의도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한동안 몸도 마음도 고생하게 되었다. 사고 처리를 기다리다가 감기가 옴팡 걸려 독감으로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다.


   무엇보다 슬펐던 것은 11월에는 사랑하는 제자가, 12월에는 함께 찐한 우정을 나누었던 후배가,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입원한 지 3주 만에 사촌동생이 세상을 떠나는 일을 차례로 겪었다. 인간의 생명이란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 것인지. 평생을 지속할 것처럼 화려하게 빛나다가도 일순간에 그 반짝임을 잃고 사그라지는 이중적인 얼굴에 답답하고 속상했다.


   사실 이 모든 죽음들이 너무도 황망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아직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써 마음을 다잡고 있다. 아직 학기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내게는 맡은 일이 있으니까 그저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2024년의 행복함과 즐거움에는 깊은 감사를, 남아있는 슬픔과 고통은 스스로 잘 달래면서 올해를 마무리해야겠다. 온몸과 마음이 휘청거릴만한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아직 버틸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것이 내가 예전보다 조금은 자라고 있고, 어른다움을 배우며 성숙해 가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를.


   국가적으로는 절차를 무시한 계엄령이 내려져 혼란이 있었고, 어렵게 쌓아온 문화선진국으로의 위상도 떨어질 뻔했고, 환율과 증시도 요동쳤다. 대통령은 탄핵 재판을 기다리고 있으며, 여러 커뮤니티에서 나라의 경제와 미래에 대한 각종 어두운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또한 최근 일어난 무안공항의 사고로 가슴이 아프다. 개인적으로도 슬픔이 많았으니 조용히 애도하는 심정으로 보내는 연말연시가 될 것 같다.


   2025년에는 오래 기다리던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준비하고 있는 두 편의 공연을 무사히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일하는 곳이 달라질지 그대로 남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모든 발걸음을 주의 뜻대로 인도해 주시길... 그 어떤 상황에도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고 그저 하루를 충실히 살아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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