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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skwon Dec 27. 2018

지난 2년을 회상하다.

박사학위 받고 회사에서 근무한 지 벌써 2년 6개월..

필자는 2016년에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그해 여름 지금의 회사에 합류하여 월급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회사 생활에 대해 아무런 소회를 남기지 않다가, 2년이 지난 지금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 생각을 이렇게 글로 정리해본다.




나는 운이 좋게도 지금의 회사에서 조직의 성장 과정을 몸소 체험하였다. 내가 합류할 당시에 20명 정도의 규모였던 조직은 현재 200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그 와중에 나는 개발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신규 시스템들이 하나 둘 구축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데이터 분석 환경만 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내가 합류할 당시에는 DB에 적재되어 있는 데이터를 SAS와 같은 상용 툴을 이용하여 분석하는 환경이었으나, 2년이 지난 지금은 HDFS에 적재되어 있는 데이터를 Python과 Hive/Spark Cluster를 이용하여 분석하는 환경으로 변하였다. 이와 더불어, 가공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애플리케이션들이 하나둘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렇게 신규 시스템들이 구축되는 단계에서 내가 Fresh 박사로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었다. 초기 시스템 구축 단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은 해당 시스템(혹은 그 유사 시스템)을 구축해 본 경험이 있는, 빠르게 개발 업무에 투입이 될 수 있는 현업 경력 개발자였다. 나는 입사 전까지 Python 코딩을 해본 경험이 없고, 소규모 시스템을 구축해 본 경험도 없었다. 이미 다 구축되어 있는 실험실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실험을 설계하고, 실험에서 수집되는 소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과를 논문으로 쓴 경험 정도였다. 그런 내가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이유로 개발 조직의 선임 말년 차로 입사를 하였고, 다른 경력 개발자들과 함께 바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박사 과정 중에 다양한 산학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하지만, 그 경험 만으로 프로그래밍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발 프로젝트에 온전히 기여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단지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 혹은 클라이언트 요구사항을 명확히 하고,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병목이 될 만한 부분들을 빠르게 쳐내는 역할 정도였다. 실제 개발을 수행하는 부분에서는 다른 개발자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중요도가 낮은 모듈을 맡아서 개발을 진행하였다.


그래도 운이 좋게도 좋은 회사 동료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 하에 차츰차츰 개발 역량과 더불어 데이터 분석 역량도 쌓기 시작하였다. Solr/ES와 같은 검색 엔진을 다루면서 간단한 데이터 전/후처리 모듈도 개발해 보고, Git과 Docker에 익숙해지고, 최근에는 Spark을 이용하여 대규모 데이터를 핸들링하면서 추천 모델링도 수행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Spark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Scala 언어 공부도 시작하였다.


평일에는 주로 회사 업무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래밍 관련 스터디를 진행하였지만, 이와는 별개로 주말에는 주로 '강화 학습' 분야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하였다. 2년 정도 꾸준히 스터디를 진행한 지금은 강화 학습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주말마다 만나 여러 논문을 리뷰하고, 강화 학습 콘테스트에도 참여해보고 있다. 요즘은 다시 예전 연구 경험을 살려 논문을 써 보는 것도 생각 중이다. OpenAI에서 제공하는 Gym이나 Unity ML을 이용하면 다양한 강화 학습 환경에 접근할 수 있고, Google Colab의 GPU/TPU 리소스를 이용하면 다양한 강화 학습 알고리즘을 테스트해 볼 수 있다. 연구 여건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으므로, 주말 시간을 잘 활용하여 실행에 옮길 일만 남아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2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그동안 접하지 못한 프로그래밍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차츰차츰 이쪽 세계에 적응하면서 기초 체력을 쌓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기초 체력을 쌓고 있는 동안 회사 내에는 여러 인프라가 새로이 구축되고 자리 잡아가기 시작하였으며, 그 위에서 다양한 데이터 애플리케이션들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일부 시스템은 이미 안정화 단계에 들어가고 있으며, 기 구축된 시스템들도 자동화 및 최적화, 더 나아가 최근에 부각되는 딥러닝과 같은 새로운 피쳐 적용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R&D가 필요한 영역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며, 내가 산업공학 박사로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라도 이렇게 길이 보여서 다행이지만, 지난 2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많은 시련을 준 시간이었다. 아무리 내가 개발 조직에 있으면서 프로그래밍에 익숙해지고 효율적인 코드를 고민하면서 개발자의 역량을 키운다고 하더라도, 사내에는 나보다 실력 좋은 개발자들이 즐비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산업 공학 박사로서 조직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결과, 회사에서는 경력 개발자 대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여 여전히 선임 말년차로 남아있고, Fresh 박사임에도 불구하고 논문을 쓸만한 것이 없으니 연구 경력은 이미 단절되어 버렸다. 지인들도 나에게 R&D 조직을 갖춘 회사로 이직을 많이 권유하였으나, 그래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조금 늦게 가더라도 나만의 포지션을 찾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왔다.


그 힘든 시간을 거쳐서 일까. 최근 들어서 회사 내에서도 산업공학 박사가 필요한 프로젝트가 생기고, 조직 내에서 선행 R&D 담당 인력에 대한 수요도 생겨나면서 조금씩 나의 포지션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회사 내에 아는 분들도 많이 생겨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더라도 관계자 분들에게 협조를 구하기 수월해졌고, 차곡차곡 쌓아온 프로그래밍 실력 덕분에 PoC 정도는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나에게 좋은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 모든 일들이 순탄하게 풀릴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래도 이제는 방황을 끝내고 산업공학 박사로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앞으로 항상 보람된 일만 가득하길 기도해보면서 이 글을 마친다. 끝.




To. 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글 솜씨도 없는 제가 앞으로는 이렇게 한 자 한 자 제 생각을 글로 남기는 연습을 하고자 합니다. 저 스스로도 많이 어색하지만, 종종 회사 생활을 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면 조금씩 글로 남겨 보겠습니다.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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