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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Dec 06. 2021

읽그67.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그들은 비록 친구를 잃어버렸을지는 몰라도,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가치 있는 것, 즉 사랑을 얻었다 할 수 있으니까. 반면, 나는 돌멩이 때문에 친구를 잃었다." (p.27)


친구들을 잃고 저자는 이렇게 쓴다. 클럽에서 민증을 요구하는 대신 길을 잘못 찾은 거 아니냐는 표정을 마주하게 되는 때를 맞이하자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졌다고. 친구들이 사라진 곳은 연인의 품이 아니다. 산이다. 면밀한 조사 결과, 페이스북에 산 사진을 올리지 않은 지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사진 속에서 다들 하늘 위로 손을 쭉 뻗고, 너무나도 건강한 미소를 띠고 있는 친애하는 친구들. 유머가 넘치던 친구들이 SNS에 '자연의_삶이_최고'라는 틀에 박힌 글밖에 쓰지 못하게 된 것을 한탄하며, 저자는 유머감각이 혹시 모근에 숨어있는 건 아닐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한다.


친구와 지인들이 겪고 있는 '건강한 중년의 위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저자는 노르웨이에 산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야외활동이나 산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면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는 곳이다. 그러나 그가 의무교육을 마친 후 30년간 스키를 신어본 것은 단 한 번, 산장에 간 것은 단 4번이다. 


그는 뼛속까지 도시 사람인가. 반반. 비록 성인이 된 이후 쭉 도시에서 살아왔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산이 있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신체활동을 싫어하나. 역시 반반.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사서 하는 고생을 이해할 수 없으나 목적 없이 시내를 배회하는 것을 좋아하는 도보여행자다. 노르웨이의 구보 씨라 부를만하다. 자연이 주는 정취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는 것을 혐오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는 도무지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 종교집회 참가자들의 환희와 닮은 그 열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도 한 번은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역경을 헤치고, 귀찮음과 유머의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 속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왜 그토록 자연에 집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p.39)


이 책은 그 이해할 수 없음에서 출발해 멈추지 않는 저자의 호기심으로 완성되었다. 즉,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꽤 진지한) 시도와 결과에 관한 기록이다. 책에는 총 두 번의 여정이 펼쳐진다. 첫 번째 여행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남들처럼 자연이 주는 정적과 고요를 맛보고, 자연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먼지 같은 존재인지 깨닫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하는 것. 나아가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동으로 손을 번쩍 쳐드는 것까지. 


비꼬지 않고, 진지하게.




왜 한 번의 여행이 더 필요했는지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전략을 수정해 재도전하는 저자의 열정에 나는 조금 감동해버렸는데, 요즘 내 행동 패턴을 의식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 좋다고 했을 때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한 번쯤은 해보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거의 대부분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군요. 저는 다시 제 갈길을 가겠습니다' 모드로 지냈다. 어차피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고 정신승리를 시도하며, 시간을 절약했다고 뿌듯해한 적도 생각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논리에 설득되면서도 찜찜함을 지우지 못했던 건 나도 책에서 언급된 토머스 트웨이츠의 <염소 사나이>를 읽었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등산에 대한 다른 유명인들의 의견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이 책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염소 사나이>는 가장 극단적인 '세상과 사람으로부터의 자유'의 사례로 언급되는데, 그도 그럴 만하다. 인간이라는 신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염소처럼 느끼고 생각하기 위해 그에 적합한 구조물까지 고안했던 사람이 쓴 책이니까(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염소 사나이>를 읽었을 때는 가면 갈수록 가관이네, 어디까지 가나 보자, 라는 생각이 흥미에 불을 댕겼다면, 이 책은 좀 더 저자가 순간순간 느낀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등산 과정에서 겪은 각종 고난을 별거 아니었다는 식으로 퉁치고(아, 뭐 그 정도는 고생도 아니죠), 9시간 걸리는 거리를 절반으로 깎아버리는(아, 4시간이면 가죠!) '산사람'들의 허세. 그럼에도 이상한 이름의 산장 속에서 그들의 문화를 느껴보고 소통하려고 애쓰는 저자의 노력에 잠깐 숙연해졌다가, 가는 곳마다 짙은 안개를 만나는 모습에 짠함을 느꼈다가, (저자가 겪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은 생략하고 노르웨이 산의 절경을 안개까지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주기적으로 샘솟았다. 뭐, 스스로 너무 많은 자연은 견디지 못하는 도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대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건 인간의 본능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때로는 동의했다가 때로는 조금 발을 뒤로 빼면서 읽게 됐는데, 이런 과정에서 나도 한 번은 왠지 해봤던 것 같은 생각을 마주칠 때 반가웠다.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결단을 강조하고 싶을 때 자연을 이용하는 데 대한 삐딱한 시선 같은 것 말이다. 산속에 들어가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용단을 내렸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나도 의아했기 때문이다. 꼭 산이 아니더라도 속세와 고립된 곳에서 오래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혼자 결론을 내리면 다인가, 민의를 좇으려면 그 시간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나, 저 사람은 혹시 독불장군형 리더인가, 이런 생각들. 




아니면, 이런 문장도. 


"우리는 자연을 앞에 두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어."

아니, 평소 얼마나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했기에, 자연을 앞에 두었을 때 비로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p.24)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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