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탄다. 10명 중 반은 이어폰을 끼고 있고 나도 그렇다.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번잡한 이동 수단에서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낸다. 시끄러운 주변을 더 시끄러운 볼륨으로 차단하는 이열치열이다. 이때 음악은 멜로디가 아닌 '소리'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블루투스 스피커를 키고, 외출시에 이어폰을 안 챙긴 날이면 불안했다. 생각해보면 딱히 어떤 노래가 듣고 싶은게 아니어도, 음악이 들리지 않으면 그냥 심심하고 어떨땐 외롭기까지 했다.
고요가 버티기 어려운 존재가 된지는 사실 꽤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특히 사람 많은 번화가인데, 거의 집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 매장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말이면 새벽에도 취객들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적도 있다. 그런 밖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극명하게 찾아오는 고요에 한숨 돌리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도 음악을 틀어놓지 않으면 이내 집안에 흐르는 정적을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혼자 살게 된 이후로 음악은 없어서 안될 친구가 되었지만, 때때론 내 시간을 야금야금 차지하는 불청객이 되었다. 작업이 잘 안될 땐 괜히 새로운 노래를 찾는데 시간을 썼다. 마치 좋은 노동요가 만병 통치약인 것처럼. 하지만 진짜 집중이 잘 될 때는 지금 내가 어떤 노래를 듣는지도 알아채기 힘들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들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 특히 재밌는 이야기를 할 때면 자연스레 원래 하던 일에서 손이 떨어졌다.
어느날은 꽤 장시간 지하철을 타야하는데 배터리가 없어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뜩 지하철 칸이 생각보다 시끄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안내방송이나 얘깃소리 빼고는 딱히 소음이랄게 없었다. 그때 지하철 칸은 주변을 차단시키 위한 소리 없이도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이었다.
어쩌면 많은 순간에 음악은 내게 가장 쉽게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듣는 행위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는 것보다도 훨씬 쉬운, 집중력이랄게 필요 없는 중독같은 습관이었다. 소음을 차단하고자 찾았던 음악은 또다른 소음이 되었지만, 나는 이에 계속해서 의존하고 있었다.
음악이 없었던 그날의 지하철에서, 의미 없는 소리에 정신을 맡기는 대신 수첩을 꺼내서 역사에서 잠깐 떠올랐던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페이스북에서 본 기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서 업로드 했다. 똑같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행동이었지만 소리가 없으니 더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전엔 하고자 하는 행동이 필요로하는 에너지가 100이라면, 습관적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늘 10이나 20정도는 듣는 것에 힘을 할애 했다.
음악듣기를 멀리하고 싶진 않다. 음악은 그 무엇보다도 큰 원동력이 되서 내가 가진 에너지를 두배로 늘려줄 때도 많은게 사실이다. 집에서 혼자 작업할 때, 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달릴 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음악은 긍정적인 힘을 주고 있다. 그리고 '행위x음악'이 좋은 시너지를 낼 때는 스스로도 느껴져서 신이 난다.
하지만 듣기가 중독이 되버린다면 나중엔 소음 없이는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더 경계해야할건 고요를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고요하는 법을 알아야, 진짜 '들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요 속에서 자투리 시간은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멍하니 듣기만 하는 것보다 손과 머리를 움직이며 하는 능동적인 활동들이 훨씬 사람을 기운차게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보다도 음악을 자주 듣는 사람으로서, 듣는 활동 자체에 대해선 부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은 이미 온갖 소리로 가득차 있기에, '고요'야 말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는걸 말하고 싶다. 좋고 재밌는 것들을 들으며 즐기는 만큼, 고요를 누릴줄 아는 자세와 여유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