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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Mar 26. 2020

디어,인도

07화. 강가에서 시간 버리기


시간이 너무 많다. 여행자의 삶만큼 많은 시간도 없다. 24시간이 온전히 나만을 위해 흘러가니까. 목적 없는 시간을 길가에서 곧잘 버린다. 갠지스 강변에는 부유물이 떠다니고 악취가 난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강은 그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빨래하는 사람, 나들이 온 사람, 서원을 향하는 사람. 밤마다 세레머니를 구경하러 오는 수많은 인파들. 소를 몰고 가는 사람까지. 


강가 일상


하루는 오른쪽 골목 끝으로, 하루는 왼쪽 골목 끝으로 아주 단순하게 걸어 다녔다. 종종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또 왼쪽 오른쪽 정신없는 뒤바뀜에 골목에 갇혀버릴 때면, 길가 상인들에게 강가로 돌아가는 길을 물었다. 강변은 막힘없이 죽 이어져있으니까, 길을 잃어버릴 일이 없다. 바라나시에서 강은 길을 찾기 위한 나의 지표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일이 질리면 강가에서 보트를 탔다. 강변을 걸어 다니면 '보트 탈래?'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1시간에 200루피. 가격 흥정을 하고, 흥정에 따라 더 비싸게도 싸게도 탈 수 있다. 꿀렁꿀렁 나무 보트를 타고 강 가운데로 나아가 다시 강변을 바라보면, 내가 바라보던 풍경을 멀리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보게 된다. 멀리서 보니까 더 아름답다. 저 근처로 가면, 소음에 잡상인에 정신이 없을 텐데, 여기서는 보트랑 맑은 하늘이랑, 흔들리는 배랑, 나밖에 없다. 그냥 잠시 보트에 누워있었다. 하늘이 둥둥 떠다녔다. 



나의 소일거리 중 하나는 글쓰기다. 그냥 감상문, 일기, 편지 등등.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잘 간다. 밖을 돌아다니면 태양에 뚜드려 맞는 기분이라, 잠시 카페에 들어가 콜카타 옥스퍼드 서점에서 산 엽서를 썼다. 친구들에게 지금 여기서 느끼는 내 감정과 느끼는 것들을 나누고 싶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옅어질 감정들에 대해서. 


8시쯤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가 좋을 때도 있고 별로일 때도 있었다. 어떤 룸메이트를 만나냐에 따라, 숙소 주인이 어떻냐에 따라 다르다. 이곳은 방은 지저분했지만, 주인 분이 친절하고 좋았다. 숙소에서는 보트 타기, 헤나 그리기, 손금보기, 요가 등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진행했다. 소파에 앉아 주인 분과 떠들다가 이 날은 점심을 먹고 요가를 했다. 옥상에는 식물이 아무렇게 놓여있었고 바닥엔 모래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 위로 먼지 쌓인 요가 매트를 다시 깔고 주인 분을 따라서 요가를 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다람쥐가 보였고, 나를 빼고 외국인 2명이 더 있었는데, 어려운 자세를 곧잘 따라 하길래 자꾸 구경하다가 눈을 감지 않았다고 여러 번 지적받았다. 인도인들에겐 영적인 존재에 대한 강한 믿음이나, 내면에 집중하는 힘이 있다. 그 몰입감을 쳐다보느라 눈을 감지 못했다. 저들은 옆에서 다람쥐가 올라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진짜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야. 다른 세상에 간 것 같은 표정
OSMU 옥상


또 다른 날 밤은 손금을 봤다. 아주 손금을 잘 보는 사람이 어디선가 온다고 했다(?).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그분을 기다렸다. 사방이 까맣던 밤에 또 숙소 옥상에 올랐다. 요가를 했던 옥상은 밤이 되자 초록색 조명이 빛나며 다시 손금을 보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어느 날은 레스토랑, 어느 날은 요가교실, 어느 날은 손금 교실.. 이 날은 초록색 작은 전구 조명이 켜져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영적인 사람이라는 분은 작은 전구로 내 손바닥을 오목조목 비춰보며, 눈을 가까이 댔다가 멀리 떨어지며 손금을 보기 시작했다. 그분은 심각한 표정으로 드문드문 말을 이어갔고 나도 열심히 새겨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넌 모든 일을 너의 가슴으로 한다.
그리고 굿 에너지를 지녔다.  
모든 사람이 널 사랑한다. 선조가 널 돌봐줄 것이다(?) 
넌 늘 일을 많이 한다. 그래서 슬프고 걱정이 많다. 심장이나 두통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넌 긍정적인 사고와 파워를 지녔다. 눈, 허리, 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너는 배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물을 많이 마셔라. 
생각을 안에만 쌓아두지 말고 밖으로 꺼내라. 
너의 길을 바꾸지 말라. 
네가 일만 해서 아버지가 화낼 수도 있다(??)
너는 교육을 잘하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다.
네가 결혼한다면 2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낳을 것이다.(결혼 안 할 건데?)
네 남편은 완벽한 사람이다. 결혼을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뭐래ㅋㅋㅋㅋㅋㅋ)
돈 워리. 지금을 즐겨.
다른 문제는 생각하지 마. 두통이 올 거야.


허무맹랑한 말을 듣는 게 웃겨서 계속 실실 웃었다. 여기서는 웃기고 어이없는 일 투성이라 누구한테 말해주고 싶지만 친구가 없다. 룸메이트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내가 사둔 물을 자꾸 마셔서 비호감을 사던 얘였다. 그리고 내가 잠에 들면, 꼭 악기를 두드리며 잠을 방해했다. 둔탁한 악기 소리. 손금을 보고서 방에 들어갔는데. 또 악기를 가지고 논다. 둠타타. 이 친구는 꿈이 가수이고, 음악 공부를 하러 인도에 왔단다. 다룰 수 있는 악기가 꽤 많았다. 오늘은 내 잠을 방해했던 악기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내일은 이곳을 떠나니까 아쉬운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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