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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Feb 11. 2023

Home wasn‘t sweet home anymore

달콤한 나의 집이 되기까지


‘아! 진짜 집에 가기 싫다!’

“더 놀다 들어가자~”

내 어린 시절은 귀가시간을 얼마나 더 늦출 수 있을까가 늘 고민이었다. 마음 속에선 집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고 늦게 들어가면 정말 혼난다는 현실이 있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뒤로 한채 점점 더 집에 가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닌게 되어갔다. 그냥 동네를 몇시간씩 배회하기도 했다.

편안하고 안전함을 느껴졌어야 할 집이 내게 왜 두려움의 대상이 된 걸까?


대학을 가면서 집을 벗어날 수 있었고 명절에만 잠깐 들르는 어색한 곳이 되어갔다. 그러다 예고없이 내려간 어느 날 또 다시 그 폭력의 현장에 있었다. 그 날 내가 처음 맞은 건지 아주 가끔 맞던 동생이 맞은 건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고 묻어두고 싶은 순간들이 되었다. 사방에 깨진 유리조각과 널부러진 의자가 여전히 선명하다. 그날 밤 도망치듯 나오며 그 여전함에 놀랐고 내가 동생들과 엄마를 방치해 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달아나고 싶었다. 감정을 숨기고 아닌 척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더 기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와 쌓아온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사별을 했다. 그도 아빠와 별반 다르지 않게 폭력적이었단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그는 단지 언어폭력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아마도 난 그 불안감을 옮겨와 그와 살면서도 난 그게 당연한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시절이 잘못되었단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세상 이렇게 평안해도 되는걸까 싶은 시간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집이란 곳이 휴식의 최고치를 맛보는 곳이 되어가고 퇴근하고 약속을 만들지 않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함께하는 시간이 충전의 시간이 되고 고요함이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십년을 넘게 살다 보니 가끔 나 스스로가 불안감을 조장하려고 한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불필요하고 성가신 상황을 어쩌면 즐기려 했던 순간도 있었다. 어린 시절 느꼈던 그 불안감들이 남아 가끔씩 튀어나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잊은 채 어른이 되어 다행인 것처럼 생각했다. 이제 더이상 그 불안과 공포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도 모르게 가끔씩 핀트가 나갔다. 그리고 그 정도는 괜찮은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온전하다는 착각을 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의 얼굴에 멍이 들었던 날의 기억들이 튀어 올라왔다. 이번 명절에 내려가선 아빠가 어릴 때 가구와 가전제품을 부수고 엄마를 위협하고 때렸었다고도 말했다. 진지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런 말들을 내뱉고 싶었다. 당신이 가해자라고..

하지만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부끄러워서 그렇겠지라고 또 그를 감싸는 나를 본다. 그가 어릴 적 당한 폭력들과 전쟁 트라우마가 있겠지하며 그를 이해하려는 나를 본다. 그러면서 지금의 멀쩡해 보이는 그를 과거의 그도 그랬었다고 포장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얼마 전에 그 포장을 벗겨내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나도 피해자였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그 순간이 참 신비로웠다. 내가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임에도 가해자가 아빠라는 이유로 그를 보호하려는 마음도 옅볼 수 있었다.


이젠 달아나려고만 했었던 과거와는 달리 선명하게 내 의도 보인다. 인정하게 하고 싶고 사과도 받고 싶다. 그리고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그 일들에 대해 미안해해야한다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한 편으로 가엾게 여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일들이 그대로 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외면하고 도망쳤었다는 것도.. 직면하는 것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던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있었던 일이 이해의 노력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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