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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Apr 25. 2021

읽그 66.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중요한 건 진심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가끔 이 말에 동의한다. 틀린 말이 아닌데 왜 가끔 동의하는 걸까. 진심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믿음을 재확인하고 강화하기보다 변명이나 상처 입은 마음을 토닥이는 목적으로 저 말을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함께 쓰이는 연결어는 '역시'가 아니라 '그래도'인 경우가 많다. '역시 중요한 건 진심이지'가 아니라 '그래도 중요한 건 진심이야', 이렇게.


좋은 의도를 전달하는 데 실패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상황에 따라 원인은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듣는 사람이 마음을 아예 닫았다는 등 내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수밖에 없는 필패의 상황 말이다. 어떤 효과를 의도했으나 실패했을 경우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건 일단 최선을 다했는지의 여부다. 이때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내가 그 순간 얼마나 진심이었는지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 말과 행동이 진심을 전달하기에 적합한지다. 즉, 진심이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느냐다.


이제 생각하게 되는 건 언행일치의 문제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장님이 사내 따돌림을 조장하거나, 친구가 누군가를 위해주는 척 그 사람의 비밀을 뒤에서 까발리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도는 이야기 중에 아는 오빠인지 아는 언니가 면접장에서 절약을 생활신조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하고 면접장을 나설 때 자신도 모르게 방의 스위치를 꺼서 합격했더라는 카더라가 있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은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점을 되새기게 된다.



이 책의 간결함을 칭찬하기 위해 몇 문단을 허비했다. 책의 간결함과는 거리가 먼 소개 방식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구를 위한 간소함은 저자인 타일러 라쉬가 반복적으로 본문에서 강조하는 바다. 그는 책의 만듦새를 통해 그 말을 지켰다. 이 책에는 생략이 많다. 불필요한 잉크 사용이 없고, 띠지가 없다. 저자와 출판사는 환경을 가장 덜 훼손하는 책을 제작하기 위해 FSC 인증 종이를 사용해 친환경 콩기름 잉크로 인쇄했다. FSC 인증은 산림자원 보존과 환경 보호를 위한 친환경 국제 인증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JTBC <비정상회담> 출연 당시 숱한 출간 요청을 받았지만, FSC용지 사용을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아쉬움을 적는다.


지금 당장은 더 불편하고, 제작비가 더 드는 방식이지만 이런 게 미래를 위한 현재의 최선 아닐까. 환경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들며 환경에 가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힘썼다는 이야기를 서두에서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면접관의 마음이 되어버렸다. 불을 꺼버린 지원자에게 달려가 합격입니다, 하고 사원증을 목에 걸어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 독자 역시 작은 불편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쳐 들었으니까.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까. 분리수거를 지금처럼 열심히 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소비자로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기업은 이유 없이, 그러니까 이윤 없이는 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생산방식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일본 기업의 제품을 불매함으로써 행동 변화를 촉구한 경험이 있다.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기업에게도 역시 같은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정부에 적극적인 규제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상품의 생산 메커니즘은 매우 복잡하다. 소비자가 일일이 탄소 배출량을 검토해 자신의 선택이 옳은지 알아봐야 하는 상황은 잘못되었다. 정부와 기업이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먼저 고지할 책임이 있다.


한국인이 아무리 잘해도 결국 미국과 중국이 세상을 망칠 거야. 이런 주장에 나 역시 공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과 근거에 괜히 뜨끔해진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류의 사용량과 폐기물이 지구의 생산 및 자정 능력을 초과하는 날이다. 예를 들어 이날이 8월 1일이었다면, 인류가 그해의 생태자원을 이미 8월의 시작 지점에 다 소비하고 미래 세대의 자원을 끌어다 사용했다는 말이 된다.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점점 앞당겨져 2000년에는 10월 무렵이 되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4월 10일이다.




환경주의자들의 논리적인 허점을 조롱하는 모습을 간혹 본다. 애석하게도 환경운동가나 채식주의자를 테러리즘에 비유하는 모습 또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건설적이며 비판적인 피드백은 물론 위기 극복 과정에 필수적이다. 훌륭한 대의를 가졌다고 해서 그 방식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니까. 다만 자신이 옳은 것을 증명하는 데 집착해 우리가 결국은 한 팀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싸움은 환경주의자와 비환경주의자의 싸움이 아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분투다. 기후위기는 망해도 탈출구가 있는 대부분의 문제와는 다르다. 인류에게는 '플래닛 B'가 없으니까. 중요한 건 불완전하고 미숙하더라도 위기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태도다.


전반적으로 읽기 쉽고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다. 이런 책이라면 '그래도 중요한 건 진심이야'가 아닌 '역시 중요한 건 진심이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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