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고 지저분한 도시를 왜 가는건데?
"뉴욕은 더럽고 지저분하기만 한데 그런데를 왜 가? 차라리 샌프란시스코를 가지."
뉴욕에 간다고 말했을 때, 지인이 내게 했던 말이다.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비행기표 끊은 사람에게 굳이 악담을 하는 것도 충격이었고
디자인의 성지인 뉴욕에 대해 그렇게만 생각한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나는 제 2의 도시라지만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늘 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있던 터라 주위 동기들보다는 서울, 해외에 있는 디자이너들을 라이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꿈이 컸다....)
그래서 유난히 비핸스(behance.net)를 자주 들여다 봤다.
지금은 한국 디자이너들도 많이 올리지만 당시에는 대부분이 해외 디자이너들이었고 내 눈에 좋아보이는 디자인 작업물들이 많았다.
몇 디자이너들을 팔로우 하고 타고 타고 들어가보니 몇개의 에이전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Pentagram.
강렬한 색감과 타이포, 이론과 다른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로고들, 획일화 되지 않은 다양한 스타일.
펜타그램의 작업물에 완전히 매료되어, 반드시 뉴욕 펜타그램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영어공부를 미친듯이 하기도 했었다.(어쩌다 보니 서울에 오게 되었지만)
당시 KDM-Korea design membership 부산의 멤버로 네덜란드에서 2주동안 디자인 워크샵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유럽, 비행 시간이 길어 노트북에 미드를 잔뜩 받아갔지만 이내 밧데리가 다되어버렸다.
좌석 앞에 스크린을 뒤적이다보니 다큐멘터리도 몇개 있었다.
온통 영어라 대충 보던 와중에 유일하게 아는 단어가 보였다.
Andy warhol
한글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왠지 앤디워홀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익숙한 그림 탓인지, 어떤 이유인지는 지금도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이 후에 나에게 영감을 준 아티스트는 Keith Haring.
지하철에서 낙서를 하고 다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고등학교때 그래피티에 빠졌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법을 어기고 자유분방하게 자기 표현을 한다는 것이 나는 왜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언제나 자유에 대한 로망? 같은게 있어서일까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매료되었던 포인트들은 모두 뉴욕이었다.
디자이너로 취업을 하고 나서 브랜딩 공부를 할 때에도 좋았던 브랜드들은 모두 뉴욕에서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뉴욕에 대한 로망이 하나 둘 쌓였고 '미국에 버거투어를 갈거야'라는 농담도 늘 던지곤 했다.
늘 갈망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하지 못했던 뉴욕행이 다음주로 다가왔다.
여행 계획을 짜면 짤수록 더더욱 빠져들었다. 미술관과 갤러리는 셀 수 없이 많고 미술관도 각각의 스토리와 브랜딩이 존재한다. 관객이 배우를 따라다니면서 보는 연극이라던지, 풍경과 공연을 함께 볼 수 있는 관광 버스라던지, 잘 만든 케이크를 왜 가리냐며 홀케익 옆면(?)을 생크림으로 바르지 않은 케익이라던지 사소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 모두 철학이 담겨있고 창의적이다.
드디어 간다. 뉴욕 !
This is New York! 차가 밀려도, 서비스가 엉망이어도, 음식이 형편없어도 아 여기 뉴욕이지 한마디로 수긍이 된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면서 생기는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가 기저에 깔여 있기 때문. 예술, 패션, 문화, 라이프스타일, 엔터테인먼트 등의 분야를 주도하며 세계 문화 수도로서의 그 명성을 지켜내고 있다.각자가 걸어온 길과 가치관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곳. 빠르게 변해가는 트렌드를 좇는 것만큼이나 옛것에 대한 보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뉴요커들의 마인드. 옛것을 허무는 것보다 보존의 임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자 한다. -어반리브 뉴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