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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Oct 08. 2021

감정에도 미니멀이 필요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올해 나의 봄이 딱 그랬다.


물론 나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봄이 그랬겠지만 말이다. 코로나19가 덮쳐 모두가 관계의 문을 닫아버린 시기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를 하며 입학하기로 되어 있던 어린이집은 무기한 휴원에 들어갔고, 2년간 정이 들었던 베이비시터 선생님과도 작별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왜 남편의 회사는 재택근무를 하라는 소리 한 마디가 없는지. 이 와중에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껴야 하는 엄마가 나 혼자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정말 괴롭고 힘든 나날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복직을 앞둔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과정인 '시터 채용'을 강행하다 보니 괴로움은 극에 달했다.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 시터 채용을 조금 더 늦출까도 싶었지만, 과거에 시터 채용에 실패해 복직 전날이 되어서야 겨우 사람을 구했던 경험이 있어 이번만큼은 여유롭게 구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면접 10번 본다고 마음 먹으면 좋은 사람은 있더라고요. 힘내요." 채용 소식을 들은 워킹맘 동지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면접을 10번 보겠다는 각오는 했으나 사실 정말 면접을 10번 이상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꼬박 3주간, 50여 명의 연락을 받고 그중 30여 명과의 전화면접을 거쳤다. 10명의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채용이 어그러지는 경험만 네 번을 겪었다. 아직 어리기만 한 두 아기를 맡겨야 하는 엄마는 사람을 고르고 또 고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베이비시터 시장이므로, 시터들 역시 조금더 가까운 가정, 조금 더 일하기 편한 가정을 고르고 골랐다.


오랜 시간 동안 전화 면접을 거쳐 채용을 위한 대면 약속을 잡았다가도, 미팅 당일날 '다른 곳에 출근하게 되었다'는 문자가 오길 여러 번이다. 차라리 이런 경우는 다행이지, 웃으며 통화를 마치고 대면면접을 보기로 한 당일에 '생각해보니 너무 출근하기에 거리가 멀다'는 문자를 받고 손에 힘이 풀린 적도 있다. 면접을 보고 다음날 출근하기로 한 시터가 갑작스럽게 당일 아침 '가족이 반대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잠적해 버린 경우도 있었다. 한 시터에게는 '양심고백'을 받은 적도 있다. "사실은 자격증 공부를 위해 3개월 정도만 일할 곳을 찾았는데, 아기엄마와 아기들을 보니 차마 그렇게 하면 안될 것 같아서 솔직히 말씀을 드린다." 면접날, 오래 오래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약속을 거듭한 후 였다.


아, 이곳은 상식도, 예의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구나. 분노에 치가 떨렸다. 그러던 어느 날, 번번히 채용 실패를 겪다 보니 나와 우리 가정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점차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인상이 좋지 않은가, 아니면 우리 아기들이 너무 어려서 다들 꺼리는 걸까. 내 아이들이 사람들이 보기에 유난스러운가. 이러다가 복직 직전까지 또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할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어느 날에는 한 끼도 입에 댈 수 없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이 식사를 권해 한 입 겨우 밥을 씹어 삼켰다가 모조리 토하고 말았다. 내 생각보다 나는 더 만신창이었다.



"그냥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야. 제발 앞서나가지 말고 털어버려.생각을 멈추라고." 보다 못한 엄마가 쓴 소리를 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춰야 했다. 굳이 나와 인연이 아닌 사람들 때문에 분노하고 괴로워 할 필요가 없었다. '화내지 않는 연습'의 저자 고이케 류노스케는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화를 내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새롭게 편집하고 해석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분노가 유발되고 이 분노는 삶을 지배하며 행복을 방해한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규칙'이 필요하다는 게 고이케 류노스케의 말이다.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도전하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와도 맞닿아 있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라이프란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물건을 남기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비우는 것. 새로 무언가를 자꾸만 사려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물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지금 필요한 정보를 제외한 불필요한 정보들은 털어내는 것. 여기에 불필요한 감정들이 나의 '지금'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 역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과정이 아닐까.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한다고 하면서 의도적으로 물건을 비우고 줄이는 연습은 했지만, 꼬리를 무는 감정을 쳐내는 것에도 의도(고이케 류노스케의 말로는 '규칙')가 필요하다는 데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물건이 가득한 공간이 주는 갑갑함보다 정리되지 않은, 불필요한 생각들이 가지고 오는 불쾌함이 훨씬 더 클 텐데도 말이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의 저자 어니 젤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4%만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라고 말했다. 걱정의 40%는 일어나지 않을 사건,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 22%는 사소한 사건에 대한 걱정이라는 것이다. 걱정뿐 아니라 우리가 겪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자, 이제는 감정 미니멀라이프에도 도전해야겠다. 나 스스로가 내 행복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아,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아직도 멀고 멀었다. 하지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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