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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mp May 18. 2022

[영화] 휴고

마틴 스코세지

영화에 대한 별 정보는 없었는데 늘 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던 영화였다.

언뜻 본 시계탑 이미지가 좋았었다. 시계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빈티지한 시계 디자인을 보면 매우 관심이 간다.

새삼 깨달았는데 이거 스팀펑크에 대한 은유적 설정이 들어간 것 같다. 그래서 막연하면서도 좋아했었나.

기차역 시계탑안에 사는 소년이라니. 설정 자체가 이미 판타지였다. 게다가 이 소년 생김새도 판타지다.

한겨울에도 반바지만 입고 있는 모습이 고아같았는데 그래도 이름은 있길래 뭔 사연인가 싶게 만든다.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셨고 삼촌이라는 사람에 의해 시계탑에서 시계를 맞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조르주와의 만남은 어거지여서 신경이 쓰였다. 아니 좀 화가 났다.

다른 걸 훔쳤는데 아빠 유품인 애의 수첩은 왜 빼앗는거야 저 대머리 할배.

꽉 막히고 사람 열받게 하는 역할이라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가는데 이상하게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사람일 거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지만 이 인물과의 관계성이 약자한테 가혹하게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있고 그게 비논리적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나중엔, 많은 확률로 더 많은 걸 약자한테 안겨주는 선인이 되고는 한다.

고전설화 등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산신령이라던지. 그건 같은 인간이 아니라서 좀 화는 덜나고.

이런 관계 설정에 불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결국 널 돕거나 살리는건 나일테니 초면의 부당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보자 라는 사람을 시험하며 정신적으로 휘두르려는 듯한 태도가 베어있어 그런 도움은 치사하니까 그냥 때려치우고 도망가 버려라 하는 심정이 들기 때문이다. 엄마가 종종 그렇게 나올때 내가 패악을 부리는 것도 이와 비슷하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의 일대일 관계에 있어 주도권이나 기싸움 등을 하며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짓을 혐오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마주치는 관계에서 그렇게 나오지 않는 우위의 존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인간혐오에 큰 몫을 차지하기도 한다. -헌데 이런 관계가 아닌 그저 스쳐지나갈 사람이지만 지하철에서 내 발을 아무렇지 않게 밟으며 밀쳐대는 사람을 통해서도 앞서에 못지 않은 인간혐오를 느끼는데 어떤 게 더 혐오가 깊으며 인류애 상실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관계 설정에 있어서의 이런 비약이 서사에 꼭 필요한 걸까. 아니면 잘 못쓴걸까.

클로이 모레츠가 나오는지는 몰랐는데 귀엽게 등장한다. 연기하는 걸 처음봐서 그런지 연기자라는게 낯설었다. 우리나라에 자주 와서 얼굴과 이름을 안다지만 그조차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 보면 뭔가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알리는 일에 있어 운이 따르는 사람인 것 같다. 넓게 보면 도화살도 그런게 아닐까.

영화 내용은 초기 영화 창작자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어떤 길이든 처음을 간다는 게 쉽지 않다.

초석이 놓여있어 비로소 그 길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입장에서 왜 초창기 선배들이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비난을 서슴지 않고는 했는데  어리석은 오만함을 느끼게 해줘서 뭔가 배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런 처음을 밟는 길을 가지 않는 걸 다행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지금의 삶도 그만큼, 재미가 없기는 하다. 생동감도 없다. 요새 시대가 다 그런거 같다.

아, 지금 전례없는 역병의 시대를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어 초기처럼 겪어보고 있기는 하네.

기계인형을 두고 인물들의 서사를 연결시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엮어질수도 있네 싶고.

그런 관계 설정을 생각 못해본 만큼 내가 참 꽉 막힌 관계만을 허용하며 사는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다.

새삼 영화를 보겠다고 결심한 지점에서 초창기 영화에 대한 동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시각과 이야기를 보여준 영화를 보게 된 게 의미가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3D 영화인걸 몰랐다. 오히려 빈티지한 영화인줄. 눈이 있으나 없는건가.

이 영화 아카데미 상도 꽤 받았네. 어떤 상의 기준에는 안들어갈 거 같았는데? 머리 역시 있으나 없네.

원작이 독특한 동화라고 한다. 감독이 딸에게 읽어주었던 책을 영화화한 거라는데 동화책이..초창기 영화얘기를 담고 있다고?....

뭐 계속 쌓아만 둔 영화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무겁게 무게를 늘리던 영화였는데 봐버린 덕분에 좀 홀가분해졌다. 대체 왜? 숙제야??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갑자기 고아가 되어 고되게 살아가는 소년 휴고가 혼자만의 세상이자 기댈 곳인 시계탑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 있다.

온 세상이 기계라고 생각하면 그 안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도 분명 있을거라고.

여러가지로 울컥하게 하는 말이다. 아직은 돌봄이 필요한 존재인데 혼자 내던져진 세상에서 저런 태도와 생각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얘는 이미 사람이 됐다.

이미 부모 돌봄이 끝난 시점임에도 홀로 서지 않은채 왜 꼭 필요를 채우며 살아야 하나 하는 엄마 화병터지게 하는 생각이나 하고 빈둥거리는 사람에게는

뼈를 때릴만한 말이었으나...그러기엔 뼈가 너무 멀리 살에 묻혀있어서 뼈에 닿지도 못하고 금방 튕겨서 돌아가더라.

하긴 대놓고 뭐 때려줄만한 영화를 기다리는 건 아닌데. 어린 아이, 게다가 너무나 약자인 상황의 존재가 저런 말을 하면

울컥이라도 하는건 그나마 내가 인지상정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증거가 아닌가 거기에 만족하고 있다.

내용도 결말도 훈훈하고 따뜻한 영화인데 왜 분위기가 차갑게 느껴질까. 기차, 기계인형, 거대한 시계들, 영화소품들 그런 것들이 묘하게 아포칼립스적인 느낌이 난다. 다시 한 번 스팀펑크의 변형된 한 부분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고 봤다.

에이사 버터필드, 휴고 역할 배우 매우 잘 컸다. 최근에 오티스의 성상담소 인가 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거 같던데 얼굴보니 마의 16세를 이겨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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