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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다정 Jul 07. 2024

피그마 디자인 컨퍼런스 ‘Config 2024’ 회고

 컨피그가 만든 사용자 경험은 어땠나

지난 6월 26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Config 2024’에 다녀왔다. Config(이하 ‘컨피그’)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인 툴을 만드는 Figma 주최의 디자인 컨퍼런스이다. IT 디자인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컨퍼런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 샌프란시스코까지 갔나

돌아오니 다들 어떻게 직접 갈 생각을 다 했냐고 묻는다. 사실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같은 IT 업계 친구들 몇몇이 간다는 걸 알고 “어 나도 가볼까?” 하고 갔다. 그리고 어차피 미국까지 간다면 컨피그만 갈 건 아니고 여행도 할 테니 조금 이른 여름휴가를 간다고 생각했다.

친구 따라 강남.. 아니 샌프란 가다


나는 쭉 IT/스타트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아왔고 그동안 수많은 IT 및 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어떨 땐 커뮤니티 활동의 일환으로 직접 행사를 열어보기도 하고 연사로 참여한 적도 있었다. 오프라인 행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산되는 에너지를 늘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연스레 세계적인 규모의 컨퍼런스에서 느낄 수 있는 바이브는 어떨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만약 기대보다 별로더라도 느끼고 배우는 게 있을 것 같았다.

(현재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UX Writers in Korea’에서 연 밋업 후기)



컨피그가 만든 사용자 경험

글을 통해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행사 자체의 UX(사용자 경험)에 대해 말해본다. 사실 해외 컨퍼런스 자체가 처음이라 다른 해외 비교 대상은 없지만, 국내에서 참여했던 수많은 행사와 비교할 때 새로웠던 점을 나누고 싶다. 구체적인 세션의 내용은 이미 여러 채널에 올라와있기도 하고, 피그마 공식 유튜브에도 있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인상적인 사용자 경험 네 가지를 꼽아봤다.

1. 발랄한 컨퍼런스

2. 강한 브랜드와 팬덤

3. 뛰어난 접근성

4. 일관된 발표 스토리텔링


컨피그가 열린 Moscone Center



발랄한 컨퍼런스

컨피그는 경험한 컨퍼런스 중 ‘가장 발랄한’ 컨퍼런스였다. 가보기 전엔 막연히 내가 갔었던 컨퍼런스에 비추어 좀 더 학술적인 분위기로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일단 메인 행사 전 날 오프닝 파티에서 1차로 충격받았다. 처음엔 파티라고 해서 말만 파티인 줄 알았는데, 진짜 춤추고 술 주는 파티였다. 와인과 맥주를 비롯해 간단한 음식을 부스에서 무료로 갖다 먹을 수 있었고 여러 나라 음식이 있어서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파티에 빠질 수 없는 게 음악이니만큼 DJ가 신나는 음악을 계속 틀어줬다(Yaeji, Peggy gou 같은 아티스트의 음악이 나올 땐 국뽕(?)찼음). 무대 앞쪽엔 사람들이 춤추고 있어 마치 음악 페스티벌 같은 분위기가 났다.


행사 전날 바로 옆 'Yerna Buene Gradens'에서 열린 오프닝 파티


본 행사 기간에는 여러 부스에서 즐길 거리가 많아 재밌었다. FigJam 컨셉을 활용한 포토존, 입장 굿즈로 나눠준 가방을 패치로 꾸밀 수 있는 이벤트 등 참여형 부스가 많았다. 가방 꾸미기 부스는 인기가 너무 많아서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가방 꾸미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굿즈 가방을 행사 기간 내내 들고 다니는데, 걸어 다니는 전광판 역할을 했을 것 같다. 실제로 행사 기간 동안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컨피그 가방을 멘 사람들을 정말 흔하게 봤다. 컨피그를 모르는 사람도 저게 뭔지 호기심이 생겼을 것 같다.


FigJam 컨셉의 포토존. 노란 가방이 입장 굿즈로 나눠준 가방이다.
피그마 가방을 패치로 꾸밀 수 있는 이벤트 (사진 제공 @sanghyo_yee)
디자인 데스 매치 현장

또, ‘디자인 데스 매치(ㅋㅋㅋ)’라고 즉석에서 팀을 만들어 특정 주제에 대한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디자인 배틀 같은 게 있었다. 정말 디자인 행사다운 건전한.. 이벤트였는데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는지 재밌는 컨셉이었다.



강한 브랜드, 강한 팬덤

다양한 부스나 이벤트를 통해 참가자들 스스로 행사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모습을 통해 컨피그가 ‘어떤 인사이트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닌, 참가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이런 인상이 이번 컨피그만을 위해 만들어진 컨셉이 아닌, 피그마라는 프로덕트가 계속해서 쌓아온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발현되었단 점이다. 피그마는 실시간으로 공동 작업하는 컨셉에서 출발한 프로덕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매우 동적인 플랫폼인 셈이다. 또, Community를 통해 누구나 자신이 만든 플러그인이나 탬플릿을 공유할 수 있다. 애초에 피그마가 가진 '공동 참여', '동적 플랫폼'같은 키워드가 있기 때문에 컨피그에도 같은 결의 브랜딩을 자연스레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컨피그를 통해 브랜딩에서 진정성의 역할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런 강한 브랜드를 기반으로 피그마가 정말 충성도 높은 팬덤을 가졌다는 것도 행사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굿즈샵은 인기가 너무 많아서 입장에만 한 시간을 기다릴 때도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디자이너들이 피그마 로고가 그려진 모자와 티셔츠를 사기 위해 줄을 서있는 모습이 정말 덕질의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피그마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뜨거운 관심은 오프닝 키노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피그마 슬라이드(Figma Slides)를 비롯해 새로운 기능을 발표할 때마다 마치 아이폰 처음 나올 때 같은 환호성이 나오는데 이렇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경험은 어떨까 궁금하면서도 부러웠다.


줄을 너무 오래 서 있으니까 현장 스탭이 기분 풀라고(?) 스티커를 나눠줬다.


구글 디자인, 노션 부스


사용자 피드백을 받는 부스도 있었다. 나도 하나 남기고 옴.ㅋㅋ



뛰어난 접근성

컨피그는 전반적인 접근성(Accessibility)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우선 모든 세션에서 큰 스크린에 수어 통역이 제공됐는데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국내 컨퍼런스에선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말 그대로 어디서든 어려움 없이 세션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행사장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메인홀이 아닌 곳도 보통 2,000명 정도 들어가는 규모이다.) 웬만하면 연사자가 작게 보일 수밖에 없는데 스크린이 곳곳에 있어서 어디에 앉든 편안하게 세션을 즐길 수 있었다. 또, 홀 안에 꼭 있지 않아도 라이브 중계를 통해서 중간에 잠깐 쉬러 나오더나 부스 줄을 서면서도 세션을 들을 수 있었다.


(왼쪽) 모든 세션에 수어 통역이 제공되던 모습. (오른쪽) 스크린이 여기저기 있어서 멀리 있어도 쾌적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한국어 포함 다국어 통역을 지원한 점도 접근성의 일환일 것 같다. 앱으로 제공되었고, 통역 특성상 약간 딜레이가 있긴 했지만(농담에서 1초 정도 늦게 웃게 된다.) 계속되는 영어 듣기 평가에 급 피로해질 때 유용했다.


또, 이건 다양성 측면에 가깝지만, 행사 내내 점심 도시락을 무료로 제공했는데 그들에겐 당연하게도.. 채식 옵션이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이런식으로 더 많은, 다양한 참가자가 똑같이 행사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장치를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었다.


행사 기간 동안 점심 도시락을 줬다. 여러 메뉴 중 고를 수 있었다.



일관된 발표 스토리텔링

오프닝 파티나 부스도 좋았지만 역시 컨퍼런스의 꽃은 발표 세션이었다. 오프닝 키노트를 비롯해 이틀 동안 10개 남짓의 세션을 들었는데 전체적으로 스토리텔링의 퀄리티가 높다고 느꼈다. 연사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흥미나 몰입도는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모든 세션의 흐름이 굉장히 일관성 있고 안정적이었다. 여러 세션을 들으며 아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청중과 공감대를 먼저 형성하고 냅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본론 전에 얘기할 주제를 한 번 요약한다.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본론을 얘기한다.

중요한 내용을 다시 요약하며 마무리한다.


사실 좋은 발표를 떠올렸을 때 새롭진 않은 틀이긴 해도 내가 들은 모든 세션이 위 흐름을 정확히 지키고 있었던 게 인상적이었다. 특히 본론 앞뒤로 한 번씩 주제를 요약해 주는 슬라이드가 꼭 있어서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도움이 됐다.

대부분 초반에 이런 요약하는 슬라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 발표가 20분 안팎인 점도 맘에 들었다. 이전 컨퍼런스 경험에서 길면 1시간 짜리 발표를 들었던 걸 떠올리면 당연히 1시간을 오롯이 집중하긴 어려웠던 기억이 있어 20분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발표는 길지 않지만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여러 연사의 세션이 배치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채로운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인상적이었던 슬라이드 중. (왼쪽) 아틀라시안 디자인시스템의 변화. (오른쪽) 디자인시스템에서 테마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중.


또, 발표 슬라이드의 디자인 퀄리티도 매우 뛰어났다(역시 디자인 컨퍼런스인가!). 인포그래픽이나 인용문 타이포 같은 게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꼭 모션이 들어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나하나의 슬라이드가 시각적으로 매력적이었다. 아무래도 현대인의 집중력을 고려한다면… 짧은 발표 시간, 일관된 스토리텔링 방식, 슬라이드의 시각적인 화려함 모두 어떻게든 세션에 몰입감을 주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회사나 외부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을 때 컨피그에서 느낀 것들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밖에 재밌는 순간들

컨피그 자체와 더불어 컨피그를 계기로 다양한 IT 업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예를 들어 오프닝 파티에서 피그마 UX 라이터 분과 인사했는데 피그마 UX 라이팅팀의 2022년 컨피그 발표 ‘Working with UX Writers in Figma’를 인상 깊게 봤던 터라 알던 사이처럼 반가웠다. 그리고 핀터레스트에서 일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분을 알게 되어 그분의 커리어 이야기 듣는 것도 재밌었다. 게다가 컨피그에 나처럼 한국에서 온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는 경험도 신기했다.


핀터레스트 오피스 투어
구글, 메타 오피스 투어


앞서 굉장히 멋졌던 점을 위주로 말했지만 소소하지만 재밌는 순간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행사 둘째 날 아침, 둘째 날이 되니 슬슬 피곤해서 커피가 없이는 하루를 시작할 수가 없겠는 거다. 바깥에서 커피를 사서 들어갔는데 행사장의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나한테 커피 어디서 받을 수 있냐고 매우 절박하게 물어보던 기억. 피그마 컨퍼런스에 와서 발표 안 보고 피그마 켜고 일하는(...) 디자이너. 복도에서 줌 회의하는 사람도 봤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를 느낀 재밌는 기억이다.


그리고 당연히 모든 발표가 환상적일 만큼 마음에 와닿은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행사 규모에서 오는 압도감 때문에 돌이켜보면 알맹이보다 멋지게 느껴졌던 세션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부스마다 줄을 오래 서야 했던 점, 세션에 맞는 강연장을 찾아가려면 매번 사이트에 접속해서 확인해야 했던 점 같은 아쉬운 면도 있었다.



경험하지 않은 세상도 익숙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전 세계의 UXer(프로덕트의 UX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피그마는 오프라인 행사의 UX를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직접 체험해 본 건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늘 실리콘 밸리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컨피그 이후로 막연한 환상보단 실질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도 수확이었다. 또, 같은 일을 한다는 게 나라나 일하는 문화가 달라도 유대감을 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한국은 역시 작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국내 디자이너들이 하는 고민이라고 절대 깊이가 얕거나 뒤쳐진 건 아니라는 확신도 생겼다. 발표 세션의 내용이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다. 결국 어느 나라에서, 어느 회사에서 일하냐 보다 스스로 진정성 있게 일하는 게 곧 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내 일에 자신이 있다면 경험하지 않은 세상도 이미 익숙한 세상일 수 있다.


키노트에서 피그마 AI 기능을 소개하는 중.
UX 라이팅 세션. UX 라이터로서 AI를 활용하는 법에 대해 다뤘다.


컨피그도 끝나고 즐거웠던 미국 여행도 끝나, 나는 다시 한국의 회사원 1인으로 돌아왔다. 컨퍼런스 한 번 다녀왔다고 업무 역량이 오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진 않는 것 같다(그저 달콤했던 휴가 기간을 그리워하고 있을 뿐…).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을 매개로 더 넓은 세상과 사람을 경험할 수 있었던 건 특별한 기회였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상의 경험은 나의 익숙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자원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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