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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Mar 16. 2021

읽그61. <밤의 행방>

안보윤 지음 / (주)자음과모음

읽고 그리는 하루, 61번째_소설 <밤의 행방>(안보윤/ (주)자음과모음)




할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여름밤이었고, 휴가 중인 부모님과 여행지에 있었다.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듣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출발했다. 차 안에서 멀미인지 체기인지 모를 답답함에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가로등도 몇 안 되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되짚었고, 고속도로에 접어든 다음에는 쭉 내달렸다. 엄마와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아빠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그 새벽에 돌아가셨다.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최초의 기억이다. 자라면서 또 다른 이별을 경험했고, 가까운 사람이 이별을 경험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죽음은 뜻밖의 장소와 시간에 찾아오며, 사랑하는 이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힘들지만 작별의 순간을 가지는 것 또한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축복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결국 떠나보내는 방법 역시 배워야 한다는 것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 동시에 자연스러운 과정이기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


 어른이 되어가며 죽음의  다른 모습에 대해서도 눈을 떴다. '만들어진 죽음'. 인간의 수많은 결점,  탐욕, 부주의, 나태로 발생하는, 소위 '인재(人災)'라고 불리는 죽음에 대해. 올림픽, 불량식품  같은 시기, 같은 땅에 살아온 우리에게 남아있는 공통 기억에는 이름만 다른 '참사' 또한 있다. 참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막을  있었던 안타까운 사고들의 목록이 머릿속에 줄지어 지나간다.




소설 <밤의 행방>은 '피할 수 없다'는 죽음의 일반적인 속성 속에서 만들어진, 그래서 피할 수도 있었을 죽음을 체로 걸러내 보여준다. 죽음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나뭇가지 '반'의 존재가 이야기에 환상성을 더한다. 반의 파트너로 낙점된 사람은 무속인 누나의 집에 사는 주인공 남자다. 가족을 잃고 자신에게 벌을 주듯 길 위를 헤매던 남자는 죽음을 보는 '반'과 함께 지내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선녀님'으로 불리게 된다.


죽음을 보는 '선녀'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남자를 찾아온다. 잃어버린 딸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부모, 수학여행에 다녀오는 동안 혹시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을까 걱정하는 학생, 자신이 품고 있는 살의가 스스로 두려운 직장인, 정의롭던 동생이 결국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궁금한 언니.


만들어진 죽음. 인간이 창조해낸 죽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인간의 탐욕이, 이기심이 발현되는 지점에 죽음의 씨앗이 뿌려진다. (p.219)


갖가지 사연에서 그들이 마주한 죽음, ''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죽어서야 다시 만날  있다는 아이러니와 죽음의 불예측성은 애달프다. 그리고 갖가지 죽음들 속에서 '인재' 고개를 자주 내민다는 사실은 아프고 서글프다. 작가의 말에 있는 표현처럼 그런 이별은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른 방식으로 상처'게 한다.


작가는 소설을 구상할 때 '만들어진 죽음'을 다루려 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1999년 6월 30일 발생했던 사건이 어린 그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사건을 적어도 다섯 개는 댈 수 있다고 썼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 죽음들 앞에서 떳떳해질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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