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페이지/ 신의주
대정읍 하모리 초등학교 담 옆에 자리한 이 작은 공간은 동네 사람이 고향에 문을 연 동네책방이다. 시작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내기 서점이지만 뚜렷한 주제의 큐레이션으로 눈길을 끈다. 공정무역 커피와 음료를 함께 팔고 있는 북카페다.
어나더페이지라는 책방 이름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어떤 의미를 담은 건가요?
나에게는 자영업이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선다는 뜻이고, 책방에 오신 분들은 저와 대화를 하고 책 한 권을 골라가면서 이걸 계기로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정했어요.
이 동네 출신인데 자라면서 책과 관련된 환경은 어땠는지요?
이 동네엔 책방이 두 군데밖에 없었어요. 대부분 참고서와 베스트셀러를 취급했고요. 하지만 집에는 책이 엄청 많았습니다. 부모님이 책을 많이 읽으셨어요. 덕분에 책에 대한 갈증은 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대학생 때도 독서모임을 결성하기도 했고 책읽기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다가 몽골에서 책 한 권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동식 가옥인 게르를 이용해서 이동식 도서관 만들기 사업을 한 적이 있어요.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가장 먼저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가 그림책 같은 책이거든요. 책이 비싼 물건이다 보니 책을 사는 것은 생각도 못 하는 나라입니다. 책 선물을 하면 뛸 듯이 기뻐합니다. 한번은 책 선물 보답으로 편지까지 받았어요. ‘선생님은 얼굴도, 마음도 눈처럼 하얗다’고 쓰여있더라고요.
다른 일을 하시다가 서점을 열었는데 어떤 일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고 공정무역, 사회적 경제 등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러다 점차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필리핀, 몽골 등에서도 짧은 기간이지만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불합리성을 알게 됐고 소수자들을 위한 감수성을 배웠습니다. 미디어로 보여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세상 저 너머에는 가난하고 헐벗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몽골에서 돌아와 국내와 제주에서 국가협력을 하는 조직에서 일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곤 했어요. 그럴 거면 차라리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공정무역이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어떤 공간일까를 고민하다가 책방이 떠올랐지요. 마침 그림책, 인문학, 시 등 한 가지 주제를 다루는 책방들을 알게 됐는데 환경 쪽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점을 준비했습니다.
책방을 연 목적이 그래서인지 큐레이션도 선명한 편이네요?
환경, 생태, 소수자. 이런 주제의 책들 위주로 선택하고 있어요. 하나하나 들춰보면서 저 스스로 검증의 시간을 거쳐서 선택합니다. 세계시민의식을 배울 수 있는 책들이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책방 이름을 지구시민책방으로 할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문턱이 낮은 사랑방 같은 책방이 모토인데 큐레이션 때문인지 지역주민들은 좀 어려워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최근에 북클럽을 결성하기로 했습니다. 책 한 권을 선정해서 자유롭게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이지요. 제 욕심으로는 소수자 이야기, 인권 이야기, 환경 이야기를 함께 읽고 싶은데 가능할 것 같아요.
북클럽 외에도 어떤 일들이 이 공간에서 벌어지길 바라나요?
이곳이 나에게는 집이고 안식처입니다. 이곳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마을주민의 입에서 나오는 마을 이야기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시간을 기획했는데 무척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하고 싶네요. 그리고 초등학교 옆인데 처음에는 어린이들 생각을 잘 못했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오다가다 들러서 사지 않고도 그냥 볼 수 있는 열람용 책들을 구비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공간에는 1인용 독서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고요. 아직 서점을 시작한 지 3개월 차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나더페이지의 신의주 책방지기는 마을 사람책으로 송악산 지킴이 김정임씨, 돌고래 지킴이 황현진씨, 청년 농부 김지영씨를 추천했다.
발행처 ㈜제주착한여행 / 인터뷰·정리 권영옥 / 사진 지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