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나 다이어트에 강박이 있는 사람은 몸매에 관한 이야기에 남들보다 더 신경을 쓸 것입니다. 어쩌면 그날 인사치레로 들은 몸에 관한 이야기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지도 모르죠.
살이 찌는 것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난 후로 저에게 몸에 관한 세상의 이야기는 무척 자극적이고 해로웠습니다. 지금도 마른 사람들을 선망하고 살찐 여자 연예인의 몸매가 개그와 농담의 소재가 되지만 당시에는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44 사이즈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여자 연예인의 실력보다도 마름 자체가 이슈가 되고 그것을 칭송을 하는 기사나 글들이 많았고, 누구는 44가 아니라 33이라더라 33.5라더라 하는 놀라움과 선망의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여리여리하고 싶다. 허벅지 반 떼어내고 싶다. 누구누구처럼 말라보고 싶다는 말들을 매일 친구들 사이에서, 인터넷 상에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44 사이즈에 관한 뉴스 기사를 지금 검색해보니 역시나 여자 연예인의 식단과 몸무게를 공개하며 마름을 칭찬하는 기사들이 많네요. 그리고 55 사이즈는 여자의 자존심, 44 사이즈 도전, 66 사이즈 고백이라는 각기 다른 기사의 제목도 볼 수 있었습니다.
44 사이즈는 도전해야 할 선망의 사이즈고 66 사이즈는 부끄러워 용기 내 고백해야 하는 사이즈인가요? 지금의 저는 각기 다른 몸을 몇 가지 사이즈로 나누고 좋네 나쁘네 한다는 것이 얼마나 웃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어찌 되었든 44 사이즈가 되고 싶었네요. 그리고 몇 달의 다이어트 끝에 44 사이즈가 되었습니다.
다이어트 끝에 42~3 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되었을 때, 저는 무척 불행했습니다.
이미 너무 말라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먹어도 그 몸무게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작은 요거트 하나를 먹을 때도 불안해했습니다. 영양과 지방이 부족해서 생리를 하지 않았고 매일 운동과 먹는 것을 조절하는 데 신경이 곤두서 있었죠.
그때 이미 거식증의 단계에 들어섰고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강박증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지만 저는 제가 정신병적인 상태에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마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극도의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게 비이성적이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건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들어 놓은 마름이라는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게 끔찍이 두려웠습니다. 완벽주의와 불안이 많은 성향의 사람이 더 식이장애에 빠질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제 마름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 병적인 고집을 더 단단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만나서 하는 인사로 너 살쪘다? 살 빠졌다? 요즘 살쪘어? 말랐어? 같은 인사를 들어보신 적 있을 것입니다.
당시의 저는 대학교 내에서 거의 매일 그런 인사를 들었습니다. 저에게만 특별히 하는 말이 아니고 그런 인사가 일상인 시절이었습니다. 보통 부럽다는 칭찬으로 이어지는 말이었지만, 식이장애 환자가 들어선 안 되는 칭찬이었습니다. 말랐다. 부럽다. 그 말이 저를 두렵게 했습니다. 살찌고 싶지 않다. 살찌는 게 무섭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울렸습니다.
식이장애 환자들은 몸에 관한 관심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일 타인이 인사말로 서로의 살을 점검해주는 사회에서 자신의 몸상태를 잊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인사는 제가 토를 하며 고통스럽게 말라갈 때도, 토를 하지 않기 위해 살을 찌우고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겨우 정신을 붙들고 치료를 하며 살이 찐 저에게 요즘 왜 이렇게 살쪘냐, 왜 이렇게 됐냐, 자기 관리 좀 해라. 하는 등의 말은 참 씁쓸하고 아픈 말이었습니다.
요즘에는 타인의 몸에 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을 많이들 자각하고 있지만 아직도 저도 가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인사로 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혼자 속으로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인사말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나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듣고 말하던 습관이 불쑥 나온 것입니다.
입 다물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타인의 몸에 관해 칭찬도 비판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품평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나도 모르게 물들어버립니다. 품평 속의 주인공이 되지도 품평하는 사람이 되지도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