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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Sep 11. 2023

팀장 같은 과장은 뭐죠?

이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땐 미처 몰랐지

파트타임으로는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영 마음에 꽂히지 않던 어느 날, 헤드헌터에게 해외지원팀 팀장으로 지원할 의향을 묻는 메일을 받았다. 제안하는 연봉의 숫자 또한 경력 단절 뽀개기를 결심하면서도 감히 욕심내보지 못한 숫자다. 작금의 초라한 숫자와 비교해 보니 심장이 두근 먼저 반응한다. 아니 그런데, 경단녀에게 팀장급 제안이라니.. 신종 사기인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제안 자체만으로도 금세 마음이 우쭐해졌다.  


“그래,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진위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메일에 이렇게 이리저리 마음 흔들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설사 된다 하더라도, 팀장 경력은 전무한데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맞을까? 싶은 염려가 밀려 들어왔다. 풀타임으로 삼성동 출퇴근이면 적어도 8시는 되어야 집에 올 수 있고, 팀장이라면 아무리 일을 타이트하게 쳐내더라도 야근은 피할 수 없을 텐데.. 나 도전해 봐도 되는 걸까? 남편과 맥주 한 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앞선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나 해볼까?"

"해봐, 일단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또 다른 회사 찾으면 되지."

"근데 영어 안 쓴 지도 오래됐고 팀장일은 해본 적도 없는데... 욕심만 갖고 도전할 일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만약 된다고 해도 제이를 어떻게 케어해야 할지 걱정도 되고..."

"흠...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또 이런 기회가 흔치는 않으니까 충분히 욕심 날 수 있을 거 같아. 일단은 이력서 내고 면접이라도 보고 오는 게 어때? 그다음 일은 면접 보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


설렘과 걱정이 뒤섞여 울렁이는 마음이었지만, 이력서를 보내 보기로 결정했다. 안되더라도 지금 다니고 있는 스타트업의 파트타임을 계속하면 되는 거고, 정규직 재취업을 향한 일말의 가능성 또한 확인했으니 나로선 잃을 게 없다. 


헤드헌터에게 나의 그 간의 경력과 단절 기간, 내가 우려하는 부분들에 대해 솔직하게 전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측에서도 괜찮다면 면접을 보고 싶다고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며칠 뒤, 면접을 보게 되었다. 


팀은 총 3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임 팀과장이 퇴직 수순을 밟고 있는 중이지만 후임자가 없어 현재 재택으로 업무 공백을 채우고 있어 막내 직원만 출근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랬기에 후임이 빨리 뽑혀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 이외에도 새로운 과장이 곧 합류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업무는 개개인이 각각의 어카운트를 할당받아 직접 진행하기 때문에 팀 차원의 프로젝트는 크게 없는 편이라 팀장 경력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다만, 경력 단절 기간에 대해서는 다소 걱정하는 듯했으나 다행히 사장님과 이사님 모두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선방은 했다는 생각에 이제 집에 돌아가서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생각하는 찰나, 두 분이 조심스레 서로 눈을 맞추더니 다른 면접자는 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내가 괜찮다면 바로 같이 일할 수 있겠냐고 제안을 했다. '맙소사! 이렇게 바로 합격이라고?!' 


그다음의 일을 계획할 틈도 없이 그렇게 면접 당일, 입사 날이 정해졌다. 연봉은 처음에 헤드헌터에게 제안받았던 숫자보다 낮아지기는 했지만, 회사 측에서도 단절 기간을 고려하여 3개월 정도 업무력을 지켜보고선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약 3주의 시간이 남았고, 그 사이 나는 파트타임 업무를 정리하고 부랴부랴 영어공부와 코칭 공부에 전념했다. 부족하고 어리숙한 팀장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준비를 했다. 그래도 미숙한 부분은 있겠지만, 그건 아이를 키워낸 엄마의 자신감으로 어떻게든 대처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이를 케어하는 일은 나보다 회사가 가까운 남편이 등하원과 저녁 준비를 담당하기로 하고, 일단 부딪혀보며 보완해야 할 점을 순차적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드디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삼성동으로 첫 출근을 하였다. 


그런데 뭔가 싸하다. 막내 직원이 나에게 무슨 직급으로 왔냐고 묻는 게 아니던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이사님을 찾아가니, 팀장은 따로 있고 내가 과장급으로 뽑혔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면접 때 그렇게 말했던 걸로 안다며, 사장님이랑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한다. 


솟구치는 불기둥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사장님실에 들어가 나의 입사 조건에 대해 물으니,  


"팀장급은 이미 뽑혔었고, 자네는 과장급으로 면접을 본 거였는데,, 허허 헤드헌터한테 안내 못 받았나? 중요한 건 우리가 자네의 기량을 좋게 평가하고 있고, 새로 오는 팀장도 나이대가 비슷한데 본인도 팀장 같은 과장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잘 협력해주었으면 하네!"


팀장 같은 과장은 뭐지? 신종 야바윈가? 


정규직을 향한 나의 순애보는 출근 첫날, 그렇게 농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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