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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와 달 Sep 15. 2018

0. 안녕, 도밍고

어쩌다 보니 여름 연장

무던히 더웠던 올해 여름, 방학을 맞아 부산 집에 왔다. 대학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맞는 아르바이트하지 않는 방학. 그리웠던 집의 냄새가 솔솔 나는 하얀 이불에 몸을 하루 종일 파묻고 있는 것은 나도 모르게 그리워하던 행복이었다. 엄마와 함께 잠에 들고 엄마의 소리에 아침을 깨는, 20년 간의 하루의 모습이 다시 나를 찾아온 포근한 8월이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해야 하는 것이 생긴다는 지난한 경험 동안 나는 나 스스로를 가만히 두는 방법을, 이제는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무심코 신청했던 해외 인턴 신청은 일주일 새 합격으로 바뀌었고, 나는 급기야 한 달 뒤에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로 날아가게 되었다. 나 스스로 만든 결과이지만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리던 가을학기의 모습은 순식간에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바뀌어야 했고, 내가 이제는 친근하다 여기는 사람들을 모두 이곳에 둔 채 나 혼자 가야만 했다.

 

서울에서의 시절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졌고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어떤 행위를 하며 삶을 지속해가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모르는 시기가 강처럼 흘러갔다. 그래서 내 깊숙한 곳 어디선가 나를 다시 낯선 곳에 혼자 두어 생각하게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갑자기 나는 이곳으로 왔다. 공항에는 나와 가장 가까운 두 남자가 함께했는데, 한 명은 아빠였고 다른 한 명은 호두(나의 소중한 연인의 이곳 별칭)였다. 그날은 그리울 것 같은 음식들도 계속 거하게 먹으려 했고 이미 아침으로는 곰탕, 점심으로는 공항에서 짜장, 짬뽕, 탕수육, 깐풍기를 먹었다. 아빠와 호두와 함께 계속 시간을 보냈는데 몇 시간이면 반대편으로 혼자 간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고, 몇 달 동안 이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더욱 머나먼 느낌이었다.

 

하지만 보호 검색대 안으로 혼자 들어온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반투명 유리로 가리어진 보호 검색대 안은 바깥과 차단되어 나를 어떤 깊은 곳으로 혼자 빠뜨린 듯했다. 이 반투명 유리 너머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 눈에는 이런 반투명한 막이 씌어져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나 보다. 나는 왜 내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가려고 했는지 알지 못한 채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태평양 위 비행기의 구석 창가 자리에 홀로 박혀 나는 내가 어디로, 어떻게, 왜 가고 있는지 골몰해보았지만 그런 고민들은 계속 파도처럼 일렁이기만 하고 어떠한 섬에도 가닿지 못했다. 그렇게 약 30시간이 지나 내 몸은 산토도밍고에 도착했다.

 

북쪽으로는 대서양, 남쪽으로는 카리브해에 둘러싸인 이스파뇰라 섬의 동쪽 나라 '도미니카 공화국.' 김포 공항과 비슷해 보이는 산토도밍고 공항을 나서자마자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예쁜 구름들이 야자나무 위로 흘러가는 곳이었다. 이제 이곳에 온 지 10일 정도 되었는데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겨운 느낌과 곳곳에서 라틴 음악이 흘러나오는 흥겨움을 보았다. 어디에나 야자수가 곧게 서서 푸른 밀짚모자를 흔들고 있고 땀을 흘리고는 코코넛과 망고로 수분 보충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소중한 만남들과 마음들을 남겨보고자 이 일지를 시작해본다. '안녕, 도밍고. 만나서 반가워.'


사무실 앞 거리


사무실에 걸려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 지도_마치 모험 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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