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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와 달 Nov 09. 2018

테헤란의 길 위에서 이란을 들려주다

자파르 파나히의 <택시(2015)>

자파르 파나히와 택시를 탔다. 흔들리는 차창 사이로 보이는 테헤란의 거리, 사람들의 눈빛에서 전해지는 생각들은 영화를 너머 현실이다. 


영화의 마지막 사건, 파나히가 잠시 자리를 비운 택시는 강도를 만난다. 

엎어진 카메라의 암흑 속에서 “메모리칩을 못 찾았어.”라고 말하는 강도의 다급한 숨결이 도망간다. 불현듯 나타난 강도에게 영화 내내 데워진 내 마음까지 도난 당한 당황스러움. 흑백의 화면에 우리는 질문과 함께 던져진다.


‘자, 이제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환멸과 증오인가, 아니면 용서와 사랑인가?’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영화의 첫 장면. 

자신의 친척이 타이어를 도난 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강도들은 두어명 매달아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던 남자와, 그런 쉬운 처형으로는 바꿀 수 없으며 강도를 만들어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여자의 대화.


파나히는 이란의 거리에 장미 꽃 한 송이를 바치고 싶었나보다. 억압 받고, 가난하고, 살아가고 싶고, 이웃에게 돈을 빼앗으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체제의 부조리에 단식 투쟁하고, 그런 그들에게 장미꽃을 들고 가는, 그런 인간들.


‘추악한 리얼리즘’을 피하는, 즉, 조카 하나의 말대로 ‘보여주기 싫은 것을 행하고 있는’ 체제에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웅대한 믿음이 이 영화의 마지막 차에 놓인 장미 꽃 한송이와 같다.  

  

삶은 그 자체로 가혹하기도 하다. 체제는 삶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 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화합은 불가능하게 만들며 체제의 밑바닥에 깔린 사람들을 연료로 태우기도 한다. 그러나 삶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그 목소리들이 합쳐져 체제에 대항하는 노래가 될 수 있다. 체제에 대항하여 더욱 좋은 체제로 나아가고자 하는 슬픈 눈물을 담은 미소. 그것을 함께 빚을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로 남겨지지만 우리 각자의 선택은 서로에게 돌고 도는 영향을 미치며, 그렇기에 중요하다.


‘이슬람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란에서 벌어지는 탄압과 폭력은 충격적이다. 폭력의 명목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때는 종교가 그 이유가 되고 어떤 때는 국가안보가 그 이유가 되며 어떤 때는 사회질서 유지가 그 이유로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베일 속에 무엇이 있는지 바라보야 하고, 설령 그것이 암흑 속에서 휘젓는 손짓밖에는 안 되더라도 계속 흔들어야 한다.


영화에서도 암흑 속에서 계속 저항하는 한 인물이 나온다. 장미 한 다발을 안고 나타나는 나스린 소투데(Nasrin Sotoudeh). 그녀는 이란 정권의 탄압에 맞서는 인권변호사로, 영화에서도 2014년 이란-이탈리아 배구 경기를 관전하러 갔다가 징역을 선고 받은 인권운동가 곤체 가바미를 면회하러 가는 길이다. '여자'가 경기를 보러 갔다는 이유로 징역을 선고하는 곳. 그런 곳이 아직 존재한다. 혹은, 그런 '쇠사슬'이 아직 존재한다. 비단 이란의 문제는 아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투명하지만 강한 쇠사슬들, 그것을 끊는 것은 무엇일까? 택시에 장미를 안고 탄 나스린 소투데의 미소는 강했다. 

  

그녀는 2010년에 국가안보에 반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변호사 자격 정지와 11년의 징역 선고를 받았다. 2013년에 풀려나긴 했지만 탄압은 끊이지 않고 있다. 3개월 전, 그녀는 또다시 체포되었고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을 수도 있다는 보도들이 있다. 저항하는 자를 끊임 없이 둘러싸는 암흑, 그 속에서 그녀가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길 바라본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본다.


아직 이란에서는 여성이 운동 경기를 보러 가도, 혹은 히잡을 쓰지 않은 사진을 SNS에 올려도 이슬람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처벌 받으며, ‘도덕 경찰’이 끊임 없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체포해가고 있다. 2009년에는 이란 대통령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민병대가 쏜 총에 시민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란에는 대통령과 국회가 있지만 종교지도자 ‘라흐바르’가 국가원수인 신정독재국가이다. 헌법수호위원회가 대통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는 사람들을 심사하여 부적격자를 떨어트릴 수 있는데, 12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의 절반도 라흐바르가 임명하기 때문에 사실상 라흐바르의 권한이 절대적인 상황이다.


정권에 반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이 곳에서는 위험하다. 인권 및 언론 탄압을 자행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너무도 쉽게 구금, 억류, 처형하는 체제에 정치운동과 영화 속 이야기로 맞서는 파니히 감독 역시 2010년 체포되어 20년 간의 영화제작금지 및 출국금지 조치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택시 기사가 되어 더욱 가까운 곳에서 이란의 모습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보여주었다. 그는 끊임 없이 체제의 부조리와 그 속의 아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저항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우리는 듣는다. 

 

이곳에 장미가 만개할 수 있을까? 장미가 만개할 때까지 계속 폭력에 저항하면 된다. 장미가 만개할 때까지 계속 사랑하면 된다.




사진 출처: 왓챠, ALLO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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