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결을 마주했기에 자유로웠나
몇 번을 고민하며
썼다 지웠다..
아직도 내가
정리를 못하고 있는건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그 때 내가
왜 그렇게 빨리
벗어날 수 있었나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십오년 전에 나를
이번 이태원 참사로 인해 다시 보게 된다.
올해로 꼭 십오년..
정말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그 사람의 백혈병이 재발했다.
그의 서른네살 봄이었다.
내 나이 스물 여덟,
인생을 약속한 그 여름에서
채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렇게 우리는 이별했다.
그 과정들을 지내오면서
마음으로 항상 감사했다.
사고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 과정들을 통해
어쩌면 나에게
이해라는 선물을 주는 건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1년 6개월 남짓의
백혈병동 생활은
울고 웃는 날의 연속이었다.
8인실안에서 일어나는
동병상련을 보며
어쩌면 저런 일이
나에게도 그에게도
곧 올거라는 준비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 꿈에 젖어있어야 했던
시간들의 대부분이
병원생활로 채워졌다.
그래도 그 순간들만은
정말 행복했다.
살아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언제 닥쳐올지 모를 이별을 무시한 채
좋은 날을 만들기 위해
좋은 날이 꼭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렇게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었던 거다.
언젠가 이별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한 병실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먼저 이별을 고해올 때마다
이번에 누구 차례일지
누구는 살아서 집으로 가게될지
이미 다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나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던거다...
그저 남은 시간
후회없이 사랑하자.
그거면 된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 덕분에
마지막은 괜찮았다.
괜찮았다기 보다는
그 때 내가 정리해야할 정말 많은
일들이 있어서
충분히 그 마음들을 제대로
들어내지 못했는 지도 모른다.
아니면, 들어낼 용기가 없었는지도..
어쩌면 그런 마음들을
한 구석에 꽁꽁 묶어 놓은 채
현실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와의 이별의 모든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발병하고 치료하며
쌓아온 시간들로
그 모든 것들이 마무리 되어도 괜찮다는..
원망스럽지만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나도,
거기 있었으니까..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그 안에 있는 나를
안고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 마음들을 다시 꺼내어 들여다 볼 수 있고
보듬어 줄 여유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리워하며 슬퍼해도 괜찮다.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줄 힘이 생기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저 시간이 곱게
흐르기 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이별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납득할 만한 충분한 시간과
인과관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라는 것을
이번 참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이별을 마주한
그분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보내드린다.
그 분들의 잘못은 하나도 없어요.
평소처럼 일상을 살아오신거예요.
살아 돌아오신 분들도
최선을 다하신거예요.
자책하지마세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마음으로 드리는 위로뿐이라
안타까울뿐이다.
두 손모아 기도합니다.
모두 편안하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