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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Sep 23. 2020

카타리, 그들의 파티

광란의 파티에 초대되다


그렇게 카타르에서 한국어 (보조) 선생님으로써의 날이 이어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 학교의 커리큘럼은 약간 독특했는데, 갑자기 짧은 방학 (Term Break)을 맞게 되어서, 나는 다시 일이 없어져 조금 심심해졌다.


한국이나 한번 방문할까, 유럽이 근처인데 유럽 여행이나 한번 갈까, 온갖 생각을 다 하며 지루한 나날을 겨우 견뎌내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다.


누구지? 하고 보니 우리 반에서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의 이름이 보였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덜컥 친구 신청을 수락했는데, 수락하고 나니 갑자기 선생님의 진중한 경고가 생각났다.


<절대, 이메일을 교환하거나 sns에서 교류를 해선 안 된다>


그건 선생님의 개인적인 당부가 아니고 그 학교의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학생이 친구 신청을 해도 되는 건지? 당장 친구 신청을 취소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던 찰나에 바로 메세지가 띵동 하고 왔다.


-Hey, Kelly!  안녕 하세요!! 나 파티마 입니다!


파티마에게 너무 반갑다, 정말 보고싶다, 그런데 우리 ... 이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 하니까 파티마가 에이 다 괜찮다며 지금 담임 선생님이랑도 전화 하고 이메일 하는데 그건 그냥 규칙일 뿐 아무 상관이 없단다. 그런가? 그냥 규칙일 뿐이었나? 파티마가 핸드폰 번호를 주면서 이 쪽으로 연락을 달라길래 나도 모르게 파티마에게 메세지를 했다.


파티마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다음 주 우리 반 학생들과 방학기념 파티를 하기로 했다며 나도 초대되었다고 시간이 되면 참석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시간과 장소를 물어보자 장소는 누군가의 집이고, 자기가 우리 집으로 나를 태우러 오겠단다.


카타르 사람의 집에 초대되다니, 너무 신나고 재밌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그 날이 되었다.


집 앞에 나가있자 회장님들이 탈 법한 시꺼먼 큰 차 하나가 스윽 들어왔다.


차 안에는 파티마가 타고 있었는데, 앞에는 이미 남자분이 운전 중이고, 옆으론 여자분 하나가 타고 있었다. 나이대를 보아하니 파티마의 부모님인가 싶었다. 그런데 타자마자 부모님이면 나를 소개하고 인사를 할 텐데, 파티마는 나를 만나 신나게 떠들어댈 뿐, 앞에 탄 사람들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다.


슬쩍 저분들이 누구냐 물어보았다. 이때부턴 파티마도 한국어 보단 영어가 편했는지 계속 어느새 나랑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운전하는 분은 운전기사고 보조석에 앉은 분은 가정부라는 것이 아닌가.


 Driver and nanny?! oh my god!


내가 깜짝 놀라자 파티마는 그게 왜 놀랍냐는 듯 갸우뚱거렸다. 그러고나서 자세히 보니, 부모님이라기엔 좀 이상하긴 했다. 운전 기사는 파키스탄/인도 계열로 보였고 내니는 입은 의상이나 얼굴로 짐작해 볼 때 인도네시아 사람 같았다.


차는 어느덧 사막 한 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이런 끝없는 사막 어딘가에 집이 있다니... 우리처럼 아파트에 사는게 아닌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에 신기루처럼 한 대저택이 들어왔다.


진짜 이렇게 생긴 집이었다. (이미지 출처: 구글)



사막 한 가운데 마치 신기루마냥 정말 거대한 대저택이 우뚝 솟아 있었다.


-WOW!


진짜 너무 신기하고 대단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운전기사는 나랑 파티마, 내니만 내려 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저택 앞마당에는 이미 불이 피워져 있었고, 푹신한 야외 소파가 깔려있었다.



정확히 이런 세팅이었음. (이미지 출처: 구글)


소파에 앉아 조금 두리번거리고 있자, 차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정말 재미있게도, 모든 차들은 하나같이 가정부와 운전기사가 같이 있었다. 운전기사는 가정부와 우리 반 학생을 내려준 후 차를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가정부는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듯 화로에 불을 피우고 바베큐거리를 준비했다.


학생들은 도착한 뒤,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누워 있고, 가정부 여럿이 커다란 접시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일일히 과일과 다과를 권했다. 누워 있는 학생들은 이리저리 손짓만 할 뿐이었다.


세상에 이런 편한 파티가 있다니.. 진짜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자 가정부 한 명이 음향 장비를 세팅하더니 음악까지 쿵쿵거리며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었는데, 고기가 익을 동안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진짜 너무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정말 내가 간 집이랑 비슷한 사진. (이미지 출처: 구글)


정말 화려하고 넓은데다가, 미로처럼 얽힌 복도에, 방은 몇 개인지 셀 수조차 없고, 10인용 테이블이 놓여진 거실만 2-3개가 있었다.


내가 놀라서 감탄을 계속하자, 학생들은 신나서 나를 여기 저기 끌고 다녔다.


그 중 제일 충격이었던 방은 '향수의 방'이었는데, 아랍의 향수는 우리가 그냥 뿌리는 스프레이 향수와는 달리 디퓨저처럼 생겨서 스틱을 찍어 바르는 스타일이 많았다.


그 방에는 벽면 전체가 향수로 가득했는데, 벽 전체가 진귀하게 생긴 병에 담긴 향수 장식장이었고, 중앙의 테이블 위에는 더 큰 병에 담긴 각양각생의 향수가 놓여 있었다. 늘 카타르 사람들에게서 진하게 풍겨오던 그 사향 냄새. 다 이런 향수를 썼구나.


계속 내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자, 그중 한 학생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향수라며 뚜껑을 열어 스틱을 꺼내 조금 내게 묻혀줬는데, 그 향이 정말 진귀하고 좋았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이국적인 향기의 고혹함이 정말 짙은 향수였다.


이런 향수는 어디서 살 수 있냐, 가격은 얼마나 하냐고 물어보니 그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방금 내가 찍어 바른 그 향수는 1병에 천만원..가량...한다고...


아닌게아니라 병엔 금테가 둘러져 있었고 향수 안에도 금박이 가득했다. 병도 크리스털인가...? 나는 그 방에 머무르다가 단 하나라도 실수로 향수를 깰까봐 서둘러 방을 탈출해야만 했다. 검은 카타르 전통의상을 걸친 학생들은 우루루 나를 따라다니며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다 신기한지 그저 까르르 웃어댔다.


마침내 파티의 본격 장소인 또 다른 거실로 들어섰는데, 굉장히 비싸 보이는 음향장비가 있었고, 모두가 거기 모이더니 여자밖에 없는것을 확인한 후 하나같이 아바야 (카타르 전통의상)를 벗어 던지기 시작했는데, 아바야를 하나씩 벗어 던질때마다 같이 온 각자의 내니가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ㅋㅋ 아바야를 스윽 수거해가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적재적소에 나타나는건지 정말 신기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정숙해 보이는 아바야 안에 받쳐 입은 옷을 보고 또 한번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정말... 내가 본 것 중, 최고로 야하고 최고로 화려한 옷이었다. 밸리댄스 의상과 언뜻 비슷했는데, 보석과 프릴이 주루룩 박혀있었으며 망사에 레이스에 스타킹에 하이힐에 ... 정말 그 아바야 안에서 등장할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그런 옷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학생들은 술도 안 마시면서 음악에 맞춰 미친듯이 몸을 흔들어댔다.


학생들은 같이 춤을 추자며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댔고, 나는 아득한 문화적 충격에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긴 어디~나는~누구~


그렇게 멘붕이 와 스르륵 녹아내리고 있던 찰나, 음악이 갑자기 뚝 끊겼다.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던 카타리 학생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아랍어로 뭐라뭐라 외쳤다.


그러자 그중 둘 셋은 내니가 급히 아바야를 갖다줘 얼른 들쳐입었고, 아바야를 찾지 못한 나머지 열 몇명은 우르르 다른 방으로 부리나케 대피를 했다.


알고보니 집 주인 학생의 오빠가 잠시 뭘 가질러 집에 들리는데, 절대 다른 남자에게는 아바야를 입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단다. 딱 한 명, 그 화려한 옷만 걸친 채로 잠시 들린 남자와 이야기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집 주인 학생이었다. 가족끼리는 보여줘도 괜찮단다.


그렇게 소동이 있고 그 남자가 떠나자 다시 파티가 계속되었다. 정말 술도 안 먹고 이렇게 취할 수가 있다니 (무슬림 국가에서 술은 금기사항) ...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신나게 흔들어대던 학생들은 해가 지자 마당으로 나가 아까 그 소파에 다시 비스듬히 누웠다. 그러자 어디선가 내니 열댓명이 다시 나타나더니 엄청나게 화려한 음식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누워만 있으면 내니 열명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하나씩 음식을 권했다. 한 내니가 든 쟁반엔 과일이, 다른 내니가 든 쟁반엔 고기가, 또 다른 내니가 든 쟁반엔 스튜가... 그렇게 음식 종류만 15가지가 넘었다. 그러고 겨우 음식을 받아 먹고 있으면 다른 내니가 나타나 음료를 서빙하곤 했다.


놀고, 먹고, 이야기하고, 춤추고, 음악도 듣고,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도대체 저택 밖은 모래밖에 없는 사막이던데.... 어디 있다 오시는 건지는 모르지만, 운전기사들이 다시 집으로 복귀했고, 학생들은 대동한 내니와 운전기사와 하나 둘씩 사라졌다.


나도 파티마가 다시 태워 줘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 날의 파티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정말 생경했던 문화 충격으로 남아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오늘의 파티가 얼마나 굉장하고 화려했는지 막 떠드는데, 아무리 설명해줘도 내가 느낀 충격과 신비함을 담아낼 수가 없어서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는 매일같이 지루해하며 한국으로 탈출 계획을 짜던 내가, 파티에 다녀와서 즐거워서 떠드는 걸 보고는 다행이라며 며칠은 잠잠하겠구나 싶어서 또 한 시름 놓았다는 생각만 했었단다.


역시 공대생중 왕중왕, 공대 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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