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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담 Jun 08. 2016

여행 예찬론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

 나 또한 여행을 좋아하고, 더 많은 여행과 새로운 곳을 경험하기를 원하지만 많은 미디어와 온라인에 범람하는 여행에 대한 예찬론, 특히 무작정 떠나라 식의 풍조는 여러 측면에서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여행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게 떠나도 좋다는 식의 무조건적인 찬양 일색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여행에 대한 지나친 열망은 지치거나 병든 마음에서 우러난다고 생각한다. 에머슨의 책에서도 동일한 문구가 등장한다.

여행에 대한 열망은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이 모든 소셜미디어 환경을 지배하는 여행에 대한 열망들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나 자신을 포함)의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하여 다소 슬프다. 그런데 그 아픈 마음이 단지 어딘가로 간다고해서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문제는 내적인 영역에 있는데 외적인 자극으로 해소가 가능할까?


 그러한 측면에서 이것은 수단의 목적화라고 볼 수 있다. 여행 뿐만 아니라 결혼, 취업 등 수단으로 남아야할 대상들이 목적화 되는 현상이다. 목적은 사랑, 평화, 자유, 창조성과 같은 가치와 관련한 것이어야 하는데 성과만 추구하는 세상에 길들여지다보면 가치 따위를 논하는 것은 대단히 배부른 소리처럼 여겨지는 사회다. 그러다보니 수단이 어느 순간 목적이 되어 버린다.

 여행은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나 그것 자체가 목적이나 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한 수단이어야할 결혼, 자아성취와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어야할 직업 등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여행 또한 그렇게 되어버린다.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


 특히 여행이 엄청난 도전인 것 처럼 미화되는 경우도 많은데 개인적으로 여행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을 개척하거나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하거나 아무도 촬영 못한 곳을 촬영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라면 오히려 도전과는 조금 거리가 먼 일이 아닐까 한다. 되려 그 반대의 습성에 가깝다. 

도전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단지 주변환경이 바뀌어서 거기에서 오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도전일 수 있을까? 문화가 다른 곳에 가니 당연히 생활의 어려움이 생기고, 배고픔도 느끼고, 불편함도 느끼는 그 당연함을 도전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도전과는 거리가 먼 수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언가가 힘들어서 떠난다는 식의 이야기는 도전이 아닌 도피에 가깝다. 로드무비에서도 흔히 쓰이는 이야기 구조인데 그 결과는 대부분 주인공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내용으로 끝난다. 이런 영화에서 인물의 외적성장은 없고, 내적성장만 존재하는데 현실에서는 내적성장 또한 없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영화에서처럼 뚜렷한 딜레마를 겪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딜레마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가치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인데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사회가 되다보니 딜레마라고 할 정도의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겪는 사회생활의 스트레스 정도의 힘듬으로부터 떠난 여행이 내적 성장으로 연결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진짜 도전은 바로 지금 내가 있는 곳에 항상 있다. 돈, 결혼, 직업 등 가치 추구를 위한 수단이어야 할 것들을 마치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할 것들이라고 거짓말하는 사회, 그 사회에서 내가 변화를 주거나 해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 결혼, 돈, 집 사회는 이러한 것들을 꼭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이러한 것들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상대적 박탈감. 이 모든 부조리해보이는 환경 속에서 꿋꿋이 홀로 서서 내가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모든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신은 아니지만, 이 모든 일에 대한 나의 반응만은 어는 순간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완전한 나 자신이 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 그리고 계속 시도하는 것, 그게 진짜 도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무언가를 포기하고 어딘가로 떠나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 느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어디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예술성이다.

 

 아주 많은 나이는 아니고, 지겨울 정도로 많은 곳을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좀 더 안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무언가를 소비하듯 해치우듯 혹은 보여주기 위한 여행은 그만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만큼 준비 못한 여행을 일주일 앞둔 지금 점점 생각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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