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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디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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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Apr 03. 2020

디어,인도

08화. 잃어버리고만 것

애플파이


내가 잃어버린 건 여권도, 카메라도 지갑도 아닌 건강이었다. 인도에서 휘청거렸던 경험은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게 해주었다. 오후에는 저녁 기차를 타고 타지마할이 있는 도시 아그라로 향한다. 그전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 피자와 애플파이로 유명한 가게를 찾아갔다. 여느 날처럼 40도에 가까운 더위에 그림자도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걸어갈만한 거리라 생각했고, 같이 가는 친구들도 있어서 신나게 가게를 향했다. 피자를 주문하고 앉아있는데, 자꾸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웠다. 화장실을 가야지하고 밖으로 나갔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다같이 흔들리고 내 몸도 비틀렸다. 테라스에 직원 분이 있어서 잡아주었지만, 안 그럼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을 거였다. 


이 와중에 의식이 남아있어서 ‘아, 쓰러지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구토만 다섯 번. 피자를 앞에 두고 물만 먹고 누워서 쉬었다. 더위를 먹었거나 저혈압 쇼크가 온 것 같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나여서 처음으로 건강을 잃어본 경험이었다. 누웠다 앉으면 다시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남은 일정 동안 걸어 다닐 수 있을까.. 몸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자 여행이 두려워졌다. 더위와 체력도 생각 안 하고, 돌아다니는 맛에 취해 무리한 탓이었다. 내가 나에게 병을 준 꼴이었다. 


일행의 부축을 받으며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4시간 뒤면,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향한다. 다시 12시간 정도 기차를 타야만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 상태가 별로면 계속 이곳에 머무를 생각이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자 몸은 무거운데 움직일 수는 있는 상태였다. 짐을 다 챙기고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걷기 시작하니 좀만 더 걸으면 쓰러질 거 같은, 아까와 비슷한 상태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기차역에 도착해 여행자 휴게실에 들어가 앉았다. 열도 나도 땀도 쏟아졌다. 이렇게 아파본 적 언제였던가. 움직일 힘이 없어 잠을 잤다. 타지에서 아프니까 서럽기보다 무서웠다. 제대로 된 병원에 가기도 힘들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드니까. 


아이들
소들
식물들

기차 출발 시간이 다되어 플랫폼으로 나갔지만, 기차는 오지 않았다. 3시간 정도 지연된 상태였다. 앉을만할 벤치도 다 자리가 찼고 현지인들은 바닥 아무 곳에나 앉아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석 자리에 있는 기둥에 배낭을 벗어놓고 잠시 등을 기대고 있었다. 타지마할이 있다는 아그라에 대한 기대도 없어졌다. 그저 지금보다 건강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 혼자 있으면 언제나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행자에 대한 신비감으로. 그중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나, 여자들이면 맘이 편해져 곧잘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 날은 옆에서 쉬고 있는 꼬맹이랑 자꾸 눈이 마주쳤다. 피식피식 웃으니까 따라 웃어준다. 꼬마는 누나에게 본인의 작은 가방을 던지며 자꾸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장난을 치고 싶어서 누나한테 던지는 가방을 옆에서 대신 잡았다. 부끄러움이 많은 꼬마는 엄마한테 도와달라는 듯 말했지만, 엄마는 가만히 웃고 있었고 난 뺏은 가방을 주지 않았다. 계속 장난을 치다가,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카메라를 켜고서 놀았다. 한참을 놀다가 기차가 도착했다. 친구가 선물로 줬지만, 내가 갖고 다니기엔 유치했던 키티 네임태그를 여자 아이 가방에 걸어주었다. 애들한테 뭐라도 주고 싶은데 줄 게 별로 없었다. 


냐옹냐옹


방문으로 들려오는 음악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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