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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y 26. 2020

핸드메이드 대신 레디메이드를 추구하는 시대에 부쳐

현대인의 개성과 낭만은 어디로 갔을까

녹색창과 랜선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작금의 시대에서는 아날로그적인 모든 것이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간결하고 즉각적인 것이 아니면 시대에 뒤쳐졌다고 한다.


하물며 쌀밥도 뜸을 들여야 맛있고 김치도 익어야 맛있거늘, 그저 편의점에서 즉석밥과 포장김치를 사다 먹으면서 집밥의 전통을 무시한다.


그러나 나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 낸 편리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다. 편리에서 비롯된 몰개성이 두려울 뿐이다.


집밥은 가정의 수마다 고유한 맛과 멋이 있다. 어머니의 세대와 시대를 거쳐 우리의 혓속에 똬리를 튼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맞게 공유된 가치를 진화시키면서 또 다른 개성을 창조해 낸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고를 수 있는 밥과 김치는 획일적이다. 이 브랜드 아니면 저 브랜드일 뿐. 나만 먹을 수 있는 내 고유한 맛과 멋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리가 주는 이점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평균치이기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는 평균값을 ‘스스로’ 만들어가려면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번 망쳐보고 여러 번  성공해봐야 겨우 얻어낼 수 있는 가치다.


레디메이드 인생을 사세요?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은 왜, 여러 번 시도하고 상처 나고 울퉁불퉁한 마음이 버거울 때쯤에나 찾는 보편을 추구하는 것일까.


추구하는 것에서 그치치 않고, 개인이 가지는 특수성을 조롱하는 사례도 많다. 사춘기의 말랑말랑한 감정선을 글로 옮기면, 오글거린다는 무례한 평이 돌아오고, 트렌드를 따르지 않으면 촌스럽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은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에 기대는 것일까?


이미 성공한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미 정형화된 보편적인 편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값이 각양각색이라면 어떤 값이든 상관없이 자기 갈 길을 가면 된다. 그러나 이미 균등한 결괏값을 갖고 태어난 세대들에게 개성은 에러에 불과하다. 남들과 다르면 쉽게 눈 밖에 난다. 결괏값이 기본값이자 최상값이라 따로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선대에서 그려놓은 좌표만 따라가면 보통은 한다.


이렇듯 모든 것이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이기 때문에, 굳이 핸드메이드를 추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레디메이드 인생에 염증을 느끼고, 돌파구를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문명의 시대가 주는 편리보다는 자신이 만들어낸 가치를 더욱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남과 다르다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 여러 번의 실패와 성공을 합산하여 자신만의 값을 내야만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어떻게 목표를 설정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핸드메이드 인생을 사세요!


자기만의 것을 찾는 것보다 그저 실패하지 않는 타인의 기호를 따라가고, 자신의 글을 쓰기보다는 타인이  (sns) 실어 나르고, 똑부러진 한마디보다  끝을 아이처럼 흐리며 감정 없는 문자(sms) 뒤로 숨어 버리는 어른 아이들이 있다면 아날로그의 삶을 살아볼 것을 추천한다. 직접 손으로 다듬고 손으로 만져보고 손으로 고치면서 느긋하게 쌓아 올린 고유한 자아를 창조해  것을 추천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려면 자신의 손끝에서 나오는 개성과 낭만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여러 차례 성공과 좌절을 거쳐야만 알아낼 수 있다. 보편적인 기성의 것과는 그 출발선부터 다르다.


자기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본 사람은 쉽게 남의 것을 재단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무언가 시도해 본 사람은 모든 결과물의 가치를 인정한다.


만드는 것보다 보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들은 과정의 복잡함을 모른다. 과정의 어려움을 모른다. 이미 누군가 열심히 입력해뒀을 정보를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얻는 사람들은 타인의 수고를 지각하지 못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씨앗을 품고 세상에 태어난다고 믿는다. 다만 좋은 흙과 물이 부족하고 자신만의 온도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발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씨앗은 결코 스스로 싹을 틔우지 않는다. 내가 목표를 설정한 만큼, 내가 노력을 기울인 만큼, 내가 바라는 만큼만 성장하는 것이다.


편의점에서는 살 수 없는 개성과 낭만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수고로운 핸드메이드 인생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내 영혼에 입혀질 맛과 멋이다. 그러니 트렌드만을 쫓아가는 풍요로운 시대에 부쳐 자기만의 고유한 가치를 추구할 것을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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