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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 Jul 05. 2022

며칠간은 이 무해한 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뜨개 바늘을 샀다


   눈의 새벽이 찾아오고 가느다란  바늘이 맞물리면 이제부터는 당장의  코가 가장 절실하다. 실뭉치가 풀려 , 다시 편물. 종일 머리를 어지럽히던 가설들은 장력이 완만해지는 속도와 공평하게 느슨해진다. 어떤 풍경도 나를 해치지 않고,  어떤 풍경도 해치지 않을 오목한 평화가 질서 정연한 면적을 갖는다.

  처음 바늘을 잡고 며칠간은  무해한 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은 나의 증언  자체였고, 나는 오래도록 그것이 절실했다. 그렇게 보낸  번의 밤은 바라던 대로 고요했다. 형체를 갖춰 가는 작은 성취가 있었고, 선물을 보낼 생각에 조금은 들떴다. 그리고 허무했다. 괜찮을까. 이대로 간편하게 사는 . 생각 없이 사는  정말 사는 걸까. 그러니까 ‘살아 있다 건….

  바늘을 내려놓고 다시금 새로운 가설과 정황들이 옥죄여 왔다.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머리를 비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기지만  유기물은 애초에 공란을 모르도록 설계  모양이다. 어떻게 해도 생각을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미루어 두는 것에 그친다. 잠시 끊어 둔 회로 뒤편에, 가공할만한 위력과 함께, 회로가 연속되는 순간 속절없이 들이칠 요량으로 늘상 거기에 지 사라질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나는 말랑하게 짜인 편물이라기보다 회로의 집합에 가깝다.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면, 그래 , 받아들이는 수밖에. 조금 미루어 봐야 나중의 일이  뿐이고 나는 당장이 아니어도 기어코  정보 값들을 처리하도록 짜여있다. 그러니 머리가 무거워 괴로운 것은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중에. 돌이 딱딱하다고 화내는 일은 나중으로 룰 심산이다. 그 사이 다시 바늘을 잡고 실타래를 풀어서 개구리 가족을 집에 두어야지. 왜 하필 개구리를 뜨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아빠와 자신도 떠달라 성화인 엄마를 꼭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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