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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Oct 29. 2020

계속되는 첫 날

정말 길었다...


나는 엄청난 문제가 닥쳐 절망감이 들면, 일단 회피하는 스타일이다.


숙소에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얼마나 오래 열려있었는지 모를 창문 덕에 내려앉은 먼지로 온 집안이 발 디딜 틈 없이 더러운 걸 알게 되자 내 머리는 생각을 멈춰 버렸다.


이틀에 걸친 비행의 피로가 아니었다면 몰라... 나는 정말 엄청난 비행과 이동 시간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냥 캐리어 위에 주저앉아있자,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캐리어를 뒤져 낡은 수건 하나를 꺼내 걸레로 만들어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수건 하나로는 역부족인 청소였다.


수건을 대기만 하면 이렇게 더러울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새까만 먼지가 묻어 나왔고, 는 낡은 수건을 두세 개 더 희생시켜야만 했다. 온 방과 거실을 청소하더니, 프런트로 내려가서 뜨거운 물과 전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무슨 전기 어카운트를 만들어서 요금을 충전해야 한단다.


세상에..

중국 도착한 첫 날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지금도 모나쉬 대학교가 어쩜 그런 식으로 일 처리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어찌 그것도 해결하고 사람들이 몇 번 집에 왔다 갔다 하자 불행 중 다행으로 전기도 들어오고 따뜻한 물도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추워서 히터부터 일단 풀로 틀었다.


오랫동안 열려 있던 창문 탓에 침대의 이불도 새까만 먼지가 내려앉아 있어서 이불도 탈탈 털고, 곰팡이와 녹이 슨 화장실이지만 샤워도 해야 했다. 샤워를 하고, 나는 나와서 머리를 드라이하고 있었고 남편이 들어가 샤워를 하고 있는데, 그 순간 퍽 하면서 온 집안의 전기가 나갔다.


너무 짜증이 밀려오자, 저절로 실소가 났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으면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싸매곤 덜덜 떨면서 다시 프런트로 내려갔다. 전기가 나갔다고 설명하자 아까 왔다 갔다 했던 아저씨를 다시 보내준다. 아저씨가 두꺼비집을 열고 뭘 뚝딱뚝딱 하니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웃겼던 건, 남편이 두꺼비집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못 찾았는데, 알고보니 두꺼비집은 허접하게 걸린 벽의 액자 뒤에 교묘하게 숨어있었다.


아저씨가 가고 추워서 다시 히터를 틀고, 머리를 말리기 시작하자마자, 전기가 퍽 소리를 내며 또 나갔다. ㅋㅋㅋㅋㅋㅋ


기가 막혀서...


어,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헤어드라이어를 틀자마자 전기가 자꾸 나가는 것 같았다. 아마 히터도 전력을 많이 사용하고 드라이어도 전기를 많이 사용해 두 개를 동시에 틀면 과부하가 걸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까 아저씨가 하는 것 그대로 두꺼비집을 다시 손대고, 히터는 가동하지 않은 채 드라이기만 사용하자 이번엔 전기가 나가지 않았다.


그 후로, 겨울 내내,

리는 드라이기를 쓸 때는 히터를 꺼야만 했다 ^^







샤워를 마친 둘은 그대로 침대에 뻗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오후 3시인가 그랬다.


푸동 공항에 새벽 6시에 도착, 쑤저우에 9시쯤 도착, 11시까지 청소와 샤워로 사투를 벌이고 푹 자고 일어나니 3시. 이렇게 긴 하루가 또 있을까..


눈을 뜨자 배고픔이 밀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는 한 끼도 먹은 게 없었다.


밖을 보니 미세먼지로 공기는 뿌옇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정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먹을 게 없어서 움직여야만 했다.


아파트 1층에 카페가 있다고 했지..? 아까 지나가다 얼핏 그곳을 본 것도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 그쪽으로 가자 카페는 야속하게도 문을 닫았다.


아파트 주변은 정말 너무나도 휑했다. 차가 1대도 보이지 않는 왕복 6차선 도로만 덩그러니 있고, 엄청난 전신주들이 줄지어 있을 뿐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어쩌다 보이는 구멍가게들도 다 문을 닫았고, 도시는 회색빛으로 그저 죽어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춥고 비까지 오는 날씨에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도 무리였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 아침에 봤던 퉁명스러운 아가씨에게 그 어떤 레스토랑이라도 좋으니 가고 싶다고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니깐 화를 내면서 니 택시는 네가 길에 나가서 잡으란다.


길에는 택시는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이던데.. 택시를 잡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식당으로 가 달라고 설명을 하란 말인지.. 정말 너무 답답하고 절망스러웠다.


도로 숙소로 올라가 호주에서 사 온 초콜렛이나 먹으며 허기를 달래야 하나 싶었다. 하루 이틀 초콜렛만 먹는다고 죽지는 않겠지... 그렇게 숙소로 올라가려던 순간, 아파트 후문 입구가 보였다. 아까는 정문으로만 나갔는데, 후문 쪽은 처음 보는 입구라 저기도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만 한번 가서 보고 그래도 없으면 초콜렛을 먹을 심산으로 후문 쪽으로 슥 나가보니, 역시나 아무것도 없이 휑했는데 어디선가 국 끓이는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나는 유달리 코가 좋은 편이라 살면서 후각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 때도 그때였다. 그 냄새를 따라가니, 마라탕 집이 하나 나왔다. (그때는 마라탕 집인 줄도 몰랐음)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고는 곧바로 그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안은 이렇게 생김 ㅎㅎ


가게로 들어가니 이름 모를 한자만 가득하고 한쪽 벽에는 각종 식재료 - 야채, 고기, 맛살류가 이것저것 진열된 진열장이 보이고 면 종류도 가득했다. 뭔가 낌새로는 일반 식당하고 다른 것 같았다. 말도 안 통하고 뭘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하던 찰나에 우리 말고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


잘됐다, 저 사람들 하는 걸 따라 해야지 하곤 테이블에 앉아서 그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보자, 플라스틱 바구니를 하나 들더니 재료를 이것저것 바구니에 담고 면을 얹어서 카운터에 갖다 준다. 카운터는 바구니 무게를 재더니 뭔가를 물어보고는 계산을 하고는 끝.


생각보다 간단하네??


나도 남편도 용감히 일어나서 그대로 바구니를 들고는 먹고 싶은 재료를 담았다. 가만히 보니 이건 어묵이고 저건 두부고 아는 재료가 가득해서 어묵, 두부, 맛살, 면, 숙주나물, 청경채 등을 가득 담았다.


그러고는 둘 다 바구니를 내밀자 아니나 다를까 중국말로 뭐라 뭐라 물어본다. 지금 생각하면 국물 맵기나 국물 종류를 물어보는 말이었을 것 같지만, 그때는 알아듣지 못해 돼, 돼, 돼 만 했다. (네 라는 뜻의 중국어)


내 꺼는 뭔지 몰라도 저울을 재니 15라는 숫자가 떴고, 남편 건 18이라는 숫자가 떠 총 33원을 내야 하는데 계산해주는 아저씨 뒤로 놓인 콜라와 환타가 보였다. 순간 시원한 환타도 먹고 싶어서  음료수 장을 가리키며 퐌타! 를 외쳤다.


콜라는 코크고 환타는 퐌타겠지 싶었지만 내 착각이었다. 몇 번이나 결렬된 의사소통 끝에 아저씨의 손가락이 겨우 환타를 짚었고, 내가 돼! 하고 외치자 아저씨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쁘은 똬아! 하고 외쳤다. (환타의 중국어는 '쁜따' 이다. ㅋㅋ 성조 때문에 쁘은, 따아 이렇게 들린다)


 그렇게 쁘은따아 까지 35원을 내고는 그때만 해도 환율 감각이 없어서 이게 35달러인가, 도대체 얼마인가 헷갈렸다. 워낙 호주 물가가 비싼지라 호주에서 이렇게 둘이 먹으면 3-40불은 그냥 나와서, 35달러라 해도 그렇게 이상하진 않았다. 나중에 집에 가서 계산해 보고 그게 약 6000원 가량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마라탕을 받아 들자 너무 행복했다.


조금 향신료의 향이 거슬리는 것 같았지만 하루 종일 굶은 사람에겐 대수가 아니었다. 숙주도 아는 맛, 어묵도 아는 맛, 청경채도, 두부도, 유부도, 버섯도 아는 맛.. 신나게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빨아 당기고 있는데, 갑자기 입술에 뭐가 탁 와서 들러붙는다.


이게 뭐지 하고는 손가락으로 당기자...


정말 당황스럽게도 맛살을 싸고 있던 비닐이었다.... ;;;


맛살을.. 까서... 조리해주실 줄 알았더니... 그냥 다 때려 부으신 모양이었다. 뭐지.. 바구니에 올릴 때 셀프로 까 드렸어야 하는 거였나...?


국을 이리저리 휘저어보니 재료 사이에 뒤엉켜있는 맛살 비닐이 두어 개 더 나왔다. 남편은 맛살을 싫어해 다행히 넣지 않아서 맛살 비닐을 만나지 않았지만 나는 맛살을 좋아하는 죄로 환경호르몬 국을 선사받아야만 했다.


만약 호주라면 당당히 저 비닐을 들고 가서 따지고 환불까지 받아 내었을 터인데... 여기서는 중국어도 못 하는 주제에 이걸 보여주면 뭐하고 안 보여주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비참했다... 그리고.. 이미 입맛은 뚝 떨어졌지만 야속한 배는 계속 고파서 비닐만 살포시 빼내고 남은 걸 싹 다 긁어먹었다.


중국에 왔는데 중국어도 못하면서 무슨 비닐 환경호르몬 탓이여?


그냥 먹는 거지.


그렇게 우리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린 알게 되었다.


그렇게 거리에 아무도 없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던 이유가, '설날'이어서 그랬던 거였다고.


중국은 음력설을 춘절이라고 부르는데 1년 중 가장 큰 휴일이다. 설 연휴 동안은 다들 고향에 내려가고 친척들을 만나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데, 이 때는 거의 모든 상점이 다 문을 닫고 대도시는 텅 비게 된다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춘절 기간에 중국에 도착했던 거였었다.


첫날, 다사다난한 중국 라이프의 서막이 올랐다.


카타르보다 더 버라이어티하고 더 짜릿했던 내 쑤저우 라이프...

이제 추억이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 쑤저우 라이프가 현재 진행형일 때는 정말 자주 울었기에... ㅎㅎㅎ


서핑하다 찾은 아파트 사진. 아마 처음 지어졌을 때인가 봄... 내가 갔을 땐 이것보다 훨씬 낡고 더러웠고 벽의 페인트는 다 일어나고 집안 곳곳이 곰팡이와 녹 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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