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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Feb 21. 2021

읽그 58. <화성연대기>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몇 달 전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을 걷고 있을 때 유난히 밝은 별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후, 또는 일주일 후 딱 그만큼 밝게 빛나는 별을 비슷한 위치에서 발견했다. 길 건너편 아파트의 꼭대기에 거의 닿을락말락했다. 그때 지나가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렇게 밝아?"

"...가 제일 밝게 보일 때래."


사실 나도 언뜻 보고 헬리콥터가 아닌가 싶어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어쨌든 지나가는 목소리에서 주어를 듣지 못했고, 가서 묻는 대신 별자리 지도 앱을 깔았다. 사람을 능동적으로 만들려면 딱 하나만 하면 된다. 궁금해 안달나게 하는 것.


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알고 보니 화성이었다. 화성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뭘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아레스의 별, 집념의 화신이자 감자 농사의 달인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마션>, 불과 며칠 전에 본 5번째 미국 탐사 로버의 화성 착륙 소식. 이 이동형 탐사 로봇은 최초로 화성 표면의 토양을 채집해 돌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화성과 지구 사이의 전쟁, 침공과 약탈 등을 다룬 많은 대중문화 작품. 내가 아는 #화성 리스트에 이제 이 책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화성연대기>.




느슨하고 자유롭게

화성에 외계 종족이 산다. 이 설정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익숙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의 구성은 꽤 낯설었다. 최근에 재미있게 본 SF작품들은 장르를 떠나 중심 사건과 중심인물을 토대로 비교적 응집력 있는 전개 방식을 보여줬다. 책도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속도감과 긴장감, 클라이맥스의 폭발력이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연대기'라는 말처럼 시간적 순서를 따라가지만, 사건 사이의 관계가 매우 느슨하다. 28개의 서로 다른 단편이 얼기설기 모여 하나의 큰 줄거리를 구성하는 픽스 업(fix-up) 소설이다. 화성을 주제로 "문득 떠오른 생각을, 긴 밤의 환상을, 동트기 전의 몽롱한 꿈을 글로 옮겼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작품들의 타임라인은 1999년 1월부터 2026년 8월이다. 아니, 엄청난 파국을 보여주는 마지막 단편의 배경이 겨우 5년밖에 남지 않았다니. SF소설의 연대 설정은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임의로 설정하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는다. 그래도 왠지 2026년이 되면 기분이 묘하겠지. 2020이 되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화성이 푸른 별이라니

외계인에 대한 기존 관념이 있으니 작품에서 묘사하는 화성인의 스펙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먼저 화성인의 외모. 갈색 피부에 노란 눈, 6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곤충이나 심해 동물을 연상케 하는 영화의 이미지만큼 외양이 극적으로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정신감응이라는 능력으로 지구인의 생각을 읽고 조종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감각을 왜곡하는 초현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자연물의 외형을 딴 정교한 기계 장치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고도의 기술 문명을 발달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성인들은 완전한 악당이나 선인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지구인과 닮았다. 단순히 텔레파시로 생각을 읽어내는 것을 넘어 지구인을 농락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모습에서는 교활함과 악의도 엿보인다. 광활한 우주를 건너 의기양양하게 도착한 다음, 화성인들의 인정에 목매는 첫 번째 지구 원정대의 모습이 순진해 보일 정도다. 또 다른 화성인 종족 하나는 푸른빛을 내는 구체로 묘사되는데, 육체의 자유를 찾은, 좀 더 초월적인 존재로 보인다.  


작품에서 묘사하는 화성의 정경또한 상투적이지 않다. 흔히 화성을 붉은 별이라고 한다. 이 책의 표지에도 빨갛게 불타오르는 화성이 그려져 있긴 하지만, 작품에서 그리는 화성은 푸른 별이다. 푸른 산과 언덕, 바다가 말라붙은 노란 사막이 화성의 표면을 뒤덮고 있다.



데칼코마니 또는 새로운 미래

화성에 대한 세부 묘사보다는 앞서 말한 구성의 차이가 내게는 더 와 닿았다. 절정을 향해 치닫는 작품이 아니었고, 당연히 작품마다 주제 의식과 깊이는 서로 다르다. 치열한 종교 논쟁에서부터 에드거 앨런 포의 찐팬 이야기까지,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또, SF소설인만큼 과학적인 성취를 언급하지만, 기술 문명의 발달에 의지해 이야기를 이끌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차별점 중 하나다. 이야기를 이해하는 장벽이 낮아졌다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고, 당시의 과학기술에 얽매였다면 상상력이 제한되어 오히려 빠르게 낡아버리는 작품이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 문명의 발달과 감성의 절묘한 조합을 SF작품의 평가기준으로 삼는다면, 과감한 생략에 아마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화성이 아니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설정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설명하지 않는 이야기들은 충분히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다웠다. 특히 아들을 잃고 화성으로 이주한 부부의 에피소드는 기묘하게 아름답고 슬펐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해지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보편적인 마음에 단지 외계인이라는 터치를 더했을 뿐이다.


결국 작가는 화성의 배경을 빌려 지구, 지구인의 이야기를 한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핵무기의 위력, 인종차별, 문화와 지성에 대한 억압, 환경파괴 등 자신이 보고 들은 것으로 이야기의 뼈대를 지었다. 지구에서 현대판 분서갱유를 겪고 화성에서 복수를 꿈꾸는 사람, 서로서로 도와가며 지구를 탈출하는 흑인들이 등장한다. 화성에 얼굴을 비춰보는 작품 전체의 결말은 화성에 지구의 현재와 미래를 투영한다는 상징성을 볼때 꽤나 의미심장하다.


그나저나 앞서 말한 에드거 앨런 포의 찐팬과 현대판 분서갱유를 겪은 사람은 동일한 인물이다. 포의 팬이 화성에서 계획한 복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덧붙이는 이야기. 화성은 태양과 지구, 화성이 일직선이 될 때 가장 밝게 빛난단다. 이 충(opposition)은 26개월마다 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몇 달 전에 봤던 밝은 화성을 보려면 2035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됐다. 얼마 안 남았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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