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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착한여행 Mar 02. 2021

나는 농부입니다 <김지영>

동네책방이 추천하는 우리 마을 사람책_대정읍 모슬포 ④


김지영 / 농사 3년 차 제주 청년 농부


늙은 농촌

저는 농부입니다.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살다가 제주에 정착한지도 3년 째입니다. 저에게 '서른한살 짜리가 무슨 농사를 짓냐'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실 저는 농촌 출신도 아니고, 제 부모님이 농부인 것도 아닙니다. 외할아버지네가 농사를 짓는 정도입니다. 제가 농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 때부터입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난한 탓에 남들이 4년에 마치는 대학을 8년이나 다녔습니다. 그동안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며 농촌의 현실을 좀 알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 농촌은 정말 젊지 않습니다. 가장 젊은 분이 저희 아버지뻘입니다. 그분들은 평생 농사를 지어서 힘들게 살아오셨고, 나이가 들어서도 습관처럼 농사일을 하십니다. 농사는 사실 힘든 일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할만하지 않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은퇴한 후에는 농사나 짓지 뭐...’ 농사를 노후생활에 즐기는 여가활동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농사는 그런 게 아닙니다. 이러다가 조만간 농촌이라는 곳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촌이 사라지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없게 됩니다.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그게 바로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꿈은 농부

저의 꿈은 농부였습니다. 하지만 20대 젊은 여자인 제가 당장 어디 가서 농사를 짓겠습니까?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시민단체 일을 몇 년 했습니다. 우연히 제주 한달살이를 준비하던 중 제주에 청년농부라는 공동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길로 꿈이었던 농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니 주저 없이 시작했습니다.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농사일을 혼자서 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땅도 있어야 하고 기술도 있어야 합니다. 어쨌든 혼자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하면 훨씬 수월해집니다. 물론 이 공동체가 지역에서 인정받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을 분들은 우리가 하는 농사가 미덥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의 농사법이란 게 이장님 댁에 일손을 도우러 가서 본 대로 우리 밭에다가 해보는 거였으니까요. 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관행농법에 문제가 많고 우리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친환경 생태농법으로 바꾸었습니다. 관행농법처럼 밭이 깔끔하지도 않고 제때 농약이나 비료를 치지 않는 걸 보고 이웃 삼춘들은 또 혀를 차십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삼춘들이 우리를 농부로 받아들이신 것 같습니다. 농사 지을 땅을 빌리기가 수월해진 걸 보면 우리를 믿기 시작한 듯합니다. 그 이유가 또 있습니다. 우리는 마을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살기 좋은 행복한 농촌이 우리의 바람이기에 마을 방역이나 청소에도 나서고, 마을 농산품 판매에도 팔을 걷어붙입니다. 이런 모습이 어른들 보기에도 좋았나 봅니다.



즐겁고 행복한 농사

2020년 7천 평의 땅을 빌려서 브로콜리, 콜라비, 비트, 감귤 농사를 지었습니다. 모두 농사 초보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이웃 삼춘에게 배운 대로 뿌리가 얕은 브로콜리를 심었는데 하필이면 바로 뒤에 태풍이 불어서 4분의 1 정도는 날려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즐겁게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는 힘든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즐겁고 재미있는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방법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우리는 농사를 하루에 2, 3시간만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공동체 식구 30여 명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 일을 합니다. 음악도 틀어놓고 노래도 부르고 수다도 떨면서 일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면서 그 과정을 영상으로 만든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다른 일을 합니다. 저는 농사만 하고 있습니다만 농사짓는 것만이 아니라 마케팅 등을 연구합니다. 이러다 보니 농사일에 치이거나 벅차지 않습니다. 즐겁고 재미있는 농촌을 만드는 길입니다.



나는 농부다

그러고도 농부냐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을 농부라고 자처합니다. 다른 일도 모두 농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 농부라고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노린재라는 병해충이 있습니다. 까치도 많습니다. 예전의 저는 그런 것들에 별로 적대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노린재라는 병해충이 미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까치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습니다. 왜 까치는 감귤 한 알을 정해서 먹으면 될 걸 이걸 쪼고 저걸 쪼고 하면서 먹을까요. 너무 밉습니다. 반대로 알이 통통하게 커가는 걸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면 아, 나도 이제 농부가 다 됐나보다고 느낍니다.

저는 가난해서 먹고 쓰고 하는데 돈을 거의 안 씁니다.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하기가 쉬웠던 것도 가난한 생활이 익숙해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연봉 5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인다고요? 그걸 향해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죽게 일만 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농사는 지을만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농촌에 젊은이들도 몰려들고 농촌의 문화가 달라지고 활기차게 되지 않을까요.

 


하고 싶다면 지금 해라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젊은이가 농사일을 한다고 하면 걱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어딘가에 취직해서 월급 따박따박 받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의 한 친구는 상속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왔다고 합니다. 농사를 지으면 자식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다행히 저의 부모님은 제 선택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가려 하느냐고 걱정해줍니다. 제가 생각해도 무모할 수도 있습니다. 멀고 먼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농부이고 싶습니다. 젊고 활기찬 농촌에서 즐겁게 농사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화하고 싶습니다. 후배들에게도 언젠가 하겠다고 미루면 결국 못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해야 합니다.



발행처 ㈜제주착한여행 / 인터뷰·정리 권영옥 / 사진 지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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