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아기 하루에 이유식 몇 g 먹여요? 낮잠은 몇 번씩 재워요?"
"음, 글쎄…. 먹고 싶어 하는 만큼…? 잠은 졸려 할 때 재워서 잘 모르겠네?"
"와, 언니 쿨하다. 나는 책에 나온 대로 아기가 먹고 자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언니가 부러워요."
요즘 나는 '쿨한 엄마'라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 가끔은 나 스스로가 너무 아기에게 무심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쿨한 엄마 소리를 들으니 괜히 어깨가 들썩였다. 내가 쿨하다니!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 역시 남과 다를 바 없는 다소 유난스러운(?) 엄마였다. 아기 밥을 먹일 때마다 g을 재고, 수면 시간을 체크하고, 대변 시간까지 메모해두곤 했다. 유난을 떨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내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나이 또래 아기들이 얼마나 자고 얼마나 먹고 또 얼마나 싸는지를 숙지하고 내 아이가 월령에 걸맞은 루틴을 잘 따라가고 있다고 판단이 돼야 마음이 놓였다. 아기의 잠 시간이 평소와 다르거나 칭얼거림이 심해지면 '원더윅스(Wonder weeks)'가 찾아온 것은 아닌지 찾아보기 바빴다. 원더윅스는 아기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울고 보채는 과정에서 부모를 가장 힘들게 하는 때를 말한다. 이제와 돌아보니 원더윅스는 생후 20개월 동안 간헐적으로 2~3주씩 10번, 기간으로 따지면 거의 6개월이나 되므로 뭔가 아이가 이상할 때마다 원더윅스를 검색하면 대부분 들어맞았던 것 같다.(하하) 이외에도 온갖 검색창에 아이 발달단계를 검색해보고 거기에 맞게 아이가 자라고 있는지를 체크했다. 언제쯤 뒤집어야 하는지, 누구는 기는데 왜 내 아이는 아직 기지 않는지 걱정이 됐다. 책에서는 분명 아이를 눕혀 재우라는데, 왜 내 아기는 돌이 지나도 내 품에 안겨서만 잠을 자는지, 도대체 수면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나 싶어 밤새 육아 카페를 뒤적이던 때도 있었다.
이랬던 내가 급작스럽게 쿨하면서도 무던한 엄마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둘째를 낳고 나서다. 의도적으로 변하려 노력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의 저자인 정우열 정신과전문의도 아이 둘을 키우면 하나를 키울 때보다 8배 이상 힘들다고 했다. 나는 20배쯤 힘들다고 생각 중이다.(!!)
한 번에 여러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다 보니 눈앞에 닥친 일만 신경을 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특히 보호자가 나 하나일 때는 전쟁 그 자체였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만 아이가 둘일 때는 한 아이를 재우는 중에 다른 아이가 응가를 한다. 이 아이를 씻기러 가기 위해서는 졸려서 칭얼대는 아이를 그대로 두고 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울다가 지쳐 스스로 잠이 들 때도 있다. 어, 이게 안고 재우지 않고 눕혀 자도록 유도하는 수면 교육인가? 참 신기한 노릇이다. 나는 유도도 교육도 하지 않았는데, 상황이 그냥 그렇게 됐을 뿐인데…. 내가 첫째를 낳아 길렀을 때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이 둘째에게는 실천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이뤄지고 있다. 아이 울음소리에 덜 예민해졌고(바로 달래줄 수 있는 때가 거의 없으므로), 아이의 식사량이나 수면량은 거의 체크하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나의 둘째는 바람직하게 또래의 성장에 맞춰 잘 커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내가 다시 첫째만 키우던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첫째를 이렇게 쿨하게 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쿨함은 그저 상황이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비슷한 과정을 지나오며 축적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밤마다 팔이 떨어져라 아이를 안고 재우고 달래면서 '당장 아이를 눕혀 재우지 않으면 안 돼'라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첫째를 키우며 아무리 안겨서 자는 아기도 언젠가는 누워서 자게 되고, 생각보다 이 시기는 빨리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미니멀 육아의 행복' 저자 크리스틴 고와 아샤 돈페스트 역시 둘째를 낳고 나서야 '느긋하게 아이를 키우는 법'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엄마가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아기는 스스로 행복을 느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돌봐야 할 아이가 둘로 늘어났다는 엄연한 사실은 그대로이므로 이 엄마들은 둘째에게 스스로 집을 탐험하며 여러 가지 물건을 탐험하도록 부추겼다고 한다.
나 역시 아이가 위험한 물건을 만지지 못하도록 거실에 울타리를 치는 대신, 둘째가 온 집 안 서랍을 자유롭게 열 수 있게끔 했다. 다치지 않도록 애를 써도 물론 가끔은 손가락을 찧곤 하지만(미안하다!) 그래도 나의 둘째 역시 스스로 노는 법을 첫째보다 훨씬 빨리 익히고 있다.
전문가의 말도 한마디 전해본다. 정우열 의사는 육아에 필요한 건 엄마와 아이 간 '균형'이며, 이를 위해서는 엄마가 스스로 전투태세(육아는 전쟁이니까!)를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슈퍼맘에 대한 환상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포기할 건 포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변에 아기 셋 혹은 넷 이상을 키우는 육아 선배들에 비하면 나 역시 여전히 육아 하수다.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최대한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으라고, 조금 더 마음을 편하게 먹어보라고 조언하기도 미안하다. 내가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을 누군가에게 부추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둘째 생기면 쿨해져." 하.하.하. 둘째를 낳고 깨달을 마음이 없다면 '아이는 때 되면 다 큰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