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탐구
영어를 조금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핸드폰'이라는 단어가 영어에는 없는 국적 불명의 외래어라는 사실을 알기 마련이다. 영미권에서는 'Cellular phone' 내지는 'Mobile Phone' 등을 사용하거나 짧게는 Cellphone, Mobile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한편 Handphone이라는 단어는 사실 한국에서만 쓰는 단어는 아니라고 한다. 영문 Wiktionary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에서도 쓰이는 단어로 등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노트북이라는 단어는 어떨까? Notebook, 왠지 어감만 살펴보면 핸드폰처럼 한국에서의 사용에 국한된 콩글리시 계통의 단어일 것 같아 보일지 모른다. 랩탑(Laptop)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노트북은 엄연히 영미권에서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한편 노트북과 랩탑은 사실 미묘하게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부터 그 차이에 대해 잠시 고찰해보도록 하자.
온갖 잡다한 것들의 비교분석을 제공하는 Diffen이라는 사이트에 따르면, 랩탑 컴퓨터는 2에서 4 킬로그램 정도의 무게를 가진 휴대용 컴퓨터인 반면 노트북은 일부 기능을 포기하면서 무게를 줄이고 공책(notebook) 사이즈 정도로 만들어지는 휴대용 컴퓨터를 일컫는다. 그러나 세월에 따라 기술의 발전으로 둘 사이의 경계는 굉장히 모호해졌다. 휴대용 컴퓨터들은 데스크톱 컴퓨터들과 달리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무게를 줄이거나 두께를 줄이는 것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데, 애플과 같이 시장을 선도하는 컴퓨터 회사들은 모듈식으로 탈착 할 수 있는 CPU, GPU, RAM 같은 부품들을 모조리 메인보드(애플은 마더보드라고 칭함) 일체형으로 만들어버리고, 구형 하드디스크 대신 SSD 같은 플래시 메모리를 탑재해 비약적인 다이어트를 실현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쓰이지 않는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쉽게 말하면 CD를 읽는 드라이브)를 적출해버리고 두꺼운 USB-A 포트들은 USB-C로 대체되었으며, 랜선 포트를 제거하고 충전기 단자를 USB-C 포트로 일체화하고, 영상 출력을 위해 쓰이는 HDMI 포트 등을 생략하는 대신 USB-C에 miniDP 기능을 통합할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 결과 시장에서 팔리는 2,000 달러를 가볍게 넘어서는 고성능 랩탑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사실상 노트북과 같은 무게와 폼팩터를 가지게 되었다.
2008년, 애플은 맥북 에어라는 제품을 시장에 소개하며 잠잠했던 노트북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서류 봉투에 들어갈 정도로 얇은 노트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실제로 서류 봉투에서 맥북 에어를 꺼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식빵을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맥북 에어의 케이스는 흔히 말하는 '울트라북'의 상징이 되었다. 기존의 플래그쉽 고성능 컴퓨터와 비교해 성능적으로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는 이 노트북들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컴퓨터 회사들은 더욱 진보적인 제품을 출시하게 된다. 애플의 경우, 맥북 에어처럼 가벼운 케이스에 기존의 노트북보다 4배는 선명한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고해상도 랩탑을 시장에 출시했고 이후 구형 랩탑들이 줄줄이 퇴역하면서 애플의 모든 노트북 및 랩탑은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와 얇은 폼팩터로 통일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노트북과 랩탑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고, 가격대나 성능으로만 둘을 억지로 나눠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즉, 이제 노트북과 랩탑이라는 두 단어는 사실상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굳이 나누겠다면 저가형과 고급형으로 나누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다.
한편 데스크톱은 어떨까? 한국에서는 사실 데스크톱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혹은 'PC'라고 하면 데스크톱 컴퓨터를 일컫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탑재한 컴퓨터들은 대개 본체와 디스플레이가 분리된 형태를 취하지만 애플은 일반 사용자용으로는 본체와 디스플레이가 결합되어 있는 아이맥을 표준처럼 판매하고 있다. 보다 저렴한 맥 미니나 전문가용 맥 프로 제품군들은 별도의 본체를 가지지만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이 아이맥을 사용한다. 이 데스크톱 컴퓨터들은 문자 그대로 책상 위에서 쓰는 컴퓨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책상 위는 업무의 공간이다. 편안한 자세를 가지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개발되기 마련이다. 배터리가 아닌 외부 전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얇게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최대의 성능을 내기 위해 커다란 냉각 장치들을 탑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스크톱 컴퓨터들은 크기에 있어서도 노트북처럼 제한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크게는 32인치 대형 모니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요즘은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애플이 수년 전에 개발한 클램셸 모드인데, 노트북을 외장 디스플레이에 연결해 데스크톱 컴퓨터 본체처럼 사용하고, 이동 시에는 케이블을 분리해 노트북으로 사용하게 만든 것이다. 애플은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인텔과 협력하여 선더볼트라는 새로운 전송 규격을 만들어 고성능 디스플레이를 연결할 수 있게 하였고 선더볼트 3세대에 이르러서는 충전 기능까지 추가해 케이블 하나로 디스플레이를 연결하고 동시에 충전 역할도 수행하게끔 하였다. 클램셸 모드는 모든 애플 노트북 제품군의 기본 기능이 되었고 노트북 성능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일반적인 수준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를 책상에서 몰아낼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이제 사람들은 데스크톱 컴퓨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이 컴퓨터들은 직장이나 PC방에서나 볼 법한 컴퓨터가 되어버렸다. 물론 고사양 게임 등을 즐기거나 전문적인 그래픽 작업 등을 하는 사용자들은 여전히 데스크톱 컴퓨터를 필요로 하겠지만, 문서 작업이나 가벼운 사진 편집 등을 하는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데스크톱과 랩탑을 동시에 가지는 것은 어쩌면 불필요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커다란 데스크톱 본체 대신 적당한 가격의 모니터를 취향에 따라 구매해서 책상 위에 올려두면 그만이다.
노트북 사용자들은 흔히 노트북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사용한다. 그러나 노트북과 사실상 동의어가 되어버린 랩탑은 데스크톱과 달리 '무릎 위'를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책상 위, 카페 테이블 위 등 고정된 위치에서 사용한다. 노트북은 이동 중에 빠르게 업무를 재개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직업군을 위해 개발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본인의 메일을 읽고 문서를 작성해야 할 사람들을 위한 제품인 것이다. 즉, 장시간 책상 위에서의 사용을 위해서 개발된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데스크톱 컴퓨터가 있다. 사람들이 불필요한 이중 지출을 피하기 위해 데스크톱 컴퓨터를 구입하지 않게 되면서 그 역할을 노트북이 이어받았지만 정작 클램셸 모드를 이용하는 사람도 드문 것이 현실이다. 노트북을 장시간 사용하게 되면 이른바 거북목 현상이 발생해서 목과 상체에 큰 무리가 가게 된다. 안 그래도 무겁고 비대해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21세기 인류에게 이는 엄청난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데스크톱 컴퓨터를 따로 구입하거나 클램셸 모드를 이용해 데스크톱과 유사한 환경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노트북을 사용하는 환경은 편안한 의자나 소파에서 무릎 정도의 위치에 올려놓고 단기간 사용하는 환경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두고 사용하는 행위가 전자파로 인해 불임 등 질병을 야기할까 걱정하기도 하지만 호주 Cancer Council 등 복수의 출처에 따르면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고 한다.
노트북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쳐 랩탑과 통합되었고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 무겁고 번거로운 데스크톱을 책상에서마저 몰아내게 되었다. 그러나 노트북은 휴대용 컴퓨터라는 특징에서 볼 수 있듯 장시간의 고정된 위치에서의 사용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요즘은 노트북을 눈높이에 맞게 들어 올리는 거치대 등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다양한 선택지를 비교해가며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