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나를 견고히 유지하고 용기를 얻는 발리인들의 비밀
이번 발리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것은 #차낭 #canang 이다.
인도네시아는 매우 흥미로운 나라이다. 지리학적으로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 개신교를 믿는 필리핀, 불교를 믿는 태국과 밀접해 있지만 인도네시아 인구의 85%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하지만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 인구의 대다수는 힌두교를 믿는다. 하지만 동쪽의 말라쿠 섬은 또 90% 이상이 개신교를 믿는다고 한다. 각각의 종교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히 공존하고 있다.
다시 차낭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슬람 문화권인 발리는 16세기 이슬람 문화와 자신들만의 토속 신앙을 조화롭게 섞은 ‘발리니즈 힌두’ 종교를 믿고 있다. 이 발리니즈 힌두는 이슬람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토속신앙의 문화의 명맥 역시 놓지 않고 있다. 내가 여행을 간 6월은 이슬람 라마단 기간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마저) 라마단을 지키고자 입에 물 한 모금 대지 않으면서도 하루 세 번 신에게 공물을 올리는 것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공물이 바로 차낭이다. 발리인들은 하루 세 번 (아침 9시, 12시, 오후 6시 정도 인 듯 하다) 차낭을 가게 앞에 두어 오늘 하루도 무사태평 하기를 신께 빈다고 한다.
차낭의 재미난 점은 그 장소가 가게 앞, 집 앞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원, 먼 길을 가는 트럭, 가이드의 차량, 파도가 거센 해변, 사창가 앞, 심지어는 오토바이 위에서도(!) 차낭은 매일같이 놓여진다. 신장개업이든 몇 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차낭은 매일 아침 신들에게 바쳐진다.
차낭의 구성은 간단하다. 과일 조각 몇 가지, 밥알 몇 개, 꽃과 나뭇가지로 구성한 뒤 대나무잎으로 짠 바구니에 정성스럽게 담는다. 마지막에는 향을 피워 문 앞에 둔다. 얼핏 지나가면 붉은 꽃잎 초록 잎만 보여 구성은 한결같아 보이지만, 집집마다 차낭의 구성이 다르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기본은 쌀알이지만, 발리인은 자신의 형편껏, 있는 음식을 차낭에 바쳐 신께 감사를 빈다. 옥수수를 올린 차낭도 있었으며,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 앞 차낭은 젤리가 귀엽게 놓여 있었다. 오레오, 크래커, 멘토스가 놓여져 있는 차낭도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올리는 차낭은 아침에 가장 먼저 뽑은 커피 반 컵이 올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낭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상당할 것인데, 어떻게 할까? 발리에는 길을 돌아다니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참 많다. 사실 이들은 반 집강아지/집고양이인데, 매일 세 번 올려지는 차낭은 이들과 야생비둘기의 몫이다. 매일 밤 9시가 지나면 발리인들은 차낭을 수거하는데, 대부분 동물들이 깔끔하게 먹고 남은 껍질을 수거 하곤 하였다.
여행자의 얕은 지식으로 이들의 수천년 종교를 이해하기엔 부족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발리인들의 종교는, 묶여있는 의무감이 아닌 일상생활 이었다.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매일 차낭으로 신께 감사함을 기도하고 하루를 연다. 차낭에 올리는 공물이 풍족하건 빈곤하건 이들은 전혀 자랑스러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신께 받은 선물, 어머니 자연에게서 받은 선물을 그대로 공존하는 생명체들에게 나누어준다.
오늘 하루는 공쳐도, 발리인들은 웃는다. 오늘 힘들었던 점보다 신이 나에게 준 행운을 먼저 생각하며 미소 짓는다. 힘에 부쳤던 하루를 원망하기 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신이 오늘 나에게 준 감사를 생각하며, 내일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릴 생각부터 한다. 오색찬란한 차낭만큼 아름다운 발리인들의 마음이 훨씬 고결하게 느껴졌고, 어떠한 아집과 곤조, 기류 없이 토속신앙과 다양한 종교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조금은 부러웠다.
한 번의 장엄한 의식, 단번에 끝나는 화려한 공물 보다는 매일 감사하는 마음이 발리를 움직이는 힘이다.
삶도 그렇다. ‘인생 한 방’ 보다는 ‘매일’의 힘이 나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