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그간에도 페북으로 끄적이던 적은 몇번 있었습니다만, 페북이란게 조금 많은 내용을 담을라치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붙이기도 어렵고 읽기도 꽤 힘들어서 이번에 쓸 내용을 좀 적다보니 내용이 페북수준은 넘을 듯 해서 얼른 내친김에 브런치로 와서 쓰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오래살다보니 그저 일어나는 주위 얘기들을 해도 일본편을 든다던가, 오래살더니 일본사람 다됐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듣습니다만, (꽤 옛날에 썼던) 책에도 적었듯이 이제는 한일 양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세계속에 한국, 세계속에 일본을 바라보는 다자적인 시각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오늘 적은 글도 혹은 첨부할 동영상도 일본쪽에 유리한 시각으로 얘기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쉬울듯은 합니다만 두나라의 오래된 오해를 푸는 것이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두나라 모두 귀중한 고객이 있는 처지의 인간으로써의 도리라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해봅니다.
일본은 입금이 참 끔찍하게 안오르는 나라입니다. 1990년에 425만엔이었던 연봉이 2019년에도 436만엔 입니다. 뭐 거의 비슷하다는 얘기죠. 제가 대학졸업하고 1997년 삼성물산에 처음 입사했을때 연봉이 1750만원이었습니다만 지금 삼성신입사원 연봉이 4000만원 정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보면 기절초풍할 인상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2배가 넘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대학시절이었던 1993년에 일본유학을 왔었더랬습니다. 그때 자판기 캔커피가 100엔이었는데, 코로나 바로전에도 100엔이었습니다. 무려 30년동안 임금이 오르지 않는데 이 나라 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물가도 같이 안오르니까 소득이 낮아진다는 체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불평을 별로 할 필요가 없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서민들이 미래의 계획을 세우기가 수월해집니다. 일확천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차곡차곡 저축해서 자산을 조금씩 늘려가면 넣어놓았던 연금과 대출이 끝난 집이 남는 풍요로운 노후가 보장될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게되지요. 저만해도 어쩌다 한국에 출장을 들어가면 아파트투자를 해서 3년만에 2배를 벌었다던지, 주식투자를 해서 자산이 3배가 되었다던지, 다니던 회사가 유니콘이 되서 몇조가치를 인정받아 본인의 지분이 몇십억이 되었다던지 하는 얘기를 제법 쉽게 듣습니다. 얘기들이 너무 어마어마 으리으리해서 벌렁벌렁하는 가슴을 주체할수가 없게되죠. 다들 부자들이 되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이웃나라에서 쬐끄만 중소기업을 하는 저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나는 뭐지라는 자괴감에 빠질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으로 돌아오면 다같이 같은 보폭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는 모습에 안도감까지 느끼게되는 자신을 보게됩니다. 이 나라는 그런 나라입니다. 다이나믹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수가 없는 (항간에는 죽은 나라라고도 표현을 합니다만) 심심한 서민의 나라지요.
그런데 요즘 이 일본이 (아마 어쩔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물가가 엄청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2011년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때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는 피폭국가가 되고나서 일본의 모든 원전가동을 중지시키는 바람에 석탄,석유,천연가스를 어마어마하게 수입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돌리는 에너지원의 가격이 폭등하니 돌아가는 세상의 모든 가격들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입에 의존하던 모든 물건들이 다 가격이 올라가게되었지요. 30년동안 캔커피가격이 꿈쩍 않던 일본이어서 생필품의 가격인상에 대한 재미있는(어쩌면 좀 웃픈)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일본에는 국민 아이스바,생긴걸로 봐서는 "아이스케키"라고 부르면 좋을 얼음과자가 있습니다. 바로 아카기유업의 가리가리쿤 이라는 아이스바인데요. 일본 어느 편의점 냉장고에도 가장 좋은 위치에 놓여있어서 아마 일본관광을 오셔서 많이 보셨을거라고 생각이 됩니다만, 이 가리가리쿤은 이른바 가장 싼 가격의 아이스바로도 유명한데 그도 그럴것이 1991년부터 무려 25년동안 60엔이라는 압도적인 저렴함을 유지했었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오르지 않는 초등학생도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아이스바 라는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 기업이 피나는 노력을 한 증거지요.
그런데 최근에 가격을 연거푸 올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25년을 지켰던 가격이 3년사이에 연속으로 올랐습니다만 앞서 웃픈이라고 표현했던 부분이 여기서 나옵니다. 아이스바 자체를 만드는 공정은 자동화 효율화로 원가를 최대한 억제하는 수많은 노력을 통해서 가격을 유지할수가 있는데, 바로 저 사진의 나무막대를 중국에서 수입해야해서 관련가격의 폭등으로 인상을 해야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에너지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것이 비싸지는 것이지요. 덕분에 일본 무역적자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무려 12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발생합니다. 언뜻 일본은 무역흑자로 돈을 버는 나라라는 인상이 강하고 실제로도 그런 나라 였습니다만 올라가는 세계적인 물가폭등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거지요.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22061661541
(기사가 5월에 씌여져서 10개월 연속이지만 7월현재 12개월 연속 적자로 달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최근에 코로나에 우크라이나전쟁에 각국의 자국이기주의에 달러가치가 폭등하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예외가 아닙니다만 한국에서는 연일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선진국 일본도 엔저에 휘청거리고 금새라도 엔이 종이조가리가 될거 같은 불안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무역도 계속 적자라고 하고, 엔화의 가치는 곤두박질 치고 30년간 안올랐던 물가가 막 올라가고 서민들은 급여가 안올라 상대적인 빈곤감에 치덕이는 이 나라는 누가봐도 곧 망할지도 모르는 나라로 보일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위기를 겪을때 한국에서 늘 듣던 얘기인 외환보유고에 대한 걱정은 이 나라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대외수지는 완전히 흑자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대외채권국(즉, 다른나라에 꿔준돈이 훨씬 많은 나라)으로는 세계 1위이고 (2위는 독일) 꿔준돈이 많으니 돌아오는 이자도 많습니다. 이 이자가 전부 달러이자니 역대최고의 대외수지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줄어드는 달러보다 늘어나는 달러가 더 많은 구조입니다. 그 늘어나는 달러가 계속 가치가 올라갑니다. 게다가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과 달러스왑이 걸려 있는 관계로 외환보유고가 줄어서 나라가 망할일은 없다고 보는게 맞는 셈이지요. 심지어 여전히 제조업베이스의 나라여서 한국과 많은 경쟁을 하고 있는 분야의 수출경쟁력이 저절로 늘어나게 되는 상황인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일단 나라는 점점 부자가 됩니다. 기업들도 부자가 됩니다. 외환보유고도 기업의 유보금 (무려 5000조원)도 늘어납니다. 그래서 일본은행총재는 애써 무리하게 환율방어를 할려고 하지 않고, 우리는 방법이 없다고 시장에 맡기겠다고 손까지 들어버립니다.
결국 국민들만 너무 힘듭니다. 그런데 제가 그냥 제 주위의 직원들을 보면서 느끼는 겁니다만 다들 그렇게 괴롭거나 하는 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불안"해 하지는 않는듯 합니다. 안분지족의 소승불교의 영향을 받는 나라여서 일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평화로웠던 이 나라에서도 흔히 일컬어지는 오랫동안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서 생기게 되었다는 평화바보(헤이와보케_平和ボケ)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단 한가지, 이 나라는 현재 대한민국이 겪는 위기의 격량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깊숙히 빠져 있지는 않는 듯 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렇게 대책없고 만만한 나라는 아니라는 것도 명확한 듯 합니다. 생각보다 탄탄하게 그리고 덤덤하게 누가뭐라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이 옆나라를 너무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ㅎㅎㅎㅎ
조금 더 잘 그리고 천천히 살펴보고 우리도 좀더 탄탄하게 내실을 다져야할 시간이 돌아온듯 하다고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회사를 하는 사람으로써 외부환경이 이렇게 변해가면 정말 지금까지 쌓아왔던 수많은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매일입니다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사람사는게 다 그런걸.
(제가 즐겨보는 유튜브채널인 박가네의 영상을 마지막으로 첨부합니다. 내용이 깊이가 많이 있지는 않지만 아주 쉽게 많은 얘기들을 풀어주는 얘기꾼 부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