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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착한여행 Mar 02. 2021

돌고래는 사랑입니다 <황현진>

동네책방이 추천하는 우리 마을 사람책_대정읍 모슬포 ③



황현진 / 돌고래지킴이, 핫핑크돌핀스 대표


환경에 눈뜨고

나는 20대 초반까지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뚜렷한 꿈이 없었습니다. 막연히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희망을 품은 평범한 학생이었지요.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때 대학생들을 위한 환경 강연을 듣고 나서 ‘아,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공간에 대해서 굉장히 무관심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나라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땅이 잠겨 나라를 떠나야 되는 상황이었고 어떤 바다는 온통 쓰레기로 뒤덮이고 있었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의 무지함과 무관심에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먹는 것이나 입는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그 과정부터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활동하는 환경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좋아해서 바다와 관련된 이슈를 다루고 있는 환경단체에 들어갔습니다. 바다를 지키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돌고래와의 만남

2011년에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되었어요. 국제보호종 돌고래가 20년 넘게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돌고래쇼장에 불법 포획되어 쇼에 이용되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국제보호종 돌고래는 어떻게 생겼고, 거기에서 사육되는 돌고래는 상황이 어떤가 궁금했어요. 직접 만나러 혼자 내려왔습니다.



직접 가보니 일반 관람객들이 관람하는 쇼장은 굉장히 넓고 조명이 화려했으며, 신나는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어요. 건물 뒤쪽으로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 쓰인 문이 살짝 열려있길래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카메라를 켜고 한발한발 들어갔는데 텀벙텀벙 물소리가 나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목욕탕보다 더 좁은 곳에 열 마리가 넘는 돌고래들이 서너 마리씩 나눠서 갇혀있는 겁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돌고래라는 동물을 그렇게 만났습니다. 순간적으로 너무 예쁘다는 말이 나왔어요. 물 묻은 피부가 반짝이기도 했지만 표정이 마치 다정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았어요. 웃는 게 아니라 생김새가 원래 그런 거였지만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환경이 너무 열악한 거예요. 오래된 건물이라 벽에서는 녹물이 흘러내리고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무엇보다도 바로 지척에 드넓은 바다가 있는데 돌고래는 좁고 열악한 수조에 갇혀있는 거예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다시 수조 안에 갇힌 돌고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제 인생이 달라진 겁니다.



돌고래를 바다로!

어떤 곳에 어떤 돌고래가 갇혀있는지만 보러 갔다가 그 다음 날부터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돌고래를 바다로 보내달라’고 쓴 피켓을 들고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어요. 그전까지는 1인 시위 경험도 없고 부끄럼도 많이 타고 낯가림도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용기를 낸 거예요. 2011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야생동물을 만나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었어요. 그 당시 환경단체 동료들조차도 수족관에 잘 있는 돌고래들을 왜 바다로 보내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제가 아무리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해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냥 저를 스쳐서 쇼를 보러 가는 거예요. 아, 아무도 내 의견에 공감해주지 않는구나 하는 외로움을 느꼈어요.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처럼 기운이 빠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반년 정도 계속했어요. 



어느 날 일이 기억나네요. 그날도 1인 시위를 하는데 내 앞으로 돌고래 쇼를 보러 가는 관광차들이 수없이 그냥 지나가더라고요. 그중 어떤 차가 지나가다가 돌아서 내 앞에서 서는 겁니다. 문득 해코지라도 당할까 봐 두려웠어요. 차에서 어떤 꼬마가 감귤을 들고 와서 내게 내밀면서 우리 가족은 돌고래 쇼를 보려고 했는데 언니가 들고 있는 피켓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안 보기로 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내 얘기에 공감하는구나, 변화시킬 수 있겠구나,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돌고래를 알면 알수록

처음에는 사실 돌고래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 가두고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원치 않는 노동을 시키는 게 잘못됐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고래류만큼은 그런 시설에 가두면 안 된다는 게 더 명확해졌습니다. 돌고래는 사람처럼 열두 달 가까이 임신을 해서 새끼를 낳고 2년 정도 육아를 하는 포유류이기도 하고, 사람처럼 기쁜 감정이나 슬픈 감정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물입니다. 지능도 사람처럼 높고 그들만의 언어와 고유한 문화도 있어요. 인간과는 외형과 언어만 다를 뿐 정말 비슷한 점이 많은 거지요. 그런 동물을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가두고 착취하는 것은 잘못된 거지요.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내 돌고래쇼 업체에 의해 불법 포획된 제주남방큰돌고래들 중 일부는 서울시 산하 서울동물원으로 팔려갔어요. 2012년 3월, 핫핑크돌핀스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서울시가 제돌이를 원래 있던 제주바다로 돌려보낸다는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렸어요. 그런데 수족관 돌고래 야생 방류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최초의 일이다 보니 언제 어떻게 어디에 돌고래를 방류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죠. 서울시가 주체가 되어서 제돌이방류시민위원회가 꾸려졌어요. 나를 포함한 시민단체 대표들, 과학자들, 동물원 직원들이 모여서 서로의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시간을 일 년 여정도 보냈습니다. 제돌이의 방류 결정은 너무 당연하고 다행인 일이었지만 방류가 될 때까지 번복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제돌이가 무사히 방류되는 순간, 그제서야 이제 됐구나,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제돌이가 2013년에 방류되었으니 벌써 7년이 됐네요. 제돌이는 지금까지도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같은 해에 방류된 암컷 돌고래 춘삼이, 삼팔이는 새끼까지 낳아서 같이 제주바다를 누비고 있습니다.

         


제주남방큰돌고래는 제주도민이다

지금 나는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7마리가 잘 사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잘 살 수 있도록 서식처를 보호하는 일을 합니다. 서식처에서 난개발, 쓰레기, 과도한 선박 운행의 문제 같은 것들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갔으니 일단 제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돌아간 바다의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떤 돌고래는 쓰레기를 몸에 감고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떤 돌고래는 지느러미가 찢어진 채 목격되기도 합니다. 돌고래는 해양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하고 바다환경을 알려주는 지표종이기도 합니다. 지금 바다환경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남방큰돌고래는 가까운 바다에 사는 연안성 돌고래이기 때문에 갯바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선박을 이용하는 것보다 서로가 제자리에서 평화롭게 만났으면 좋겠어요. 



제주 앞바다에 사는 돌고래들은 100여 마리예요. 전 세계 남방돌고래 무리 중에 가장 작은 무리지요. 어떤 종이 전체 수가 100여 마리라는 건 정말 작은 종이거든요. 환경이 좋고 안전하다고 인지가 되면 개체 수가 좀 더 늘어나야 하는데 줄지도 늘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안심할 수 없는 게 어느 한순간에 확 줄어들지도 몰라요. 제주남방큰돌고래는 제주에서만 사는 고유종이기 때문에 개체 수가 줄기 시작하면 회복하기가 힘들어요. 어쩌면 제주사람들보다 더 먼저 제주 바다에 산 것이 제주큰남방돌고래일 수 있어요. 제주 바다를 떠나지 않고 있고요. 그 정도면 제주도민 아닌가요?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해줘야지요.



사랑의 방식

돌고래들의 바다 서식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홍보하고 활동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20년이 다 됐네요. 제주 출신도 아닌 제가 제주 바다를 지켜보며 여성청년 환경운동가로 살아온 세월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힘들고 고단한 사람들도 많은데 돌고래에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두가 다 좋아지는 세상은 올까요? 흔히 약자, 소수자를 생각할 때 항상 '나중에'라고 합니다. 나중에 언제? 먼저나 나중에 돌봐야 할 순서는 아무도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가야 하는 것이죠.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존재를 만나는 방식은 그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동물원이나 수족관 관계자들을 만나면 "대표님, 저희들도 돌고래를 사랑해요"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돌고래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존재에게 내 사랑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들이 원래 살아가던 방식으로 온전히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돌고래를 사랑하면서 배운 사랑법입니다. 인간과 돌고래만의 관계가 아닌 존재와 존재 사이의 사랑법.



발행처 ㈜제주착한여행 / 인터뷰·정리 권영옥 / 사진 지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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