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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시토리 Mar 08. 2017

구글맵을 보지 않을 '쿨함'

온전히 식신로드를 즐기기 위한 나만의 방법

이번에 다녀온 여행에는 나만의 작은 목적이 있었다. 바로 구글맵을 보지 않고 다닐 ‘쿨함’을 가지는 것. 


지도를 보지 않고 다니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다니면참 좋겠지만 그런 용기를 가지기에는 난 너무나도 길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으레 우리는 일종의 마법 같은 의무감을 가진다. “반드시, 삼시세끼 내내, 맛있는 것만 먹고 다닐 것”


 ‘##에서꼭 먹어야 할 리스트 10가지’, ‘@@까지 가서 이거 안먹고 오면 후회해요’ 라는 글들이 마치 마감시한이 닥치듯 나를 압박한다. 언젠가부터 마치 나를 포함한 많은 여행자들은 마치 성지순례를 온 신도처럼, 인터넷에 나온 ‘맛집 리스트’를 성지순례 하며, 공간을 느끼기 위해서 구석구석을 누비기 보다는 미리 찍어둔 별을 따라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여행에서의 내 행적


여기에 ‘돈 들여서 왔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라는 수식어는 나의 이런 의무감에 양념을 더해 더욱 사명감을 불태운다. 구글맵과 연관된 트립어드바이저의 평점은 순식간에 성경이 되고, 이미 다녀온 이들의 별점은 성인(成人)의 말씀이 되어 흔들리고, 호평 하나, 악평 하나에 팔랑귀가 되어 쉽사리 목적지를 선택하지못하고 계속해서 4.7인치 화면 크기만 늘렸다 줄였다, 찍어봤다다른 곳을 갔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여행지에서의 귀한 1시간이훌쩍 날아간다. 겨우 타협하여 식당을 가면, 맛있으면 다행이지만그렇지 않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돈과, 시간만날리고, 일행과의 멋쩍은 시간과 (여행의 피로가 누적된 탓에발화점이 된) 다툼은 반갑지 않은 ‘덤’으로 찾아온다. 이쯤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럴려고 여행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2014년 부다페스트 여행에서 방문한 카페, '세계 3대 카페'에 속아 15분 기다려 입장했으나 스타벅스 커피보다 맛이 덜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은 본질적으로 ‘피곤함’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피곤할 수 밖에 없는 이동시간과 비행기에서의 무료함을 제외하더라도, 낯선 환경에 자발적으로 내던져져서 100% 예측할수 없는 식당과 음식을 선택하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상당히 긴장되고 피곤한 일이다. 기다림과 예측불가능함에 대한 피로감은 비단 외부의 식당이 아니라 올인클루시브 호텔에 마련된 부페라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매끼 맛있게 식사를 할까? 아니 꼭 해야한다는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까? 때로는 후기에 낚여서 다시는 안오겠다고 다짐을 할 때가 있고, 느낌대로 갔다가 인생 식당을 만날 때도 있다. 넘쳐나는 호평에 가봤는데실망만 안고 돌아올 때도 있다. 순간의 선택이 몇 시간의 기분을 좌우할 수는 있어도, 일상 전체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다. 맛있게 먹으면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맛없는 걸 먹으면 순간은 아쉽지만 뭐 어때- 하면서 주변의 풍경이나 식사 파트너와의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왜 쉽사리 그러지 못하는가? 아마 ‘맛집 찾기’가 여행을 풍요로이 만들어줄 수단이 아닌 ‘must’의 목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의식주에서 ‘식’은 매우 중요하다. 살아갈 영양과 에너지를 주고, 여행지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준다. 식도락여행 역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여행 목적이고, 리프레쉬 이다. 하지만 이 자체를 여정으로 생각하지 않고 승패를 나누는 ‘성공’으로 생각했을 때, 이는 일이 되고 피곤해진다. 우리는 구글 맵과 평점 검색에 시간을 날리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오지 않았다.다시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자, 더 먼 도약을 위한 재충전을 위해 온 것이다. 일상에서도 조그마한 스크린을 본다고 영혼을 빼앗기고 있는데, 리프레쉬를 하러 와서까지, 재충전을 하러와서까지 성공하고자 할 필요가 있을까? 



맛없으면 어떻고, 또 기대와 다르면 어떠랴. 여행의 본질이 ‘낯섦’과‘자발적 피로함’ 이라면 그 과정 또한 여행인 것을. 구글맵을 볼 시간에 고개를 들고 피부와 숨으로 그 지역을 느끼고, 직감을따라가자. 분명 파랑새처럼 당신의 뇌에 낀 군더더기를 싹 씻어줄 맛집이 나타날지어니. 


2014년 빈 여행 도중, 무작정 느낌닿는 대로 들어간 카페는 120년 된 역사의 카페였다. 커피맛도 매우 훌륭.



2017년 발리 여행. 평점이 안좋던 음식점이었는데 '감으로' 들어가본 결과 한 끼 4000원이라는 훌륭한 아침식사를 만났다.



PS. 물론 필요한 정보를 ‘적당히’ 얻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사전 구글맵 찾기를 딱 3분으로 한정하고, 무조건 단거리 위주로 측정하고, 마음을 비우고 갔다가 뜻밖의 인생 맛집을 만났다. 비록 여행 내내 한 번도 구글맵을 보지 않은 쿨함을 지니기엔 이번에도 실패했지만, 적당한 타협은 언제 어디서든 약이 된다. 



가장 최근 발리에서 만난 인생 타이 레스토랑. 쿨하지 못하게 구글맵 3분 찾아서 갔지만 이정도면 눈감아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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