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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Oct 16. 2023

뒷담화

나는 화가 꽤 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의, 때로는 바보같이 느껴지곤 했던 배려였지만 계속 베풀 수 있었던 건 호의의 카펫 위에 다소곳이 마주 앉아 정다운 마음을 나누기로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종이 위에 서로 지켜야 할 검은 조항들을 나열하고 서명본을 나눠 가질 필요 없이 무언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신뢰가 쌓였다고 말이다. 순리에 맞게 여러 삶의 단계를 거쳐오며 사람 보는 눈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좀 더 깊어졌다고 생각한 나는 예측할 수 없는 경우의 수를 피해 갈 수 있을 정도의 안전장치는 준비되었다고 자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사람의 마음이란 연약한 돌부리에도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었고, 균형을 잡으려 애쓰던 마음의 추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곤 각자가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배려가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상대를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겨누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여전히 나는 나의 편에 서서 내가 맞고 옳았다며 나를 있는 힘껏 껴안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기 방어는 지속력이 그리 길지 않아 결국 자기 의심에 발목 잡히고 만다. 이내 내 행동의 결괏값에 대해 갈팡질팡하며 다시금 사건의 원점으로 돌아온다. 주관성으로 뒤범벅이 된 사건 안에서 애써 객관성을 골라내 그 판에서 완벽하게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 제삼자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겨서 얻는 건 무엇일까. 문제의 원인에서 결백함을 증명해 낸 후 얻게 되는 명예 회복? 누구로부터의? 내 삶의 방식은 틀리지 않았다는 가냘픈 확신에 힘을 얹는 것? 그런 다음엔? 과연 말끔한 마음으로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걸까?


애초에 완전한 승자와 패자는 없겠지. 다만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이라 생각한 행동을 했고 어쩌다 갈길 잃은 불운의 힘이 끼어들어 우리를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간 건 아니었을까. 이겼다 한들 배반의 내상은 여전히 남아 있고, 졌다 한들 부글부글 타오르는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테니. 


그저 나에게 공감해 줄 수 있는 이와 아픈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 물고 뜯고 씹으며 가장 작은 가루로 분쇄해 천천히 삼켜버리는 수밖에. 마음에 난 스크래치로도 충분하니 목구멍으로 넘길 땐 걸리는 조각이 단 하나도 남지 않도록 원 없이 잘근잘근 씹어버리자. 필요하다면 집요한 확대 해석이라는 합성착향료까지 가미해 넘기기 좋은 맛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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