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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 Oct 21. 2019

누구는 우리가 되어 보지 못하고 영영 헤어지기만 한다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를 사다


  빈자리에 밴 여독을 훑는 것만큼 촌스러운 것이 또 없다고 생각했다. 잠깐 만났다가 영영 헤어지는 사람들로 인생은 채워진다고, 그러니 때마다 슬플 작정이 아니라면 차라리 외면하는 편이 나았다. 예고된 작별 앞에서 나는 일찍이 발을 빼고 고개를 모로 젖혔다. 아쉽지 않았으니 유난을 떨 필요도 없었다. 송별회니 해단식이니 하는 자리가 마냥 수고로운 가운데 사람은 더 이상 귀하지 않았다. 서로의 무엇도 기념하지 않는 거리가 가장 완전했다.

  여행을 다녀온 동료가 기념품을 나누어 주었다.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특별히 이상한 경험이었다. 육면이 미지의 언어로 둘러싸인 관광 상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정취가 희미하게 묻어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물건 앞에서 잠시 주저할 때 피어오르는 설렘과 닮았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더위가 가시기까지 짐작하지 못했던 증정식이 몇 차례 더 있었고, 해가 바뀌어 다시 돌아온 휴가철에 마침내 그 정취의 이름이 사람 사는 냄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고수 소금을 받았다. 주형 씨는 고수를 좋아하니까 고수 소금이라던 동료의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가보지 않았던 지역의 보지 못했던 진열대를 상상했다. 매대 앞에 선 동료는 잠시간 아무개들을 그렸다가 잊어버려도 전혀 무례하지 않은 말을 떠올린다. 일상과 철저히 분리된 타국에서 일상의 누군가를 그렸던 마음이 자신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누군가의 영점을 맞출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하는 채로 말이다. 동료는 퇴사 소식을 전했다. 예상보다 일렀다. 받은 것이 있으니 떠나기 전에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듬성듬성 살다가 결국 퇴사 당일까지 빈 손으로 출근했다. 자리를 비운 동료는 다시금 꽉 찬 유효타를 날렸다. 나는 잔류한다는 구실로 받은 퇴사 선물을 보며 선의가 또 한 번 어려웠다.

  동료들과 곧장 커피 전문점의 기프트 카드를 샀다. 한 마디씩 나누어 적기에는 동봉된 지류가 터무니없이 작았다. 적어도 해야 할 말은 그보다 많았다. 옆에 있던 갱지를 죽 찢어 따로 인사말을 적고 한껏 쭈뼛이며 엉성한 모양새로 마지막을 기념했다. 별 거 아니에요. 그냥 한 번 써 봤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진이 한 장 도착했다. 동료는 편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작별이 못내 아쉬웠다.

  인생은 혼자라지만 또 혼자가 아니기도 해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시뻘건 팻말을 목에 건다 한들 사람들은 때때로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되돌아보면 나는 있는 대로 비뚤어져서는 어차피 갈 거 왜 왔냐며 안에 없는 체를 했다. 가만 귀를 기울여 본다. 저쪽도 기척이 없는 걸 보니 왔다가 그냥 간 모양이다. 함께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웃으면서 사람을 보내는 방법을 조금 일찍 배워 볼 걸 그랬다. 잠깐 만났다가 영영 헤어지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던데 누구는 우리가 되어보지 못하고 영영 헤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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