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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Sep 24. 2020

카타르에서 느낀 것들


카타르로 가기 전.


내가 경험한 나라는 한국과 호주 뿐이었다.


호주에서도 한국과 정말 다른 문화충격에 허우적대고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호주에서 내가 느꼈던 문화충격은 대체로 '선진국'의 것이었다. 처음 만나면 놀라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충격은 서서히 흡수되어 나도 모르게 호주의 문화를 내재하게 되는 그런 것들.


하지만 카타르에서 느낀 충격들은 하루가 다르게 호주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1. 들어올 땐 맘대로였지? 나갈 땐 아니야


카타르의 쇼핑몰은 정말 화려하다. 인테리어가 화려할 뿐 아니라 온같 금붙이를 파는 곳부터 비싼 명품 가방, 시계까지.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타리들은 명품 가방에 비싼 시계, 명품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카타르에 가기 전까진 카타르가 이렇게까지 부자 나라인 줄 몰랐다.


기본으로 운전기사, 내니 (가정부 겸 보모)를 두고 생활하고 있었으며, 남자 집이 부유할수록 부인도, 내니도 더 많았다.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론, 남자 하나가 부인 2-3명, 그리고 보모와 아이 여럿과 함께 활보하는 모습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일부다처제에다, 보모까지.. 비싼 가방을 들고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카타리 부인들의 모습과 달리, 늘 수수한.. 좋게 말해 수수하고 나쁘게 말해 거적떼기같은 옷을 걸치고 있는 보모들의 모습은 정말 안쓰러워 보였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도, 아이들이 울고 불고 난리 떼를 써도 카타리 부인과 남편들은 우아하게 식사만 계속 했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밥알 세례를 받아가며 밥을 먹이는 건 보모의 몫이었다.


그 때마다 보모를 유심히 보면, 그녀의 몫의 음식은 보이질 않았다.


카타리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해외여행을 갈 때도 꼭 보모를 데리고 가는데, 출국과 동시에 여권을 빼앗는다고 한다. 유럽 국가에서 보모가 달아날까봐..


의아함을 느낀 내가 물어봤다.


그럼 카타르에서는? 어차피 한 집에 사는데 여권을 훔쳐서 도망가려면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거 아냐?


그러자... 돌아오는 답이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카타르에 입국 해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은 (관광 비자 제외) 모두, 고용주의 승인이 없이는 출국 자체가 안 된다는 것.


 출국 전 고용주가 Exit Permit (엑싯 퍼밋, 출국 허가증)을 발급해 여권에 도장을 찍어 줘야 출국이 되고, 그 허가 도장이 없으면 공항에서 출국 불가.


도저히 이런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도 똑같이 카타르 밖을 나가려면 카타르 대학의 엑싯 퍼밋을 받아야 하는건지?


집에 와서 남편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하니 사실이란다.


이 무슨 인권 말살의 한 장면인지.. 너무 어이가 없어 그런 법이 어디있냐고 여기가 감옥이냐고 묻자 남편은 '여기 들어온 이상 감옥에 갇혔다고 보면 되지.' 하면서 씨익 웃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카타르에 입국한 외국인 건설 노동자든, 보모든, 그 누구든, 생각보다 생활하기 힘든 환경과 척박한 기후, 이질적인 문화에 적응을 못하고 그대로 탈출해 버리는 일이 너무 잦아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도 그 후 유럽 여행을 떠날 때, 카타르 대학에서 엑싯 퍼밋을 받고 나서야 출국 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 살다 온 나에겐....엑싯 퍼밋이란, 참 어이 쌈 싸먹는 일이었다. 2014년엔 그랬는데, 2020년인 지금 아직도 그런 게 남아 있나 모르겠다...



2. 여자, 남자, 분리! 분리!


호텔 등 외국인이 주로 가는 곳 말고 현지인이 자주 찾는 식당 같은델 방문하면 꼭 우리가 패밀리냐고 묻곤 했다. 그렇다고 하면 통과.


왜냐면, 대부분의 식당에는 여자와 남자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둘이 가족이면 패밀리가 앉을 수 있는 식당의 구역으로 안내가 되었고, 혼자 온 남자나 여자라면 철저히 성별이 분리되어야 했다. 가족이 아닌 커플이 가족을 사칭하거나, 혼인 신고를 않고 동거 중인 사람이라면, 카타르에서는 발각되어 문제를 삼을 경우 바로 추방도 가능할 정도였다.


식당 뿐 아니라, 많은 관공서나 대학들도 남자, 여자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어 낯선 곳에 갈 때마다 남편과 같이 들어가지 못하고 생 이별을 해야한 적들이 정말 많았다.


 

전통의상만 입고 생활하며, 이렇게 아직 성별 구분이 하나하나 엄격한 나라에서 살다 보니 자꾸 내 가치관에 혼란이 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여긴 정말 21세기가 맞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것도 이 나라의 문화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절대 낮춰보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자꾸만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3. 하루 다섯 번 기도시간입니다.


이것도 카타르에서 처음 안 사실인데, 무슬림들은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기도실도 철저히 성 구별이 되어 있는데, 어딜 가나 손쉽게 기도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거의 여기저기 있는 화장실의 숫자만큼 기도실도 구비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하루 5번 기도 할 시간이 되면, 관공서고 쇼핑몰이고 할 것 없이 특유의 아랍 느낌 가득한 장엄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쿠란을 암송하는 거라고 하던데 아랍어라곤 앗쌀라말라이쿰밖에 모르는 내겐 그저 알 수 없는 외계어로 들릴 뿐이었다.


이상하게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이상하게 무서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온 몸의 세포가 소소소 돋아나면서 기분 좋지 않은 이질감이 나를 한바탕 쓸고 지나갔다.


내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동'의 한복판에 있음을 매일매일 느끼게 되는 그런 느낌. 철저히 낯설고 생경한 문화 속에 발 담그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던 그 노래.


카타르 무슨 축제에서.


아, 물론, 이것도 카타르에 와서야 알았지만, 카타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동, 전쟁, 이라크 등과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한 국가였다. 그래도. 너무 낯선 문화와 낯선 생활 모습들이 끝끝내 우리에겐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만 했다.



4. 현채에요? 주재원이에요?


현채란, 현지채용의 줄임말이고, 주재원은 말 그대로 국내 기업에 속한 사람이 외국으로 파견 근무를 나오는 형식이었다. 현지채용은 대부분 주재원보다 모든 환경과 대우가 열악했는데, 주재원(주로 한국 대기업)의 외국 근무에는 비싼 집값, 자녀들의 학비, 전용 차, 해외 체류비 보너스, 한국으로 귀국 후의 승진 등이 따라붙는 반면, 현지 채용의 보수는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한국 인력을 값싸게 채용하기 위해 카타르 현지에 법인을 만들어 그 법인을 통해서 채용 공고를 내고, 한국인을 채용한다. 현지에서 채용한 거니까 집을 줄 필요도, 차를 줄 필요도 없다. 업무도, 일도, 문화도, 언어도 한국인이지만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어 낮은 보수와 거의 없다시피한 복지에 힘든 점이 많다고 한다.


결국 현채와 주재원은 생활 수준의 차이가 많이 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같은 처지끼리 어울리려는 경향이 많다.


이 모든 사정을 알고 나자 더더욱 현채에요? 주재원이에요?의 질문이 좀 싫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ㅋㅋㅋ 따지고 보면 현채였다. 카타르 대학 소속이니까 말 그대로 현지 채용 아닌가? 물론 학교에 있다 보니, 집 렌트비 보조 등을 비롯해 이것저것 보너스가 많은 현채였지만, 구구절절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싫었다.


누군가 그렇게 물어보면 당당하게 현채입니다^^ 하고 대답하곤 했다.



5. 빈부격차


그렇게 돈이 넘쳐나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흐르는 나라 카타르.


럭셔리한 카타리들의 향연이 어딜 가나 펼쳐지지만, 정작 카타르를 이끄는건 제3국에서 온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거의 모든 건설 현장은 인도, 파키스탄 계열의 노동자들이 45도의 더위 속에서 헬멧과 긴 안전복을 입고 일 하고 있었고, 에어컨도 없고 냉수도 나오지 않는 집에 살고 있었다.


카타르의 노동자들 (이미지 출처: 구글)


카타르의 더위가 어느 정도냐면, 잠깐 차에 케익을 놔두고 20분간 볼일을 보고 왔는데 트렁크의 케익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물이 되어 있었으며, 잠시 집에 전기가 나가 에어컨이 꺼졌는데 집에 있언 모든 립스틱이 쏟아진 피처럼 녹아내려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겨울에 보일러를 켜지 않으면 온수가 나오지 않듯, 카타르의 여름에는 냉각 장치를 켜지 않으면 냉수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48도까지 올라가는 여름에는 냉각장치를 아무리 가동해도 뜨뜻미지근한 물만 나오지 차가운 물은 아예 나오질 않는 나날이 많다.


이런 더위에서, 집에서 내려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로 가는 그 100미터조차 숨조차 쉬기 힘든 그 뜨거운 열기속에서, 야외에서 그 뜨거운 햇볕 아래서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는 힘든 삶이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얼마나 힘들까.


아니 진짜로... 오죽하면 입국과 동시에 여권을 빼앗겠냐고.. 오죽하면 엑싯 퍼밋이 없으면 출국을 안 시켜 주겠냐고...


그렇게 힘들게 사는 이들을 뒤로 한 채, 카타리들이 좋아하는 빌라지오 몰은 인공 수로가 흐르고, 흘러가는 수로에는 배도 떠 다닌다.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모티브로 실내에 그대로 옮겨놨다는 빌라지오 몰.


쇼핑몰 안은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고, 값비싼 브랜드들이 있고, 달콤한 디저트들이 가득하다.


도하의 빌라지오 몰




그런 쇼핑몰을 청소하고, 뒤에서 끊임없이 일하는 건 또 제 3국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런 장면을 매일같이 보고 있으니 정말 마음이 안 좋은 날들이 많았다.


호주에서 3d 노동은 더 급여를 많이 받는다. 남들이 힘들고 꺼려하는 일일수록 보수가 높고, 비정규직일수록 더 시간당 급여가 높았다. 물론 호주도 빈부격차가 있고 당연히 빈익빈 부익부 또한 존재하는 사회지만, 카타르랑 비교했을 땐 천지차이였다. 카타르의 화려한 이면 뒤에는, 제 3국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묻어있었다.


이것 또한 그 사회의 한 모습이겠지만.. 끝끝내 나는 이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카타르 생활도 5개월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카타르에서 나가고 싶었고, 여기는 결코 우리가 장기적으로 거주할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남편은 카타르 대학의 연구원으로 취업해 논문도 엄청 많이 쓰면서 정말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으며, 이런 그를 그 대학의 교수들은 정말 예뻐해서 엑싯 퍼밋을 내 줄때마다 '설마 다른 대학으로 가려는 건 아니지???' 하고 안타까운 눈초리로 물어보았다고 한다.


근무환경도 최고였다. 8시 출근, 2시 퇴근.


말도 안 되는 ....

8시 출근, 11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 2시 퇴근. ㅋㅋㅋㅋ

1년에 휴가 40일. 고연봉. 렌트비 보조. 그리고, 연봉에 세금 안 뗌.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나는 나날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남편 일이 잘 될수록 여길 못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엄습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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