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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Jul 23. 2023

귀국한 지 4년, 아직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1. 냄새 편

8년 가까이 지낸 해외 생활을 드디어 끝내고 2019년 이맘때, 한국으로 귀국하고 4년이 흘렀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코로나가 터져서 전 세계가 락다운되어 멈춰 섰었고, 그 기간 정말 많은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출산해 그 딸이 만 2살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카타르, 호주, 중국에서 살았던 시간들이 생생히 기억나는 순간보다는 이제는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지고 옅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완전히 다시 한국인으로 돌아온 것 같으면서도 매일매일을 살아 내다보면, 내가 외국에서 오래 살았었구나 싶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찰나지만 또다시 굉장히 행복해진다.


내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특히 자주 행복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조금 웃길 수 있겠지만, '냄새'가 그중 하나다.




그 나라에 발을 디디면 제일 처음 만나는 곳이 공항이다. 

처음 들어서던 그 브리즈번 공항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외국의 향기. 


내가 맡았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그 냄새는.. 카펫 + 바닐라 + 소독약 + 정체를 알 수 없는 싸구려 향수를 모두 섞어 놓은 듯했다. 이 정체불명의 '외국 냄새'는, 호주에 있는 기간 내내 도서관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학교 건물에서도, 기차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났다. 특히 이 외국 냄새가 제일 많이 나던 곳은 퀸즐랜드 주립도서관 근처의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였다. 


이 냄새는 딱히 싫지는 않았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하던 그 설렘과 처음의 기억이어서 그럴까?


하지만 생활하면서 점점 더 많은 냄새, 태어나서 정말 처음 맡아보는 그런 냄새들에 맞닥뜨려야만 했는데, 어떤 냄새들은 정말 고역이 따로 없었다.


특히 트레인을 타거나 더운 여름날 버스를 타면 (원치 않는) 다양한 냄새의 뷔페를 즐길 수 있었는데,

특정 인종의 땀 냄새는 마치 더운 여름날 밖에 내놓은 홍어가 썩어가는 냄새 같았고, 백인들에게서는 꼬릿꼬릿한 치즈 냄새가 났다. 카레를 즐겨 먹는 나라 사람들에게서는 정말 그 카레 향신료 냄새가 진하게 났으며, 도대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상한 향신료 냄새가 진하게 나는 민족들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에게도 냄새가 난다는 걸.


멜번에 살 때, 남편은 매일 도시락을 갖고 출근했는데 하루는 김치볶음밥을 가지고 갔다. 호주에서는 도시락을 싸 줄 때 렌지 사용이 편리한 호주 마트에서 파는 데코어 컨테이너를 자주 사용했다. 


뚜껑에 증기배출구가 있어 렌지 사용이 편리함




남편의 김치볶음밥은 여기 얌전히 담긴 채 연구실 한 구석에 올려져 있었고 먹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다른 동료들이 무슨 일 때문에 남편의 연구실을 찾았고, 일이 끝났는데 떠나기 전에 냄새를 킁킁 맡으며 한다는 말이, 여기 무슨 시큼한.. 뭔가가 썩는 냄새가 난다며 이 냄새가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르겠다고, 너는 괜찮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매우 친한 동료들이었기 때문에 악의 있는 질문은 절대 아니었다.)


김치볶음밥 때문이라는 걸 생각도 못한 남편은, 게다가 평소에 냄새도 거의 못 맡는 편이라,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아 그런가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나중에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먹다가 문득 혹시 이것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게 되는데, 남편이 퇴근하기 전 연구실에 들른 다른 동료가 들어오자마자 또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ㅋㅋㅋㅋㅋㅋㅋ 아마 볶음밥을 렌지에 데워 연구실에서 먹은 후로 냄새가 더 강하게 퍼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날부터 남편은 김치볶음밥 도시락 손절을 선언했고, 

제육덮밥, 김치볶음밥, 새우볶음밥 등으로 도시락 메뉴를 돌려 막기하고 있었기에 내 입장에선 제일 만만한 도시락 메뉴 중 하나가 없어져 상당히 섭섭했다.




바로 그 해, 멜번에서 고향인 부산으로 홍콩을 경유해 도착했는데, 김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에게서.. 


정말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ㅜㅜ 


김해공항에 불어오는 습기 꿉꿉한 바람에서는 바닷가 해초 말리는 듯한 짠내가 났고, 사람들에게서는 진짜 분명히 마늘 냄새가 나고 있었다. 찧어 논 마늘이 약간 오래됐을 때 나는 그런 냄새..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한국인한테는 마늘 냄새가 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한국인만큼 냄새 안 나는 민족이 없는데... 이게 왠 헛소리?' 하며 생각하고 넘겼지만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마.늘. 냄새가 났다. 강력한 냄새였다. 왜 이때까진 맡아본 적이 없을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냄새는 강렬했다.


그리고 그 마늘 냄새는 그날 저녁, 곧바로 사라졌다. 

아니, 냄새가 사라진 게 아니고, 너무 익숙한 냄새라 더 이상 코에 감지되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낯선 향신료 향이 강렬하고도 좋지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냄새 또한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니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도 났다.


브리즈번 일식집에서 알바를 할 때, 주방 보조를 하던 벤 오빠는 여자친구 (국적은 기억 안 남, 외국인)가 김치 냄새를 너무 싫어해서 냉장고에도 김치를 두지 못하고, 물론 먹지도 못했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벤 오빠가 김치를 먹은 날이면 다음 날까지 김치 냄새가 온몸에 배어 있다고... 


그 오빠는 여자친구가 고국으로 돌아가면 그날부터 김치를 엄청나게 먹고 여자친구 귀국 이틀 전부터는 김치를 끊는다고 했었다.


그때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냉장고에 김치 냄새는 싫을 수 있지만 김치를 먹은 다음 날까지 김치냄새가 난다는 건 오바지

-벤 오빠는 눈치도 참 없나 보다, 여자친구가 마음이 떠나서 저런 걸로 트집인 것 같은데.  안타깝네.




다시 호주로 돌아가니 모든 음식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둘이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고 콜스나 울월스 (호주의 이마트)로 장을 보러 갈라치면 냄새가 풍길까 봐 차에 타기 전 여기저기 페브리즈를 뿌려댔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제육볶음, 닭도리탕, 떡볶이, 김치볶음밥 같은 이런 한국 음식들에 들어가는 마늘과 고춧가루의 냄새가,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체취처럼, 똑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악취로 인식될까 봐 두려웠다.


우리는 점점 더 빨간 음식과 마늘을 피하게 되었고,

결국 그러다 신라면도 매워서 못 먹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게 벌써 4년도 더 전의 이야기다.


이제는

우리는 냄새 감옥에서 탈출했다.


마음껏 된장과 청국장을 끓여 먹을 수 있고, 몸에 밴 김치냄새가 민폐가 되지 않고, 그 냄새들이 타인에게 불쾌한 기분을 줄까 봐 페브리즈를 뿌려대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하루종일 닭도리탕을 푹 끓여내었는데 온 집에 그 냄새가 퍼졌다.


호주 같았으면 집에 있는 옷들이나 가방 같은 내 물건들에 냄새가 배면 안 되니까 환기시켜야 한다며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여기저기 페브리즈를 뿌려대며 난리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남편의 도시락으로 그 요리를 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아무도 그 냄새를 낯설어하지 않는다.


불쾌한 타국의 악취 취급을 하지 않는다.


신나게 끓이고 또 끓이고,

냄새가 퍼지고 또 퍼지고,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품은 이 냄새가 참 즐거워지는 하루다.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소소하지만

소소하지만은 않은 그런 행복의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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