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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식이 Jan 31. 2018

자발적 고자질쟁이

치바토빌리지, 디자이너 루이 랑

치바토빌리지ChivatoVillage는 디자인 브랜딩 컨설팅을 하는 곳이다. 보통의 디자인 에이전시와 다른 점이라면, 캠페인과 프로젝트를 통해 클라이언트와 1년 동안 관계를 맺고 브랜딩을 진행하며, 사회적 움직임을 이끌어낸다. 클라이언트에게 얼마만큼의 결과물을 제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를 클라이언트와 함께 만들어나가는 관계를 맺는다. 그들 스스로는 홈페이지를 통하여 이렇게 표현한다:


"치바토빌리지는 디자인이라는 요소의 다룸과 철학에 있어서 단순한 디자인을 위한 회사가 아닌, 사회적 이슈와 문화를 프로젝트와 캠페인의 형태로 접목하여, 디자인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고 디자인이 주는 사회적 영향과 가치를 클라이언트와 함께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를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오픈소스로 내놓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 실험주의 디자인 회사입니다." 

chivatovillage.com



unfinished scenes


치바토빌리지라는 유기적 구성체는 기존의 무엇을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창립자 루이 랑Lui Lang은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많이 해보고 싶었다. 디자인 자체를 너머서 접근법과 생산방식,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들까지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각도적 시각으로 분석하며 디자인 회사를 시작하다 보니, 처음 했던 프로젝트 역시 복합 예술 플랫폼 내지는 아티스트 인큐베이터와 같은 형식을 띠게 되었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그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고 구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일을 하면서 치바토 빌리지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무엇이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단계이다. 사실, 무엇이라 정의할 필요가 없다. 치바토 빌리지는 서둘러 마침표를 찍기보다는 계속해서 답을 찾으며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곳이다.


치바토빌리지에서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는 없다. 모든 분야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루이 랑은 원래 작곡을 전공했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그린 현대미술 작품으로 전시회도 연다. 해외에서 머물던 시기에 우연찮게 패션 잡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귀국 후에는 홍보 관련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 패션, 사진 등 지금 하는 일과 관련이 있는 분야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고 백그라운드가 디자인이 아니다 보니 제삼자의 시선에서 디자인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고, 그것이 지금 전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가는 치바토빌리지에 이르렀다. 루이 랑은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만들어진 결과에 순응하기보다는 옳고 그른 많은 것들을 학습하고 끊임없이 실험하는 사람.



participatory innovation


몇 해 전부터 디자인 중심의 경영 및 의사결정 방식이 큰 주목을 받으면서, 공동창작co-creation이라는 개념이 화두로 떠올랐다. 공동창작을 비롯한 디자인 혁신의 사례들은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문제 자체를 찾아내는 것부터 공동의 개념으로 시작한다. 효과적인 공동창작을 위해서는 디자이너를 비롯한 모든 공동의 참여자들이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동기를 가지고 문제 발견과 문제 해결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참여 디자인은 필연적인 디자인 방법론으로 떠올랐는데, 단순히 사용자와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서 디자인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이들이 하나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디자이너와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인 만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디자인 프로세스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네 가지 영역, 인문적 영역(디자이너와 참여 구성원들 간의 관계 형성), 사회적/문화적/종교적 영역, 경제적/시간적 영역, 그리고 조직적 영역에서 문제를 다루고 다각도적 시각으로 살펴볼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참여디자인 과정을 통해 공동 창작된 디자인 결과물은 높은 사용자 만족도를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사용자와 창작자,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모든 구성원들이 해당 디자인 과정 내지는 디자인 결과물에 주인의식을 갖게 한다. 단순히 돈을 주고 구매한 물건보다, 처음부터 나의 아이디어를 반영해서 구상과 생산의 모든 단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만든 ‘나의’ 물건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물론, 디자이너의 사회적 지위라던가 디자인이라는 분야 자체가 갖는 사회적 인식이 서구와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참여 디자인 및 공동창작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꿈처럼 들린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지금 이 순간, 치바토 빌리지와 같은 움직임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적 제약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치바토빌리지는 주어진 환경과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때때로 무모해 보이는 이 움직임들은 더 자주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치바토빌리지가 클라이언트와 1년 간의 동행을 결정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거라는 계획이나 시안에 대한 동의를 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1년 동안 디자인 전문가이자 협업가로서의 치바토빌리지를 믿고 일련의 디자인 작업을 맡기는 것에 대한 동의를 구할 뿐이다. 예산도 프로젝트 진입 시에 1년 치를 한꺼번에 받는다. 패기만만해 보이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러한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드는 치바토빌리지만의 무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루이 랑은 중요한 한 가지로 인쇄업을 겸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기존의 인쇄 업계를 보면 제대로 된 대금을 치르지 못하거나 잔금을 채 받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루이 랑은 치바토빌리지를 통해서 모순된 하청 구조를 탈피한 프로세스를 구현해보고 싶었다. 마지막 인쇄와 후가공까지 전체 프로세스를 보여줌으로써 클라이언트에게 왜 이만큼의 돈이 필요한지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이러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예산을 이끌어내는 설득력을 더해주는 것이다. 또한 구상부터 생산까지 직접 하다 보니 작업의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big mouth, bigger action


치바토빌리지를 대변하는 모토는 ‘시대정신’이다. 치바토빌리지의 존재 자체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디자인과 디자이너, 시스템을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서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들의 이러한 행보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기를 바라며, 그래서 일부러라도 아직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으려 한다. 정의를 내리는 순간 고정적인 답이 생겨버리는 것이고, 치바토빌리지에는 아직 물어야 할 질문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 '치바토빌리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간단한 문장으로 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저 끊임없이 관찰하며 균형이 무너진 현상을 찾아내어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재적소에 필요한 어떤 것을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주고자 노력한다.


'치바토chivato'는 스페인어로 ‘고자질쟁이’라는 뜻이다. 잘못된 것을 이르는 행위인 고자질처럼,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리 내어 말하는 곳이 바로 치바토빌리지이다. 보통 디자이너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치바토빌리지는 문제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문제를 꼬집어주다 보니,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부분이 가장 힘들면서도 프로젝트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PT를 정말 열심히 한다.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게 만들어야겠지만, 논리적으로도 클라이언트의 의구심을 모두 메워줄 근거들을 철저하게 준비한다.

이론으로 접했던, 실재는 없었던 무수한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실제로 만나는 기분. 왜 유명하지 않은지 의아할 정도이다. 이 부분에 대해 물었더니, 루이 랑은 치바토빌리지라는 이름이 유명해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치바토빌리지가 하는 일이 마치 정답인 것인 양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스스로 이름을 숨기려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치바토빌리지의 디자인을 접하고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저 만들고, 보여주고, 평가받고, 다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그래서 치바토빌리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루이 랑은 어디 가서 스스로를 작업자라고 소개한다. 말로만 디자인을 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몸으로 작업의 0부터 100까지 몸소 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만큼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의 역할을 무겁게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 업계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에게 디자인은 신이 주신 능력이라고 이야기하며 격려한다. 그 어떤 능력보다도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며,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늘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디자이너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것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에는 디자이너가 너무 많은데,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능력을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행하는 이는 몇 없다는 것. 그리고 젊은 시절 치열하게 고민했던 디자이너라도 결국엔 소위 말하는 기성세대가 된다는 것을 경계하며.


"답이 없어서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답이 있었다면 끝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흥미를 잃었을 거예요. 그런데 열심히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답이 나오고, 그리고 그 답이 또 다른 질문과 문제를 가져오고, 새로 찾은 답이 이전의 답들과 상충하는 모종의 프로세스가 끝이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어요. 함께하는 친구들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디자인하는 거죠."



교과서를 보는 듯 이상적인 디자이너의 모습으로 마주한 루이 랑에게 마지막으로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면서 절대 타협하지 않는 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는 수고와 노력이라고 답했다. 돈을 받았기 때문에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그 기회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이다. 루이 랑은 다들 그러지 않겠냐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단호하게 다들 그러지는 않더라고 답했다. 스스로 고집이 있는 디자이너여야만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하지는 못하는 일, 최선. 그래서 중요하고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어주는 것. 손석희 앵커도 매일 저녁, 최선을 다할 것을 국민들 앞에 다짐하지 않는가.



2018년 1월 23일 화요일.


글_ 황은솔

사진_ 이현재

협조_ 플레이버 www.flavr.co.kr


치바토빌리지_ 

chivatovillage.com

@chivatovillage


루이 랑_ @lui_lang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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