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살롱 이마고/ 김채수
표선면 세화리 한적한 길가에 위치한 북살롱 이마고. 폐자재를 활용했다는 넓고 세련된 공간에는 책과 커피 향이 가득하다. 북카페지만 안으로는 중견 출판인의 노고가 묻어나는 제주 문화 아카이빙의 거점 공간이다.
출판인으로 널리 알려진 분인데 이곳 제주 표선 세화리에 서점을 연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마고라는 출판사 이름으로 책을 만들어왔습니다. 인문서 출판사로는 이마고가 그래도 독자도 꽤 많고, 한 10년 넘게 좋은 책을 많이 냈다고 인정도 받던 출판사였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달려왔던 탓인지 몇 년 전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핑계에 취재도 겸할 겸 해서 제주에서 몇 개월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 사이 놀랍게도 회복이 되어서 제주가 나에게 맞나, 제주에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요. 무모하게도 네이버 검색으로 조그마한 땅을 알아보고 곧바로 계약해버렸습니다. 석 달 뒤에 제주로 이사를 왔고요. 집을 지으면서는 막연하게 내가 서울에서 하던 출판사와 디자인회사를 옮겨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중앙에서 하던 방식의 출판을 여기에서 굳이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더라고요. 내가 책을 안 만들어도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많으니까 내가 만들지 말고 팔지,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서 북살롱 이마고가 탄생한 거예요.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 공간은 낯설게 느껴졌을 듯한데 어땠나요?
처음에는 나도 이 마을이 낯설고, 마을 어르신들도 이런 공간이 낯설고. 서로가 그랬던 것 같아요. 내 눈에는 어르신들이 다 무뚝뚝해 보이는 데다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는 성격이라 이 공간 안에만 있었습니다. 마을 분들이 도대체 저기가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하고 이상해서인지 어쩌다 한 두 번 찾아오시는데 두 번 다시 안 오시는 거예요. 우리가 올 데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하셨겠지요. 마을 분들이 이 공간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영업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내심 내가 이 마을에 있으니 마을 안에서 뭔가 할 일이 있겠거니 하고만 있었지요.
1년쯤 되어갈 때 이장님이 젊은 분으로 바뀌면서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말씀드리니까 마을을 위해서도 문화예술 기획을 해주시라고 요청하시더라고요. 마을 어르신 자서전을 바로 만들자고 기획해서 주민참여예산으로 실행했어요. 어르신들 다섯 분을 대상으로 했는데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책을 만들고 난 다음에는 정말 좋아하시고 자녀들도 너무 기뻐하더라고요. 지금은 또 하고 싶다고 줄 서 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르신들과 만나게 되고 이장님과도 친해지고 마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마을 어르신 자서전도 그렇지만 특별히 지역 아카이브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기가 있나요?
처음 제주에 와서 지낼 때 제주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감귤 따기 체험도 하면서 지냈어요. 그러다가 땅을 사기로 하고 대출을 받으려는데 땅값이 갑자기 뛰었다는 거예요. 뭔가 했더니 제2 공항이 발표 나면서 이 마을 땅이 들썩인 거였어요. 있었던 집들이 사라지고 온 천지가 개발되고, 좋았던 나무며 돌집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이니까 나라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변하기 전에 빨리 나라도 기록해두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개인적으로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다니고 그랬어요. 개인 돈 써가며 음식이며 주거문화 등을 최대한 채록하고 다녔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제주식 음식 만들기 행사를 종종 열다 보니 음식점인 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어요. 결국엔 내가 책을 만들던 사람이고 기획자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제주도의 서민 생활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방식으로 제주 마을을 만난 겁니다. 그런 작업의 연장선에서 마을 사업으로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지역예술가들과 함께 여러 작업을 진행하게 된 거지요. 지금 이 책방에도 그렇게 마을 사업의 결과물로 나온 책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동네 책방으로서 이곳이 어떻게 자리매김하길 바라는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을 잘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을 컨설팅이나 강의 같은 다른 일을 하는 것도 다 수익이 안 나는 이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동네 책방이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동네에 뿌리내려야 하는데 여기는 동네 분들이 차 마시고 고객으로 오시기를 바라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마을 분들과 함께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 등의 사업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는 거점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또 하나의 꿈은 청소년들과 이곳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이에요. 이 지역 청소년들에게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자기를 성찰하고 꿈을 기록하고 책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북살롱 이마고의 김채수 책방지기는 이 마을 사람책으로 시 쓰는 농부 강영란씨, 이 마을에 잘 스며든 이주민 영화감독 김풍기씨, 기개 높은 한학자 정만근 어르신을 추천했다.
발행처 ㈜제주착한여행 / 인터뷰·정리 권영옥 / 사진 지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