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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식이 Mar 05. 2018

지속 가능한 삶

마지막 시티 보이. 서른여덟, 가죽공예가 김호영

머리가 희끗하고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파인 중년의 남성을 생각하며 공방 문을 열었다. 반가운 목소리로 우리를 맞아준 건 날렵한 코 위로 동그란 안경을 얹은 젊은 남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젠틀한 목소리와 함께 묵직한 가죽 내음이 다가왔다.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죽 냄새. 



김호영은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웹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정했고, 심야공방을 열기 전까지 이베이코리아 마케팅팀에서 일했다. 모든 게 빠르게 움직이는 아이티 업계에서 느리고 꾸준하게 움직이는 공방으로, 컴퓨터로만 가상의 무언가를 만들던 일에서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일하는 것으로, 일상의 단면 전환이 꽤나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극적으로 급격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실현 가능한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멋있게, 그리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가죽 공예에 빠지게 되었고, 평생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공부하고, 장인의 기술과 가죽공예 브랜드를 배우기 위해 일본을 수차례 오가는 준비과정 끝에 그만의 사업장을 내고,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업으로 삼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처음 가죽을 접했을 때에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평생 직업으로 마음먹었을 때에도 그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해 공방과 샘플 공장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밤을 잊고 가죽에 몰두한 이 시간 동안 지금의 ‘심야공방’이라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퇴근 후에 시작된 작업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야근을 하는 날이면 9시가 넘어서야 작업실에 도착해서 새벽까지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공방에 전념한 지 8년이 되었지만 그는 지금도 야심한 시간까지 작업을 하는 날이 많다. 세심한 작업도 많고 집중해서 만들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넘기기도 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가죽을 만지며, 이 일이 평생 업으로 삼을 일이라고 확신하는 것. 그는 어떻게 그런 용기와 결심이 생겼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대형 온라인 커머스 기업에서 웹디자이너이자 마케터로 일했던 김호영은 직업적으로 스스로를 갈고닦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경력이 쌓이면 관리직으로 승진을 하고 생활은 더 나아지겠지만, 그것이 곳 디자인을 더 잘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과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만 작업을 하는 일에도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꾸준하고 묵묵한 가죽의 매력은 취미생활에서 김호영 스스로를 대변할 수 있는 정체성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한 개를 만들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만드는 집요함을 배우고 싶었어요.

공예품의 수준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비교하는 것은 문화상대주의를 기만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에 일본의 공예가 한국의 그것보다 낫다, 못하다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끈질긴 장인 정신으로 결과물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수준 높게 만드는 일본 공예의 집요함, 그리고 대중에게 무겁지 않게 다가가는 공예품 브랜드의 행보는 배울 점이 많다. 장인 문화가 발달하고 공예품 시장도 점점 활기를 띄는 탓에 재료며 기구 등 업을 받쳐주는 시장도 우리나라에 비해 큰 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비행기로 두 시간 안팎이면 갈 수 있는 거리와 직원 복지가 좋은 회사에 다닌 덕분에, 김호영은 금요일 오후와 월요일 오전에 반차를 내고 주말까지 4일 동안 일본을 다녀오는 일이 많아졌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가죽공예 장인들과 교류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고 브랜드에 대한 감각도 쌓았다.



어쩌면 김호영에게는 용기도, 결심도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공부하고 작업하며 가죽 다루는 일에 자신감도 생겼고, 평생 해도 재밌을 일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마케팅과 디자인이라는 그때까지의 경력도 창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심야공방과 최근 론칭한 수공예 가죽 브랜드 H801의 브랜딩과 웹사이트 제작도 직접 하며, sns를 통한 홍보도 꽤나 활발한 편이다.



지금은 자리를 잡고 상품 생산에도 속도가 붙어서 다양한 채널에 납품을 하고 있지만, 초반에는 제품 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가죽공방이 유행처럼 생겨나던 시기와 맞물려 수강료로 월세도 내고, 가끔 제품 판매도 하며 수입을 만들었다. 업계에서 오래 버티며 꾸준히 하다 보니, 패션 브랜드나 다양한 팬시용품 판매처와 협업할 기회가 꽤 여러 번 있기도 했지만, 빠르게 변하는 유행과 기계로 찍어내듯 만들어야 겨우 맞출 수 있는 물량 앞에서 그는 심야공방의 가치를 지키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저렴한 제품을 살 수 있는데도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방을 찾는 사람은 하나 만들면 평생 쓰고, 고장 나면 고쳐서 쓰고, 나보다 물건이 더 오래 세상에 남아 나의 자식과 그들의 자식에게까지 물려주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심야공방은 트렌드와 대량생산의 속도전에 끼지 않기로 했다.



대량생산과 카피 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수작업을 고집하며 천천히 잘 만드는 일을 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을 해내고 있는데도 별일 아니라는 듯 담백하게 말하는 사람. 꼼꼼히 재단한 가죽에 손으로 왁스를 먹인 실. 두 개의 바늘이 춤추듯 교차하며 지나간다. 다른 사람의 손을 타거나 기계를 돌려 만든 것의 품질을 믿을 수 없어서 밤늦도록 공방의 불은 켜져 있다. 제 이름을 걸고 만드는 물건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밤늦게까지 수업하고, 작업하고. 또 주말엔 강의 나갔다가 작업하고.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언제 쉬냐고 많이들 물어보세요. 그런데 굳이 쉴 필요가 없어요. 지금의 생활이 힘들다거나,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요. 가끔씩 힘들 때면… 뭐, 내가 사장이니까. 그냥 가게 문 닫고 여행 가면 되니까요.”



다행히 수공예품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직접 시간과 품을 들여 만드는 것이 가장 의미 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고 품질 좋은 가죽 제품을 소개하고자 지난해에 김호영은 ‘H801’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801은 일본을 오가며 가죽 공부를 하던 시절, 자주 묵었던 호텔 룸넘버이다. 그 자신과, 그가 하는 일과, 그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의미 있는 공간이기에 브랜드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그가 생각하는 가치 있는 물건에 대한 철학과 일상에서 받은 영감을 더해 만든 가죽제품 라인을 소개하고,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당신은 지금 지속 가능한 삶을 살고 있나요?

영국에서 서비스 디자인을 공부했던 2015년, 영국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 떠오른 화두는 ‘지속가능성’이었다.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나쁜 영향을 최소화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연구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지속 가능한 서비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지속 가능한 사회구조 등 인간을 둘러싼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과 지역사회를 넘어 한 국가를 아우르는 지속 가능함에 대한 고민은 그 방향을 한 개인에게 돌려보아도 다름없이 적용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지금 지속 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이다.



김호영의 경우, 그렇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치질과 바느질을 쉬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래서 행복하다는 가죽공예가 김호영은 지속 가능한 직업을 찾았고, 그래서 지속 가능하면서도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은 매우 밝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즐거워 보인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밝히기 껄끄러운 내용일만한 것들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그만큼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해 신뢰가 있고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리라.



직장인 8년 차에 접어든 내 친구는 대학시절 소개팅으로 만난 첫 남자 친구와 결혼을 했고, 졸업 후 처음 들어간 직장의 같은 팀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고 있다. 지리적, 지위적으로 널뛰기를 하며 이리저리 오가던 나의 경력을 보고 그녀는 매우 신기해했다. 부러워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안정된 직장 생활과 자유로운 주말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그녀가 8년 차에 접어든 지금, 답답하다고 했다.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닌데,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과 권태로움에 괴롭다고 했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해보아도,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못 하겠다고 한다. 육아휴직을 어서 쓰고 싶어서 자녀계획을 조금 서두를까 생각도 한다. 한 곳에 오래 앉아 일해본 적도 없고 아이도 없는 나는 그녀의 고민을 백 프로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냥 묵묵히 들어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에게 김호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열 세명의 시티 보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든 생각.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비슷한 고민들 끝에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나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시티 보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비슷한 고민 끝에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린 보통의 사람들이 얼마나 특별하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각기 다른 직업의 다양한 시티 보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속에서 내가 느낀 점을 글로 옮겨 적으며 생각했다. 그들은 특별한 삶은 사는 것이 아니고,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각자의 행복과 사정과 슬픔이 있다. 삶은 상대적일 수 없기에 저울질을 해서 누가 더 행복하고 누가 더 불행한지 비교해서 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티 보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지막 시티 보이, 김호영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꼭 창업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진짜 했으면 좋겠다. 다만 일확천금을 노리며, 복권 당첨과도 같은 성공을 바라고 무언가를 시작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실행에 옮겼으면 한다. 지금 하는 일이 싫어서, 또는 요즘 이런 게 잘 된다고 하던데, 하는 식으로 시작하면 결과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정보를 많이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많이 찾아보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용기 내어 문을 두드리길 바란다.”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그는 작업하는 모습과 직접 작업한 가죽제품을 보여주었다. 가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사진작가가 물어보는 ‘이건 뭐예요?’ 식의 유치한 질문에도 성의껏 답해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빌었다. 심야공방을 비롯해 작지만 뚝심 있는 공방들이 잘 되어 ‘메이드 인 재팬’ 뿐만 아니라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말에도 생활용품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퀄리티라는 뜻이 내포되기를.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심야공방의 위치가 중요하니 꼭 오래오래 남아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웃으며 나중에 찾아봤는데 심야공방이 없어졌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언했다. 나도 그렇게 확신했다.



2018년 3월 5일 월요일.


글_ 황은솔

사진_ 이현재

협조_ 플레이버 www.flavr.co.kr


심야공방_ @simyagongbang

http://smartstore.naver.com/leatherbag

https://blog.naver.com/tora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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