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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Sep 17. 2020

카타르의 한류

정말 의외였다.

카타르 생활도 어느덧 적응 해 시간은 술술 잘도 흐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 후, 남편과 초콜릿 전문점에 가서 초콜릿과 차를 디저트로 즐기고 있는데, 자꾸 옆 테이블의 카타리 (카타르 사람들)들이 우리를 힐끗거리는게 느껴졌다.


카타르 전통 의상을 입은 카타르 여성들 한 무리였는데, 나중에는 너무 우릴 대놓고 쳐다봐서 나도 대놓고 그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외국에서는 늘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이런 시선에 참 민감해지고 예민해진다.


그러자, 정말 당황스럽게도, 카타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안녕하세요'였다.


-안녕하세요!!

-어??? 네??? 우와!!!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시죠? 반갑습니다.


한국말을 하는 카타르 사람이라니!!

나는 너무너무 신기해져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심지어 발음도 너무 좋았다!!


-한국어를 어떻게 이렇게 잘 하세요?

-대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리고 한국 드라마 아주 좋아해요.

-우와 신기하다~! 너무 반가워요!!

-저도 반가워요. 카타르 한국 사람 많이 없어요. 중국 사람 봤는데 한국 사람 없어요.


또박 또박 발음도 정말 좋은 그녀였다.


카타르에서 인기 많은 한국 드라마가 뭐냐니까 정말로 예상 밖에 '대장금'이란다. ㅋㅋ 대장금 말고도 한두개 더 이야기 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알고보니 카타르 사람들도 한국 드라마나 k-pop을 은근 좋아라 하는데, 한국 드라마가 이란이라 카타르 등 중동 국가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


카타르는 일부다처제 국가이다. 일부다처제이지만 아무나 부인을 마구마구 맞이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나름 룰이 있다.


법적으로 4명까지 부인을 맞이할 수 있는데, 대부분 아주 부유한 사람만 가능하다고 한다. 왜냐면 첫번째 부인과 결혼을 하면 두번째 부인을 들이는 것 부터는 첫번째 부인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 승인을 받기 위해 첫번째 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가의 선물을 줘야 하고, 그리고 두번째 부인이 될 사람도 왠만해서는 두번째 부인의 자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또 엄청난 고가의 선물이 없으면 그 자리를 승낙하지 않는다고 한다. 허락을 위해선 부인과 사이가 좋아야 함은 물론이다.


<결론 = 돈 없으면 부인 4명 못 둠>


카타르 역시 남성 중심의 사회인데,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시댁'이나 '고부갈등' 등의 문화가 영어권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문화의 한 자락이라면, 카타르 사람들에게는 너무 친숙하고 와닿는 주제라 한국의 정서가 많이 통해서, 웃긴건 <막장드라마>일수록 더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우연히 카타르 사람을 만나 신기하고 재미난 저녁 시간을 보냈는데, 더 재미난 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무료한 생활이 너무 지루해져 카타르의 구인구직 광고를 자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언어학 석사 학위로는 딱히 대학교에 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어학이란 학문은 완전 인문학 쪽이다 보니 이래저래 나를 위한 직업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카타르의 모 기관에서 한국어 강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보고, 문득 내가 적격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내 언어학 석사 논문은 외국어를 배울 때 문화가 미치는 영향에 관한 거였고, 내 관심사도 온통 adult second language learning (성인의 외국어 습득) 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어학을 전공한 탓에, 어떻게 한국어를 티칭해야 하는지도 대략적으로 아웃라인이 그려졌다. 실제로 중국사람과 우즈베키스탄 사람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도 있었다.


그래, 이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다!


당장 이력서를 만들어 내고, 다음날, 곧바로 trial 을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과 쇼핑몰에 달려가서 깔끔한 옷을 한 벌 사고, 다음 날 아침, 부푼 마음으로 그 기관으로 향했다.


그 곳에 가니 한국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기존 선생님께서는 나를 너무나도 반겨주시며,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택하는 학생들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반해 너무 인력이 부족해 힘에 부치셨는데, 오랜 기간동안 요청을 해 겨우 이렇게 한 분을 더 모시게 되었다며 정말 반가워 해 주셔서 나도 너무 기뻤다.


그 날은 트라이얼 (견습 직원)으로 간 것이니 마음 편하게 수업에 들어와서 참관하고, 과제나 액티비티 첨삭 같은것부터 시작하라고 하시길래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 시간에 들어갔다.


클라스에 들어가니, 15명 정도로 보이는 카타르 여대생들이 쭈루룩 앉아 있었다.


정확히 이런 이미지의 대학생들이었음. 이미지 출처 - 구글



모두들 굉장히 진하고 눈을 굉장히 강조한 부리부리한  메이크업에, 샤넬 백을 하나씩 메고, 루이비통 스카프를 두른 그녀들의 첫인상은 사뭇 무서웠다. 나는 약간 그녀들의 기에 눌려 소심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 하세요. 오늘부터 보조 선생님으로 온 유XX 입니다. 영어 이름이 켈리에요. 켈리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인사를 마치고 학생들을 한번 둘러보는데, 누군가 손을 번쩍 들더니,


-선생님!! 이뻐요!! 예에~!!!


라고 하더니 박수를 마구마구 치는 것이었다.


겉보기만 무섭지 마음은 정말 착하신 분들이 아닌가!!! 나의 외모는 지구를 돌아 카타르에서 드디어 빛을 보는건가!!! 나는 난데 없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신나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는 원래 계시던 선생님께서 수업을 시작하셨는데, 그날따라 교실 분위기가 웅성웅성 이상했다.

선생님이 저번 시간에 내 준 숙제를 같이 풀이하자고 숙제를 꺼내보라고 했는데, 모두들 갑자기 딴청을 피우며 휴대폰을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아랍어로 쑥덕거리며 이야기를 하며 도통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선생님이 책상을 탁탁탁 치시며 큰 소리를 낸 뒤에야 겨우 선생님을 쳐다보았는데, 선생님이 숙제 안 해온 사람은 다 이야기를 하라고 하니까 갑자기 아까 나보고 예쁘다고 했던 (맘씨 고운) 카타리 학생이 번쩍 손을 들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썬쌩님!! 저!! 기분 많이 나빠입니다!!

-파티마. 진정하고 차근차근 이야기 해요. 왜 그래요?

-숙제는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는 숙제 다 못 합니다. 우리는 다른 과목도 수업 합니다!!

-파타마, 다른 과목은 다른 과목이고 한국어는 한국어지요. 숙제를 못 하면 이렇게 막 떠들게 아니라 송구스러워 해야 하는 거에요.

-송구수러 그거 무슨 말인지 몰라요. 숙제 너무 많아서 기분 나빠요.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손을 번쩍 번쩍 들더니,


-기분 나빠요!

-나도 기분 나빠요!!!


하고 여기저기서 언성을 높이는게 아닌가 !!!


.......나는 머리털 나고 학급 내에서의 이런 반란의 현장은 처음 보았다.

분명히 23-24세의 대학생들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클라스에서 매너가 없다니. 기분이 나쁘다니.... 도대체 무슨 이런 일이....?


나는 약간 벙-찐 상태로 얼이 빠져 놀라서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며 앉아 있었는데, 선생님은 이런 상황을 한두번 겪어 보신게 아닌 듯 능숙하게 학생들을 달래가며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러자 학생들은 금새 반란을 멈추더니 얌전해져 선생님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하고 발표도 곧잘 했다. 글쓰기 시간엔 모르는게 있으면 옆에 앉아있던 나에게 가져와서 첨삭을 받기도 했고, 내가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그런 개인 정보를 물어보다 원래 선생님께 제지당해 돌아가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3시간여의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께서 슬쩍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런 수업 처음이죠?

-네.. 조금 당황스러웠네요. 하하..



내가 말끝을 흐리자 선생님이 이런 저런 부연설명을 해 주셨다.


아랍어에서 '기분 나쁘다'는 말은 그냥 한국어에서의 '힘들다' 느낌 정도의 뉘앙스라고 한다. 우리가 외국어를 잘 모르면 그 뉘앙스에 있어서 실수를 할 수 있듯이, 카타르 학생들도 똑같이 숙제가 많아 너무 힘들다는 말을 아랍어 그대로 기분 나쁘다로 직역하다 보니까 처음 들을 땐 오해하기 십상이라고. 마찬가지로, 한국처럼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문화가 아니고 말 그대로 service provider, 서비스 제공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어서 학생-교사간의 관계가 동등한 편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자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그 외에 학생들과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는 것, sns 주소를 공유하는 것 등등 이런저런 금지/주의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퇴근을 했다.


뭔가 , 앞으로의 나날들이, 더 판타스틱해 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타르의 한국어 교사라니!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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